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대북 무인기사건 재발방지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 방안의 하나로 추진 중인 군사분계선(MDL) 일대 ‘비행 금지 구역’ 설정과 관련해, 외교부 고위 당국자가 24일 “미국이 아직 동의 안 하고 계속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비행 금지 구역이 설정되면 주한미군도 적용을 받기 때문에 사전 협의가 필수적이다. 이 당국자는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9·19 합의 복원은 우리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처음부터 밝혀졌던 것”이라면서도 “(한미) 협의 과정에서 약간의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앞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18일 북한의 ‘한국 무인기 침투’ 재발 방지 요구에 대해 “비행 금지 구역 설정 등을 포함해 기존 9·19 군사 합의 복원을 선제적으로 검토·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국방부도 “유관부처, 미국 측과 협의해 ‘비행 금지 구역’ 설정 등 9·19 군사합의 일부 복원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2018년 남북이 체결한 이 합의에는 전투기·헬기·무인기 등 비행체 종류에 따라 MDL 남북으로 10~40㎞ 구간의 비행 금지 구역을 두는 조항이 있었다. 북한은 합의 복원 의사를 밝힌 적이 없어, 우리 측이 비행 금지 구역을 선제 복원하면 우리 군과 미군의 정찰 활동만 제한된다. 이에 따른 대북 감시 공백을 메우려면 고고도 유·무인 정찰기, 인공위성 등 미국의 정찰 자산 지원이 필수적이다.

한편 미국 연방대법원의 상호 관세 부과 위법 판결 뒤,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무역법 301조(수퍼 301조)로 대체하기 위해 주요 교역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을 조사하겠다고 나선 데 대해 이 고위 당국자는 “우선 (한국에 대해 그런 조사를 하겠다는) 통보는 없었다”고 말했다.

◇비행금지 설정 땐 주한미군도 정찰 제한… 美 동의 필수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18일 군사분계선(MDL) 일대 비행 금지 구역 설정 추진 등이 “이재명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며 “적절한 시점에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9·19 군사합의 일부 복원은 시간 문제라는 뉘앙스였다.

그러나 임철균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한국군이 보유하고 있는 감시 정찰 자산으로는 최전방에 주둔한 북한군 4, 2, 5, 1 군단의 후방을 전혀 들여다 볼 수 없다”며 “유엔군사령부가 관할하는 비무장지대(DMZ)도 포함되는 등 미국 협조 없이 비행 금지 구역 설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9·19 군사합의상의 비행 금지 구역은 전투기·정찰기 등 고정익 항공기의 경우 동부 지역 MDL 남북 각 40㎞, 서부 지역 남북 각 20㎞였다. 무인기는 동부 지역 각 15㎞, 서부 지역 각 10㎞, 그리고 회전익 항공기(헬기)는 남북 각 10㎞의 비행 금지 구역을 두기로 했다. 군 소식통도 “우리 군만 이 지역을 비행할 수 없게 되면 전방 지역 정찰 활동이 크게 제한된다”며 “미국이 고고도 정찰기나 군사 위성을 통해 획득한 정보를 더 많이 제공해 줘야 해서 선행 협의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미국이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유엔군사령관의 비무장지대(DMZ) 출입 승인 권한을 통일부 장관에게도 나눠 주라는 여권의 DMZ법 입법 추진이나 남북 긴장 완화를 위해 한미 연합 훈련을 대폭 축소하자는 우리 정부의 제안에 당혹스러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9·19 복원이나 훈련 축소 등을) 협의하다 보면 기술적 사안이 나올 수도 있다”며 “전작권 전환 같은 걸 하려면 ‘이것은 한국군이 충분히 역량을 갖췄다’든가 등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이견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3월 말~4월 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대북 대화를 재개하려면 군사적 긴장 완화책이 필요하다고 미국을 설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고위 당국자는 트럼프 방중 계기에 미·북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에 대해 “가능성은 열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지금 미국 실무진은 트럼프 대통령이 상식을 뛰어넘는 대북 어프로치(접근)를 하면 그것에 맞춰서 해야 하니 여러 방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관건은) 북한이 나올 것인가 하는 부분인데, 아직은 뚜렷하게 노도, 예스도 아닌 상황”이라며 “결국은 북한이 나와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우리끼리 도상 훈련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미투자특별법 입법 지연이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출된 한국의 원잠 도입, 우라늄 농축 권한 확대 등의 안보 합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이 당국자는 “관세 협상이 교착된 것은 아니다”라며 “(우리 입법 절차가) 지연 전술이 아니고 정해진 과정이란 것을 (미국에) 이해시켰다”고 말했다. 또 미 연방 대법원의 상호 관세 위법 판결에 대해 “우리도 분석을 해야겠지만 미국도 다른 국가들이 (합의를) 지키나 안 지키나 예의 주시할 것”이라며, 해당 판결 이후에도 대미 투자를 속도감 있게 진행한다는 입장이냐는 질문에 “지금까지는 그렇다”고 답했다.

원자력 문제 등을 협의할 미국 협상단의 방한 일정이 확정되지 않고 있는 데 대해서도 이 당국자는 “(통상 이슈로 인한) 보류가 아니라 스케줄링 이슈”라며 “미 국무부는 이란 때문에 올스톱된 상황이고, 얼마 전에는 우크라이나 휴전에 깊이 관여했다”고 했다. 협의에 참여할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의 농축·재처리 권한 확대 등에 비협조적이라고 알려진 데 대해서도 “미국의 과거 정부, 딥 스테이트(deep state)가 작동할 때는 그런 가능성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트럼프 대통령의 명확한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에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편 조현 외교부 장관과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캐나다와의 2+2 외교·국방장관 회의를 위해 이날 밤 출국했다. 이와 관련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도 2+2 대상국이니까 (이번 계기에 회담 가능성을) 알아봤는데, 미국은 이란 외에도 여러 현안이 있어서 국무·국방장관이 한꺼번에 회의할 형편이 안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