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2주간 휴전과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조건부 개방에 합의하면서 페르시아만에 갇혀 있던 한국 선박 26척이 빠져나올 조건은 마련됐다. 다만 이란이 군과의 조율을 통해 해협 통과를 허용하겠다고 단서를 단 데다, 페르시아만에 갇힌 각국 선박이 약 2000척에 달하면서 우리 선박들이 완전히 빠져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청와대는 8일 휴전 합의로 “호르무즈 해협 통항 재개를 위한 여건이 마련됐다”며 “우리 선박의 통항이 조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선사와의 협의 및 관련국과의 소통을 가속화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통항 방식과 조건 등에 대해서는 “관련국과의 소통을 통해 면밀히 파악해 나가고 있다”며 “통항에 필요한 선박 리스트 등 제반 사항에 대해서도 선사와 긴밀히 협의하며 신속히 재점검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1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주요 항구인 제벨 알리 항만에 미사일 요격 잔해가 떨어져 시커먼 불길이 치솟고 있다. 당시 인근을 지나던 우리 국적선 선원이 선내에서 촬영했다. /HMM해원연합노조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한다고 하면서도 ‘안전한 통행은 이란 군 당국과의 조율’을 거쳐야 가능하다고 밝혔다. 또 해협 통과 시 이란이 설정한 ‘기술적 제한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해협을 열어주되 이란의 지속적인 통제권을 유지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란이 밝힌 ‘기술적 제한’이 단순히 선박 정보를 통보하고 승인을 받는 절차라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외교가에서는 “이란이 특정 국가 선별적 차단, 통행료 징수, 통행 선박에 대한 검문 검색 등을 강제할 근거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란은 해협 통과 선박에서 통행료를 걷어 전후(戰後) 재건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해왔으며, 해협 맞은편에 있는 오만과 함께 해협 통행을 관리하기 위한 규약을 논의해 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트루스소셜에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 정체 해소를 미국이 도울 것”이라며 “큰 수익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이는 이란이 추진해온 ‘통행료 징수’ 방안을 사실상 수용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해협이 열리더라도 ‘병목 현상’이 변수다. 국제해사기구(IMO) 등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 안팎과 페르시아만에 대기 중인 선박은 2000척 이상이다. 그중 한국과 관련된 선박은 26척, 선원은 총 173명이다. 원유 운반선 9척, 석유 제품 운반선 8척, 벌크선 5척, LNG·LPG 운반선 2척, 컨테이너선 1척, 자동차 운반선 1척 등이다.

전쟁 전에도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선박은 하루 평균 138척 수준이었다. 특히 대형 유조선은 하루 평균 50척 정도인데 지형적 특성 때문이다. 해협을 들어가고 나가는 통항로의 폭이 각각 3㎞ 정도로 좁다.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은 수심이 낮은 구간을 피해야 하고, 선박 간 안전거리도 유지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휴전 2주 기간에 대규모로 해협을 빠져나오는 것은 물리적으로 무리”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게다가 이란이 이번 개방이 자국 군의 통제를 통해 이뤄진다고 밝힌 만큼, 통항 승인이나 순서 배정, 실제 운항 등에서도 상당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 운항 여부가 언제쯤 확인될지 현재로선 확답하기 어렵다”고 했다. 정부는 ‘다각도 소통’을 통해 이란의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한국 선박만을 위해 이란과 일대일 협상을 하지는 않는다’는 기존 방침을 유지할 예정이다. 외교부는 이날 대변인 명의 성명에서도 “우리 정부는 우리 포함 모든 선박의 자유로운 항행이 신속하고 안전하게 이루어지기 바란다”며 “이를 위해 관련국들과의 소통, 협의를 지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이란은 종전 이후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미·이란 간 후속 협상에 달렸지만, 해협 상황이 전쟁 이전 수준으로 정상화되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