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지난달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하기 전에 베네수엘라의 무기 시스템을 무력화한 ‘디스컴버뷸레이터(Discombobulator)’가 유사시 북한 핵·미사일도 불능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 국내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격으로 주목받는 디스컴버뷸레이터는 미래의 전쟁을 원천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정보기관과 군 관련 연구소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뉴욕포스트 인터뷰에서 베네수엘라 무기 시스템을 무력화한 첨단 장비를 ‘디스컴버뷸레이터’라고 불렀다. 그는 “(디스컴버뷸레이터가) 적의 장비를 무력화했다. 베네수엘라는 러시아산, 중국산 로켓을 갖고 있었지만 전혀 발사하지 못했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 그들이 (작동) 버튼을 눌렀지만,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았다”고 했다. 외신에 따르면 당시 베네수엘라의 방공 시스템은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 또 대통령실의 경호원들이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했다.
정부에서 ‘국방혁신 4.0′을 담당했던 주광섭 전 국방부 국방혁신기획관은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 군의 혁신 과제를 추진하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어떻게 통제하고 관리할 것인지에 주력했다”며 “베네수엘라 사례에서 보면, 미국은 유사시 북한의 핵무기를 불능 상태로 만들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그는 “전자기파, 사이버 침투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북한이 핵·미사일을 사용하기 전 단계에서 체계를 마비시키는 방식이 작전 개념에 포함될 수 있는데 유사시 미국은 디스컴버뷸레이터를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함형필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현대 무기체계는 대부분 IC 회로와 전자부품이 포함돼 있다”며 “북한에도 미국이 베네수엘라에 사용한 디스컴버뷸레이터가 적용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 역시 일부 기계식 무기를 제외하면 대부분 전자부품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전자기 스펙트럼 작전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함 센터장은 특히 미국이 무기 자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하드 킬(hard kill)’과 이보다 낮은 수준에서 데이터를 삭제·교란시키는 ‘소프트 킬(soft kill)’로 불능화가 가능한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군의 C4I(지휘·통제·통신·컴퓨터·정보) 체계 등은 물론 상당수 장비가 전자 기반으로 작동한다”며 “전자기펄스(EMP)뿐 아니라 화학적·전기적 방식으로 순간적으로 과전류가 흐르게 하는 방식으로 전자부품을 태우는 방식도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했다.
이장욱 한국국방연구원 신흥안보연구실장도 “디스컴버뷸레이터를 북한의 핵, 미사일에 적용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개념”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의 특수 작전이 실시될 때마다 숨겨졌던 비밀 병기들이 공개된다”며 “이번에 마두로 체포할 때 쓴 것은 EMP와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다만, 베네수엘라 작전에서 미군 군용기가 상공에서 방해 전파를 쏘았는지, 특수부대가 휴대용 장비를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미국이 앞으로 AI(인공지능)를 활용해 적국의 무기 시스템을 불능화시키는 방안에 대한 연구에 주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디스컴버뷸레이터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북한 핵과 미사일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니냐고 분석한다.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은 “디스컴버뷸레이터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자주 거론됐던 ‘레프트 오브 런치(Left of Launch)’ 개념과 맥을 같이한다”며 “미국은 적의 미사일이 발사되기 이전 단계에서 전자·사이버·물리적 수단을 동원해 체계를 교란하거나 무력화하는 데 집중하는 것 같다”고 했다. 신 전 차관은 “이는 미국이 독자적으로 축적해 온 고유 기술 범주로 한미 간에 논의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국방과학기술혁신 기본계획과 10대 국방전략기술 분야에서 고출력 레이저, 전자기 스펙트럼 무기 연구 등을 통해 북한의 시스템을 불능화시키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와 관련, 방위사업청과 국방기술진흥연구소(KRIT)에서 최근 공개한 국방기술기획서는 우리 군이 발전시켜 나갈 국방전략 기술로 ‘지향성 에너지’를 언급하며 “고출력 전자기파 무기, 고출력 레이저 등 지향성 에너지를 활용하여 적의 주요 무기 체계,시설을 파괴하거나 아군을 방어하는 기술”이라고 적시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비물리적 타격 구상이 지상 기반 핵·미사일 체계에는 가능하지만 수중 은닉 전력까지 포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수중에서는 전자기파의 전달이 제한되고, 탐지·추적 자체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북한은 최근 몇 년간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전력 강화에 집중해 왔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2월 핵잠수함 건조 현장을 시찰하며 8700t급 잠수함의 외형을 공개하기도 했다. 주광섭 전 국방부 국방혁신기획관은 “잠수함이 물밑으로 들어가는 순간 탐지와 대응의 난도가 급격히 높아진다”며 “지상의 핵과 미사일뿐만 아니라 북한의 SLBM에 대한 대응 방안이 시급하다”고 했다.
☞디스컴버뷸레이터
‘혼란시키다, 방해하다’를 의미하는 단어discombobulate에서 파생된 단어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달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성공 배경으로 언급한 미국의 최첨단 무기. 전자기 펄스(EMP) 등을 이용해 적국의 무기 시스템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인체를 무력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