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이 24일 오후 10시쯤 서해 공중 훈련과 관련해 우리 국방부를 정면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은 미 국방부(전쟁부)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26일 알려졌다. 복수의 외교·안보 소식통은 “브런슨 사령관의 심야 성명은 개인 판단이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의 명확한 메시지”라며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을 비롯한 수뇌부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앞서 우리 국방부가 해당 훈련과 관련해 브런슨 사령관이 사과의 뜻을 전했다는 취지로 발표하자, 그는 “우리는 대비 태세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성명을 한밤중에 냈다. 통상 한미 간 이견이 있을 경우 물밑 조율을 거치는 것이 관례였다는 점에서, 주한미군 사령관이 공개적으로 한국 정부를 반박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번 사태는 지난 18일 주한미군 F-16 전투기들이 중국 측 방공식별구역(CADIZ) 인근까지 훈련 비행하자 중국군이 전투기를 긴급 발진시켜 미·중 전투기가 대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미국은 이에 앞서 한·미·일 3국 공중 훈련을 기획했으나, 최종적으로는 미·일 양국만 16일과 18일 동중국해 등에서 연합 훈련을 실시했다. 이후 국내 한 방송이 브런슨 사령관이 미·중 전투기 대치 상황에 대해 사과의 뜻을 전했다고 보도한 후, 국방부 대변인이 “일정 부분 사실로 안다”고 밝히면서 파장이 커졌다.
◇ “美, 한국측 대응에 중국 입김 작용했다고 의심”
소식통들에 따르면 이 사안은 즉각 미 본토에 보고됐고, 관련 동향은 미 국방부 지휘라인에서 공유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소식통은 “브런슨 사령관의 성명이 발표된 시각은 워싱턴 DC 동부 시각으로는 아침 시간대였다”며 “미 국방부 수뇌부가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고 지시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에 따라 브런슨 사령관은 성명에서 안규백 국방장관에게 훈련이 사전 통보됐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관련 상황을 제때 보고받지 못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한국 내 지휘·보고 체계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지적한 셈이다.
미국 측은 특히 이번 사태가 청와대 국가안보실 주도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확대됐다고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이 이번 사태에 대해 외교 채널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자 국가안보실의 결정에 따라 대응 수위가 높아졌을 가능성을 미국이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국가안보실에 근무했던 고위 관계자도 “이번 사태가 확산되는 시발점에 중국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했다.
전직 국방부 장관은 “장관 재직 시절 합참으로부터 매일 한반도 영공에서 우리 군, 미군, 중국군, 일본 자위대의 훈련 동향을 보고받았다”며 “우리측의 공중 훈련은 한국군 단독 훈련, 미군 단독 훈련, 연합 훈련의 세 범주로 체계적으로 관리되는데 왜 채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크게 보면 미국의 강경 대응 배경에는 이재명 정부의 ‘국방부 숙청(肅淸)’에 대한 불만의 의미도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2024년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직접적 연루 혐의가 크지 않았던 장성들까지 대규모로 교체된 데 대해 우려를 갖고 있다. 전직 합참 관계자는 “미국은 계엄 관련 지시를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요직에 있던 군인들이 고초를 겪고, 한직에 있던 군인들이 중용되는 흐름을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미동맹을 중시하거나 능력 있는 군인들이 대거 물갈이되고, 북한을 중시하는 정권에 순응적인 인사들이 대거 중요한 보직을 맡아 한미 훈련이 원활하게 진행되기 어렵게 됐다고 우려한다는 것이다. 최근 방한한 마이클 니드햄 미 국무부 고문 등이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정부를 옹호했던 인사들과 접촉한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