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장병들이 5일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 기지에서 크레인 등을 이용해 지대공 방공 체계 ‘패트리엇’ 포대를 이동하려 하고 있다. 군 당국은 오는 9일부터 실시되는 한미 연합 연습 ‘자유의 방패(FS)’를 위해 요격 포대를 긴급 이동 배치하는 훈련이라고 설명했지만, 군 소식통은 “훈련을 위한 기동이더라도 훈련 종료 이후 중동으로 옮겨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연합뉴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주한미군 자산이 반출될 가능성이 언급되는 가운데, 재래식 폭탄에 장착해 정밀 타격이 가능한 ‘스마트 폭탄’으로 만들 수 있는 ‘유도 폭탄 키트’ 1000여 개가 지난해 12월 중순 미 본토로 반출된 사실이 5일 뒤늦게 알려졌다. 이란 공습 작전인 ‘장대한 분노’가 시작된 것은 지난달 28일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해 12월부터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 4일 브리핑에서 “(이란) 상공을 완전히 제압했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GPS 및 레이저 유도 정밀 중력 폭탄’들을 사용할 것이고, 이런 폭탄들은 거의 무제한 재고가 있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에서 반출된 유도 폭탄 장치는 이런 정밀 중력 폭탄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GPS나 레이저 유도 장치와 조종 날개로 구성된 이런 장치를 유도 기능이 없는 일반 재래식 폭탄에 붙이면 전투기에서 투하 가능한 정밀 중력 폭탄이 된다. 키트 하나당 3000만~8000만원밖에 들지 않아, 1기당 수십억 원에 달하는 고가의 미사일에 비하면 ‘가성비 타격’을 할 수 있다.

주한미군의 유도 폭탄 키트 본토 이송이 우리 측에 통보됐는지에 대한 본지 질의에 국방부는 “주한미군 전력 운용과 관련하여 우리 정부가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장기전은 미사일 비축량이 좌우… 美, 한국에 지원 요청할 수도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9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의 자택에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 ‘이란 공습 승인’ 요청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를 만나기 전부터 “이란이 (핵 무기를) 다시 만들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을 쓰러트려야 할 것”이라고 공격을 시사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1일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전화 통화를 했고, 일부 중동 언론은 두 사람이 이란 문제를 논의했다고 했다. 지난해 6월 미국의 이란 핵 시설 공습 이후 이란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해당 시설 사찰을 거부했고, 이를 빌미로 미국·이스라엘이 공격을 논의한 징후로 볼 수 있다.

주한미군이 갖고 있는 ‘페이브웨이(Paveway)’ 유도 폭탄 키트 1000여 개가 오산 기지에서 미국 본토의 공군 기지로 반출된 것은 이 무렵인 지난해 12월 16일로 알려졌다. 미군은 이를 ‘훈련’을 위한 ‘재분배 임무’라고 했는데, 사실은 이란 공격 준비와 연관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유도 폭탄 키트 이동이 전쟁 장기화 시 본격화될 주한미군 자산 차출의 신호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5일 “무기 반출 협의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 협의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한미 간에 주한미군 자산 반출 관련 협의를 아직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군 소식통은 “미군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주한미군 자산이 옮겨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했다.

이란이 미군 기지와 대사관 등이 있는 인근 중동 국가들을 무차별 공격하면서 방공 무기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 한국이 지원 요청을 받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이미 요격 미사일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미국과 걸프 국가들이 모두 추가 확보에 나섰기 때문에 상당량을 지닌 한국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이란은 현재 2000기 이상의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확보하고 있고, ‘비장의 카드’로 극초음속 미사일 ‘파타흐(Fattah)’도 투입 시기를 가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은 지난해 6월 이스라엘 공습에 파타흐-1를 실전 투입했는데, 일부 탄두는 이스라엘 방공망을 뚫고 텔아비브 시가지 등을 타격하기도 했다.

이런 이란과 장기전을 하게 될 경우, 미군이 주한미군의 8개 패트리엇 포대 등 국내 방공 자산을 중동으로 옮길 가능성이 가장 먼저 제기된다.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THAAD)의 경우 레이더와 발사대는 그대로 두고 요격미사일만 수십 발 정도 반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처럼 패트리엇·사드 전력이 반출되면 한국 방공망 약화로 우리 대비 태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측 최신 자산 일부가 반출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지난해 해외 주둔 기지 중 처음 경기 오산 공군기지에 배치한 ‘간접화력방어능력’(IFPC) 체계가 대표적이다. ‘미국판 아이언돔’으로 불리는 IFPC는 드론과 아음속(亞音速) 순항미사일, 로켓·포·박격포 공격 등 다양한 위협에 대응할 수 있다. 미국이 지난해 연말 독일에 이어 두번째로 동두천에 배치한 최신형 다연장로켓포 M270A2도 차출 가능성이 있다.

주한미군 자산 및 전력 차출은 물론, 한국군의 지원 등을 미국이 요청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유도 폭탄 키트는 레이시온·록히드마틴이 만드는 페이브웨이 외에 보잉사(社)의 통합직격탄(JDAM)도 있는데, 우리 공군은 2021년부터 JDAM 키트 7000여 개를 미국에서 구매해 수천 개 이상을 보유 중으로 알려졌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총장은 “우리 공군의 JDAM과 패트리엇 유도 미사일 등을 요청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