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 대 이란의 전쟁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제가 요즘 주목하는 것은 일본입니다. 일본이 이번 전쟁에서 단순히 피해를 최소화하는 상황을 탈피, 미국과 이란 간 중재에 나설지 주시하고 있습니다.
최근 여러 보도를 통해 접하는 것처럼 전쟁 중인 이란이 한국과 일본을 대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지난 21일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은 일본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협의를 거쳐 일본 관련 선박의 통행을 허용할 뜻이 있으며, 일시적 봉쇄 해제를 위해 이미 일본과 협의에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이에 비해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 대사는 26일 미국과 거래하는 한국 선박은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제한하겠다며 위협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특히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교도통신 인터뷰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은 불법이고 정당한 이유가 없는 침략 행위”라며 “일본이 이러한 침략 행위를 종결시키는 역할을 해주기 바란다”고 한 것을 유의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이 전쟁을 멈추는 중재 역할을 수행해 주기를 바란다는 기대를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일본 참의원, 다카이치 총리에 “휴전 중재 하느냐”
이번 전쟁에 대한 일본의 중재 가능성은 나카다초(永田町·일본 국회의사당과 총리 관저가 있는 정치1번지)에서 먼저 제기됐습니다. 지난 18일 일본 참의원에 출석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미국과 이란 간 휴전 중재에 나설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고 마이니치신문이 전했습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에 대해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에게 (이란의) 아라그치 외무장관과의 회담을 요청했다”고 했습니다. 이는 일본 정부가 앞으로의 상황 전개에 따라 중재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재팬타임스는 일본 정치권에서 미·이란 긴장 완화를 위한 중재 요구가 제기되는 가운데, 모테기 외무상이 외무성 내에 ‘국제평화중재기구(International Peace Mediation Unit)’를 설치했다고 전했습니다. 일본이 제도적으로 중재 기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인데, 이에 대해 이 신문은 일본이 과거에도 중동 지역에서 중재를 시도해 왔지만 자위대 활동에 대한 헌법적 제약, 미일 동맹에 대한 구조적 의존, 그리고 외교력의 한계로 인해 실질적 성과는 제한적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오키나와 타임스는 “(이란) 사태의 진정을 위해 전통적인 우호국인 일본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나타나고 있으며, ‘중재 외교의 여지’가 생겨났다”고 보도했습니다.
2019년 미·이란 간 긴장 고조
이런 흐름은 일본 내부에서 미국과 이란 사이의 중재 역할이 단순한 가설이 아니라 실제 정책 옵션으로 검토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일본과 이란의 오랜 우호 관계, 그리고 과거 중재 외교 경험이 축적됐기에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2019년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급격히 고조될 때 중재역으로 나선 적이 있습니다. 저는 당시 도쿄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일본이 중재에 나서는 과정을 취재했는데, 일본과 이란의 관계는 한국 사회에서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긴밀한 것을 느꼈습니다. 또 막후에서 움직이는 일본 외교력도 상당했습니다. 윤강현 전 주이란대사는 최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일본의 외교력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일본은 미얀마나 이란 등 미국의 집중 제재 국가들을 다룰 때 미국과 공감대를 확보하면서 나름의 독자성을 유지하는 영리한 대처를 해 왔다. 이란과 관계가 두터운 일본은 테헤란과의 채널도 잘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2019년 당시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은 급격히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주도한 이란 핵 합의(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JCPOA)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이 위기를 불렀습니다. 이란 핵 합의는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과 독일로 구성된 ‘P5+1’과 유럽연합이 이란의 핵 개발을 제한하는 대신 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이었지만, 트럼프는 이를 ‘불충분한 합의’라고 비판하며 탈퇴했습니다. 이에 이란은 강하게 반발하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까지 거론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미국은 항공모함 전단을 중동에 파견하고 미군 1500명을 증파하며 군사적 긴장을 끌어올렸습니다. 전쟁 가능성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국빈 방일한 트럼프에게 “책임 다 하고 싶다”
위기가 최고조로 치닫는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중재자로 나섰습니다. 그는 2019년 5월 도쿄를 국빈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란 문제에서 중재 역할을 수행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가 이란과 좋은 관계를 갖고 있는 만큼 지켜보겠다”며 이를 ‘승인’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일본 정부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싶다”며 강한 의지를 표명하며 다음달인 6월 일본 총리로서는 41년 만에 이란을 공식 방문했습니다. 이에 앞서 고노 다로 외무상은 이란 외무장관을 도쿄로 초청, 중재 외교를 위한 발판을 만들었습니다.
아베 총리의 이란 방문은 일본이 단순한 지역 국가를 넘어 국제 문제 해결에 관여하는 ‘글로벌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아베 총리는 ‘지구의부감(地球儀俯瞰) 외교’를 통해 일본 외교의 활동 반경을 전 세계로 확장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중재 외교엔 구조적 한계가 존재했습니다. 미국과 이란 양국이 어느쪽도 양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내에서도 아사히신문 등을 중심으로 “미국과 이란 양측의 기대가 엇갈릴 경우 일본이 샌드위치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더욱이 아베 총리가 이란을 방문 중이던 2019년 6월 13일 호르무즈 해협 인근 오만해에서 일본 관련 유조선이 공격받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AP와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일본 선사와 노르웨이 선박이 공격을 받았으며 미 해군 제5함대도 구조 신호를 확인했습니다. 세계 원유 물동량의 핵심 통로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국제 유가 급등을 초래하며 중동 정세를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었습니다.
미국과 이란은 이 사건을 둘러싸고도 정면 충돌했습니다. 미국은 이란을 공격 배후로 지목하며 증거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 장관은 “이란이 책임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이란은 이를 강하게 부인하며 미국과 이스라엘을 배후로 지목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 총리가 면담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는 “트럼프는 대화할 상대가 아니다”라고 밝히며 협상을 거부했습니다. 결국 아베 총리는 뚜렷한 성과 없이 귀국했고, 일본 내에서는 ‘빈손 외교’라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일부에서는 일본이 이란에 이용당했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중재 외교 실패했으나 시도 노력 평가
2019년 일본의 중재 외교는 성공하지 못하고, 분명한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대화 채널을 만들고 긴장을 완화하려는 시도를 실제로 실행에 옮겼다는 점은 평가할만합니다. 이는 일본이 단순한 동맹국을 넘어 국제 분쟁 관리에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려는 전략적 의지를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일본은 당시의 실패 경험에도 불구하고 외교적 공간이 열릴 경우 다시 중재자로 나설 수 있는 국가로 스스로를 위치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 국회에서 의원들로부터 관련 질문이 나오는 것은 일본 정치권이 생각하는 외교적 위상이 우리와는 다름을 보여줍니다.
다카이치 총리가 최근 워싱턴 DC 방문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이번 전쟁을 종결 시키는 과정에서 일본의 역할에 대해 논의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현재 파키스탄이 미국과 이란의 중재역으로 나서고 있는데, 협상 국면에 들어가게 되면 일본이 어떤 역할을 할 지 궁금합니다.
한국의 중재 가능성은?
이같은 움직임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분명합니다. 외교적 중재가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재를 시도할 수 있는 국가로 인식되는 것 자체가 외교적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윤강현 전 주이란대사가 한국도 미국과 이란간 중재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 한 것에 눈길이 갑니다. 그는 본지 인터뷰에서 이같은 문답을 주고 받았습니다.
- 한국이 이란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우리가 그럴 힘이 있나.
“202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 묶여 있던 이란 자금이 약 70억달러였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인해 오랫동안 이동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한국 정부는 미국 재무부와 협의를 거쳐 자금 이전이 제재 예외에 해당하도록 구조를 설계했고, 카타르 등 제3국을 경유하는 방식으로 이전이 이뤄졌다. 자금 사용처를 인도적 목적 등으로 제한하는 조건도 붙었다. 이 과정은 금융·외교·제재 체제가 동시에 얽힌 고난도 작업이었는데, 한국은 미국과 이란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절충안을 만들어내며 실무적 중재 역할을 수행했다.”
- 유엔 분담금 문제에서도 한국이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이란이 유엔 분담금을 납부하지 못해 2021년 유엔 총회에서 투표권 제한 위기에 놓여 있었다. 한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재무부로부터 특별 허가를 받아, 한국 내 동결 자금을 활용해 분담금을 납부할 수 있는 경로를 마련했다. 이는 단순 송금이 아니라 제재 체제와 유엔 규정을 동시에 충족시켜야 하는 복합적인 문제였다. 한국이 이를 성사시킨 것은 미국과의 협의 능력과 이란과의 신뢰를 동시에 활용한 결과로, 향후에도 양측 간 실무적 조율자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윤 전 대사는 한국이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눈치만 보는 외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협상 국면에 들어가면 한국에 묶였던 70억 달러 반환, 이란의 밀린 유엔 분담금 납부 협상 등의 외교적 경험을 활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민감한 국제 분쟁에서의 정부의 역할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국가의 위상 상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보다 능동적인 외교적 역할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우리 외교도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