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8일 군사분계선(MDL) 일대 비행 금지 구역 설정을 포함해 9·19 남북 군사 합의를 선제 복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한국 무인기 침투’ 사건 재발 방지책을 요구한 지 닷새 만이다. 북한은 2018년 9·19 군사 합의 체결 후 5년간 서울 상공 무인기 침투 등 3600회 이상 합의를 위반했고, 2023년 11월 일방적으로 합의 파기를 선언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행 금지 구역 설정 등을 포함해 기존 9·19 군사 합의 복원을 선제적으로 검토·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장관은 설 연휴 기간 안보 관계 장관 간담회에서 충분히 협의했다면서 “이재명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했다.
기존 9·19 군사 합의에 명시된 대로 비행 금지 구역이 설정되면 MDL 인근에서 우리 군의 항공기나 무인기 비행이 금지된다. 군 안팎에선 북한이 합의를 파기한 상황에서 우리만 선제 복원할 경우 대북 감시·정찰 작전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北은 전방서 무인기 훈련… 軍내부 “현대전의 손발 스스로 묶는 것”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9·19 군사 합의 복원 조치를 “적절한 시점에 발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유관 부처, 미 측과 협의해 비행 금지 구역 설정 등 9·19 군사 합의 일부 복원을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한국 측 비행 금지 구역 설정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때 남북이 체결한 9·19 군사 합의에 따라 비행 금지 구역이 설정되면, MDL 주변 우리 군의 항공기 훈련, 무인기 공중 정찰은 대폭 제한된다. 기존 합의에 따르면 고정익 항공기의 경우 동부 지역은 MDL 남북으로 각 40㎞, 서부 지역은 20㎞, 무인기는 동부 지역에서 15㎞, 서부 지역에서 10㎞, 기구는 25㎞ 범위에서 비행이 금지된다. 헬기는 MDL 남북 각 10㎞까지 비행할 수 없었다.
군 관계자는 “북한이 MDL 북측에서 상응 조치를 취하지 않는데 우리만 홀로 비행 금지 구역을 설정하게 되면 우리 군의 대북 감시 능력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북한은 한국의 경고에도 9·19 합의를 반복해 위반하고 2022년 말 무인기 5대를 한국에 침투시켰다. 2023년 11월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자 한국 정부는 9·19 합의 가운데 비행 금지 구역 설정만 효력 정지했고, 북한은 이를 구실 삼아 합의 파기를 일방 선언한 상태다.
이 때문에 이번 조치가 실행될 경우 “군단급 이하 정찰 무인기 활동은 모두 묶이고, 소형 멀티콥터형 무인기도 전방 지역에서는 훈련조차 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북한은 올겨울 전방 지역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경험을 토대로 실전적 무인기 훈련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한국만 일방적으로 비행 금지 구역을 설정할 경우 한국군은 전방에서 비슷한 훈련을 못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정 장관은 “관계 부처 간에 충분히 협의·조정이 이뤄졌고, 안보 관계 장관 회의를 통해서도 협의가 이뤄졌다”고 했다. 합참 등 군 내부에서는 선제적 비행 금지 구역 복원 조치에 대해 우려를 전달했지만, 반영이 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군 소식통은 “9·19 합의 당시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이라 무인기 중요성 및 활용이 크지 않았지만 무인기가 현대전의 총아가 된 지금 우리 스스로 손발을 묶겠다는 소리”라고 했다.
2018년 9·19 군사 합의로 비행 금지 구역이 설정될 때 군 당국에서는 고고도 정찰기 등을 활용하면 대북 감시·대응 체제에 큰 지장이 없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하지만 2019년 합참은 국회에 9·19 군사 합의로 인해 설정된 비행 금지 구역 때문에 전방 지역에 배치된 우리 무인기의 대북 표적 식별 능력이 44% 떨어졌다고 보고했다. 9·19 군사 합의 이전에는 전방 군단이 사용하던 무인기로 북한의 장사정포 등 713개의 표적을 식별했지만, 이후에는 399개의 표적만 식별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군 안팎의 우려에도 통일부 장관이 나서서 9·19 군사 합의 복원을 언급한 것은 북한과의 대화 통로를 뚫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날 정 장관의 브리핑은 지난 13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한국 무인기 사태’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한 지 닷새 만에 이뤄졌다. 하지만 북한이 이재명 정부의 대화 제의에 호응하지 않는 상황에서 안보 이익을 내주고 대화에 매달리는 게 옳으냐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상대방과 협의가 안 된 상황에서 섣불리 발표하는 것은 군사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정 장관은 이날도 우리 민간인이 북측으로 무인기를 날린 사건과 관련해 “북측에 대해 공식적인 유감을 표하는 바”라고 했다. 지난 10일 “깊은 유감”이라고 한 데 이어 재차 북한에 사과한 것이다. 정 장관은 윤석열 정부 때 드론작전사령부의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했다. 정 장관은 “평양의 북측 최고지도부를 위협하고 남북 간 군사적 충돌과 전쟁을 유도했던 군사적 행위에 대해서는 내란 수괴 재판을 받고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북측에 직접 사과하고 우리 국민께 석고대죄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두 사건은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으로 법원의 판단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북한은 지난 10여 년간 무인기를 우리 영공에 침투시킨 데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정 장관은 “이번 민간 무인기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남북이 적대, 대결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며 “그런 상태에서 날려 보낸 것과 이번 민간인들이 무인기를 날려 보낸 것은 성격 자체가 판이하게 다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