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 시각) 호르무즈 해협 선박 호위를 위한 군함 파견 요청을 거부하거나 미온적인 국가를 향해 강한 불만을 표출하면서, 우리 정부의 대미 전략도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미 간에는 미 무역대표부(USTR)의 무역법 301조 조사와 추가 관세 결정, 지난해 합의한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원잠) 도입과 우라늄 농축 권한 확보를 위한 협의 등 민감한 현안이 산적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특성상 파병 문제를 다른 현안과 연계해 ‘청구서’를 내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정교한 상황 관리가 매우 중요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대부분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으로부터 이란에 대한 우리 군사작전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우리는 더 이상 나토 회원국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고 바라지도 않는다”고 썼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은 대부분 나토에 집중돼 있었지만 “일본, 호주나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동맹국의 지원이 ‘필요 없다’는 트럼프의 진의(眞意)가 무엇인지는 불분명하다. 트럼프가 지난 14일 처음 트루스소셜에 한·중·일·영·프 등 5국이 군함을 파견할 것이란 글을 올린 뒤, 한국은 연일 ‘파견 요청국 명단’에 포함되고 있다. 16일 트럼프는 미군이 주둔해 있는 한국, 일본, 독일을 콕 집어 파병 결단을 압박했다. 군함 지원 요청을 철회할 수도 있지만, 다른 방식으로 압박의 수위를 올릴 가능성도 남아 있다.
우리 정부는 ‘공식 요청이 오면 신중히 대처하겠다’며 트럼프의 지원 요청에 구체적 반응을 보이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줄곧 유지하고 있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18일 브리핑에서 “(미국 측의) 공식 요청은 아직 진행된 것이 없다. 뉴스로 보는 게 훨씬 더 빠른 속도”라고 했다. 정부 당국자는 “하루하루 트럼프 메시지가 달라지고 있어서 일본 등 관련 국가의 움직임을 참고하면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외교가에서는 파병 문제가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담아 발표한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합의 이행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은 당시 한국의 원잠 도입을 승인하고, 한국의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를 위한 절차를 지지하기로 했다. 핵 비확산론자가 많은 미국 행정부 내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큰 사안들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톱다운’ 방식으로 결정을 내려 이뤄진 합의들이었다. 정부 당국자는 “원잠이나 원자력 협력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하지 않았다면 애초 추진이 불가능했던 사안”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미국 행정부가 이런저런 이유로 후속 협의를 위한 정부 대표단을 한국에 보내주지 않아 이행이 지연되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 조야(朝野)의 반대 목소리에도 ‘정상 간 합의’라는 점에서 우리 정부에 힘이 실렸던 사안들인데 파병 건으로 기조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트럼프가 한국이 파병 문제에 미온적이었다는 점을 문제 삼아 원잠 도입이나 농축·재처리 권한 확대에 대한 지지를 거둬들이면 ‘없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 11~12일 임갑수 한미 원자력 협력 태스크포스(TF) 정부 대표와 외교·국방부 관계자들을 워싱턴 DC에 보내 신속한 후속 협의를 촉구한 상태다.
조인트 팩트시트에서 약속한 3500억달러 대미 투자와 대한국 관세 인하도 아직 불투명한 부분이 많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지난달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상호 관세가 위법하다고 판결한 뒤, 미 무역대표부는 한국에 대한 무역법 301조 조사를 개시했다. 트럼프가 이 조사 결과를 근거로 다시 한국에 대한 고율 관세를 발표할 수 있다.
트럼프가 주한미군 철수·감축이나 더 폭넓은 역할 변경을 제기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은 “파병 문제는 나토 등 여러 국가가 연루돼 있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라면서도 “미국의 안보 분담 요구가 커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