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일본 총리는 8일 서울에서 열린 아산정책연구원 주최 ‘아산 플래넘 2026’에서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을 제안했다. 이시바 전 총리는 “일본과 한국의 긴밀한 연계는 지역과 세계의 평화에서 가장 중요하다”며 “(양국 관계의) 다음 한 걸음을 내딛는 것으로서 일한 ACSA 체결은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ACSA는 Acquisition and Cross-Servicing Agreement의 약어로 협정국 간 연료·탄약 등의 군수 물자를 상호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사시 필요한 물자를 즉시 상대국으로부터 조달할 수 있어 군의 기동성과 작전 지속 능력이 강화되는 장점이 있다. 이는 한일이 맺은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보다 높은 단계의 군사 협력으로 평가된다.
이재명 정부가 ACSA에 소극적인 상황에서 지난해 9월까지 일본의 총리를 지낸 거물 정치인이 서울을 방문해 ACSA 체결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이례적이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이시바 전 총리는 미국·이스라엘 대 이란의 전쟁으로 국제 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한일 양국의 군사 협력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는 이날 미국과 이란의 충돌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중동의 석유 운송을 어렵게 해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것이므로 일한 양국이 유엔에서 관련 논의를 주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날 회의에 패널로 참석한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은 ”ACSA는 사실 매우 단순한 협정이다. ACSA가 없으면 (일본과) 협력할 때 행정적인 부담과 시간이 늘어난다“며 ”한일 방위 협력 차원에서 신속하게 맺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지정학·외교정책 소장 겸 한국 석좌는 ”2023년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협정에서 3국 간 협력에 합의한 바 있다“며 ”한일 양국은 ACSA 외에도 더 높은 차원의 협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시바 전 총리는 또 자신이 주창한 ‘아시아판 NATO’ 구상을 강조하며 한국·일본·호주·필리핀 등 역내 국가 간 협력 확대가 향후 집단안보 체제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 정몽준 아산정책연구원 명예이사장도 축사에서 “이제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구조를 새롭게 해야 한다”며 “아시아판 NATO 역할을 할 ‘인도태평양조약기구(IPTO)’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이시바 전 총리를 청와대로 초청, 오찬을 함께 했다. 이 대통령은 “총리께서 재임 중일 때 한일 관계가 상당히 많이 안정됐고 그 후로 협력도 잘되고 있어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환영했다. 이에 대해 이시바 전 총리는 지난해 세 차례 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대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며 “후임자인 다카이치 총리와도 대단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계신다는 보도도 있어서 기쁘게 생각한다”고 했다.
청와대는 이 대통령과 이시바 전 총리와의 오찬에 대해 ‘현직’을 넘어 ‘전직’까지 한·일 셔틀외교 네트워크가 확대됐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여권 관계자는 “다카이치 사나에 현 총리는 강경 보수 노선인데, 이시바 전 총리는 중도 노선의 지한파로 한일 간 협력이 확대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