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이 밤늦게 입장문을 발표해 우리 국방부 브리핑을 정면 반박하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표면적 쟁점은 주한미군이 지난 18~19일 서해 공중 훈련을 하면서 한국 정부에 통보를 했는지 여부지만, 본질적으로는 중국·북한 문제에 대한 한미의 견해 차이가 물밑에서 봉합할 수준을 넘어서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은 24일 밤 10시쯤 ‘(안규백) 국방부 장관과의 통화’란 제목으로 “우리는 대비태세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다”라는 입장문을 냈다. 주한미군이 지난 18일 서해 상공에 F-16 전투기를 출격시켜 훈련하다가 중국 전투기와 대치하게 된 데 대해, 제이비어 브런슨 사령관이 우리 군 당국에 ‘사과의 뜻을 전했다’는 전날 MBC의 보도를 부인하는 내용이었다. MBC는 주한미군이 우리 정부와의 ‘정보 공유 없이’ 민감한 훈련을 했다고 보도했고, 24일 정빛나 국방부 대변인은 “(해당 보도는) 일정 부분 사실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주한미군은 “브런슨 사령관은 한국 측에 (훈련) 통보가 이뤄졌다는 것을 재차 강조하기 위해 (안규백) 국방장관과 직접 얘기했고,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제때 보고 받지 못한 데 대한 유감을 표명했다”고 했다. 주한미군은 공중 훈련 사실을 우리 군에 알렸으며, 안 장관 등이 보고를 늦게 받았다면 유감스러운 일이라는 취지다.
이런 갈등 속에 한미 양국 군은 25일 연례 한미 연합 연습 ‘자유의 방패(FS)’를 3월 9~19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한미 간 이견이 있었던 FS 연계 야외 실기동 훈련의 규모와 횟수 등은 여전히 “협의 중”이라고 했다.
◇DMZ 출입, 9·19 합의 복원, 연합훈련… 건건이 부딪치는 한미동맹
한미 양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주한미군사령관이 겸직하는 유엔군사령관의 비무장지대(DMZ) 출입 승인 권한을 통일부 장관에게도 나눠주는 여권의 DMZ법 추진 등을 두고 이견을 보여 왔다. 올 들어서는 연합 군사 훈련과 2018년 남북이 체결한 9·19 군사합의 복원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대북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훈련을 최소화하고, 군사분계선(MDL) 인근 작전이 제한되는 9·19 합의도 선제 복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미국은 북한은 물론 중국도 억지하기 위해 훈련은 필수라고 보고 있다.
문제가 된 주한미군의 서해 공중 훈련에 앞서, 미국은 지난달 15일 우리 측에 한미일 연합 공중 훈련을 제안했다. 우리 정부는 설(17일)과 일본 시마네현이 제정한 다케시마의 날(22일) 사이라서 어렵다며, 22일 이후에 일본을 제외하고 한미 훈련을 하자고 했다. 미군은 지난 5일 “그냥 우리끼리 하겠다”고 답했다.
지난 18일 미일은 제주도 남방 동중국해에서 B-52 전략폭격기를 동원한 훈련을 했다. B-52는 한때 서해에 진입했고, 주한미군도 같은 날 미7공군 예하 F-16 전투기 수십 대를 출격시켰다. 중국도 전투기를 출격시켜 미·중 대치 상황이 있었다는 것은 지난 19일 MBC 보도로 알려졌다. MBC는 주한미군이 ‘우리 군 당국에 훈련 계획을 사전에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 군은 이런 보도를 부인하지 않았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과 진영승 합참의장이 서해 훈련 직후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전화해 항의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주한미군은 통보가 없었다는 우리 정부 설명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한미 균열로 보일까 봐 입장 표명을 자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빛나 국방부 대변인이 24일 공개 브리핑에서 브런슨 사령관이 서해 훈련에 대해 사과했다는 MBC 보도 내용에 대해 “일정 부분 해당 보도 내용이 사실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날 저녁 SBS가 브런슨 사령관이 진 의장과의 통화에서 ‘9·19 남북 군사합의 복원은 한국군 스스로 대비 태세를 제약하는 것’이라고 했다고 보도한 뒤, 주한미군은 입장 발표를 결정했다고 한다.
주한미군은 입장문에서 “우리는 고위 지도자들 간 비공개 논의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며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선택적인 정보 공개는 우리가 공유하는 안보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 소식통은 “주한미군 입장에서는 각종 현안을 놓고 한미가 부딪히는 와중에 한국 국방부가 언론 플레이를 한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김재천 서강대 교수는 “미국이 주한미군의 역할을 북한뿐 아니라 중국 견제로 확장하면서 한국에 더 많은 안보 역할을 요구하고 있는데, 한국의 정치적 상황과 부딪히면서 여러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한미는 3월 9일부터 시작되는 자유의 방패(프리덤실드·FS) 훈련 기간의 야외 기동 훈련(FTX) 규모도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합참과 주한미군이 25일 훈련 계획을 공식 발표했지만 이는 ‘한국이 실기동 훈련 취소나 축소를 요구했고, 이미 병력·장비 이동을 시작한 미군이 당혹스러워하고 있어 발표가 지연될 조짐’이란 보도를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한미 간 이견이 불거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번 한미 연합 연습은 정상적으로 시행한다”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통상 FS 발표에 맞춰 공개했던 야외 기동 훈련 실시 횟수는 이날 발표하지 못했다. 자유의 방패 훈련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지휘소연습(CPX)으로, 그 시나리오에 맞춰 직접 병력과 장비를 전개하는 워리어실드 기동훈련(WS FTX)이 함께 진행된다.
이와 관련해 장도영 합참 공보실장은 “야외 기동 훈련은 한미가 긴밀히 협의 중”이라며 “연중 균형되게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기동 훈련을 연중 다른 기간으로 분산시키겠다는 취지다. 반면 라이언 도널드 주한미군사 공보실장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번 3월에도 워리어실드 기동훈련이 대규모 방어적 성격을 띤 연습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라며 “중요한 연습”이라고 말했다.
한편 최근 방한한 마이클 니드햄 미국 국무부 고문은 24일 손현보 부산 세계로교회 목사를 만났다. 손 목사 측에 따르면 니드햄 고문은 ‘종교 자유’ 문제에 대해 물은 뒤 “JD 밴스 부통령을 백악관에서 거의 매일 보는데 공유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