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북방한계선(NLL)을 30여 년 지켜온 해군 고속정 ‘참수리 325호’가 지난 1월 고철로 폐기됐다. 참수리 325호는 1999년 제1연평해전에서 북한 함정을 선체로 밀어내며 영해를 사수했고, 2009년 대청해전에서 적을 격퇴한 승전의 주역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해군은 이 함정을 3800여만원에 팔았다.

1999년 제1연평해전 당시 해군 고속정 참수리 325호(오른쪽)이 북한 함정을 '밀어내기'하고 있다. 해군은 지난 1월 참수리 325정을 폐처리했다. /해군

해군은 “전시물로 보존하려면 복원에 10억여 원이 들고, 유지·보수 비용 대비 기대 효과가 미흡하다”고 했다. 교전 당시 파손 부위는 모두 수리돼 외관도 여느 참수리 고속정과 다를 바 없단다. 경기 평택 2함대에 이미 제1연평해전 전승기념탑과 제2연평해전 당시 피격당한 참수리 357호가 있어 ‘상징성 및 목적이 중복된다’고도 했다. 민간인 출입이 어려운 군 부대 내에 관련 기념물이 있으니 더는 필요 없다는 것이다. 말로는 “전우들이 피로 지킨 NLL”을 강조해온 해군이, 그 ‘물증’을 보존할 필요가 없다며 꺼낸 논리다.

해군이 북한에 유화적인 현 정부 눈치를 살폈다는 지적이 여러 곳에서 나왔다. 하지만 우파 정부에서도 비슷한 최후를 맞았을 가능성이 높다. 참수리 325호는 2022년 퇴역했는데, 해군은 퇴역 직후부터 부품을 철거해 재활용하는 등 애초부터 안보 전시물로 지정할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군 소식통은 “참모총장도 날려버리는 현 정부 눈치를 보며 폐처리한 것이라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해군의 역사 의식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라 참담하다”고 했다.

반면 영국은 1778년 취역해 나폴레옹 전쟁 시절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넬슨 제독의 기함으로 활약한 ‘HMS 빅토리’(HMS Victory)호를 약 4200만 파운드(약 832억원)를 들여 보존하고 복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세계 최장수 현역 군함’이라는 상징적 가치뿐만 아니라 세계 최강국 시절의 자부심과 혼이 깃든 역사를 존중한다는 뜻이다. 자력 항행도 불가능한 구시대의 범선을, 유지·보수비가 부담스럽지 않아 모시고 있는 게 결코 아니다.

하지만 우리 해군은 ‘새것’에만 집중한다. 7조8000억원을 들여 신형 구축함 6척을 확보하는 KDDX 사업, 8000억원 규모의 SM-3 미사일 도입 사업은 필요하지만, 역사와 긍지가 담긴 참수리 325호의 가치를 외면하는 모습은 얼마나 역설적인가.

지난해 11월 해군은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창설 80주년 기념식을 했다. 이 자리에서 해군은 “충무공의 후예인 해군은 선배 전우들이 피땀으로 일군 위대한 승전의 역사를 가슴 깊이 새기겠다”고 다짐했다. 서해 수호의 주역을 푼돈에 넘기는 것이 해군이 승전의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인가. 고철 값 몇 푼을 받고 팔아넘긴 것은 해군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하는 ‘필승의 신념’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