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DMZ)는 6살배기가 현장학습을 갈 수 있는 놀이터가 아니다.”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에서 2019년 8월부터 2025년 11월까지 약 6년을 근무한 마이클 보삭 전 군정위 부비서장(deputy secretary)은 11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DMZ의 95%는 지뢰 약 200만발이 매설돼 있고 불발탄이 산재한 위험 지역”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부비서장은 현역 군인인 비서장을 보좌해 군정위 운영, 정전체제 관리, 대북·대남 협상 실무를 총괄하는 핵심 보직이다.

현재 동아시아 안보 문제를 연구하는 팔레 정책 연구소 대표인 보삭 전 부비서장은 “군정위에서 6년간 일하는 동안 한국 정부는 ‘지뢰밭 한가운데에 과학자를 보내 꽃을 채취하겠다’ ‘6살 아이들에게 DMZ 현장학습을 시키겠다’는 위험천만한 제안들을 해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권 일각에서 정전협정상 유엔군사령관이 갖고 있는 출입 승인 권한을 통일부 장관에게도 주는 ‘DMZ법’을 추진하는 데 우려를 나타냈다.

보삭 전 부비서장은 “판문점, 도라산전망대, 제3땅굴 등 정비된 ‘안보 견학장’만 본 사람들은 DMZ의 실태를 잘 모른다”며 “(DMZ법 통과 후) 단기적으로 있을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누군가 DMZ 내에서 사건·사고로 죽거나 중상을 입는 것”이라고 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2019년 북한에 타미플루를 지원하려 했지만 유엔사가 불허해 무산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보삭 전 부비서장은 “유엔사는 한국 정부 공식 요청 이후 24시간 이내에 반출을 승인했는데 북한이 받지 않았다”며 “당시 남북 갈등이 표면화되지 않기를 원했던 문재인 정부가 이를 제대로 밝히지 않아 유엔사 탓이라는 오해가 퍼졌다”고 했다.

지난해 유흥식 추기경과 김현종 국가안보실 1차장의 DMZ 방문이 불허된 것도 여권 일각에서는 ‘유엔사의 권한 남용’이라고 한다. 보삭 전 부비서장은 “DMZ 출입 규정을 잘 모르고 단순히 한국 국방부에 하루이틀 전 통보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일이 수도 없이 많았다”며 “현행 규정을 위반할 경우 유엔사는 출입을 불허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유엔사의 간섭’이란 비난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보삭 전 부비서장은 ”일부 한국 당국자들은 자신들이 DMZ 내 어디든 가서 이를 테면 기자 회견 등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북한군과의 합의에 따라 DMZ 내 활동에 대해서는 구체적 규정이 있다“고 했다. 그는 ”규정에 대한 이해 부족, 상급자의 명령에 하급자가 반박하기 어려운 문화, (DMZ 실정에 대한) 무관심 등이 DMZ를 둘러싼 갈등을 일으킨다”고도 말했다. 청와대나 국회, 정부 부처나 지자체 등에서 누군가가 DMZ 방문을 원하면 실무진이 이를 단기간에 밀어 붙이고 결국 유엔사가 불허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등이 주장하는 DMZ의 ‘평화적 이용’과 관련해 보삭 전 부비서장은 “DMZ가 ‘평화지대’가 되려면 (남북) 양측 간에 구체적이고 이행 가능한 합의, 주둔 병력의 축소, 포괄적인 지뢰 제거 노력,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인프라 개선 등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DMZ법은 정전협정이나 여러 한미 간 합의에 따른 한국 정부의 책임, 의무와 양립할 수 없다”며 “어떤 사람들은 이런 책임과 의무가 한국 주권에 대한 모욕이라고 불평할지 모르지만 한국이 정전협정과 관련해 미국과 맺은 양자 합의들은 주권 정부로서 한국의 권한 내에서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한국이 일방적으로 정전협정이나 다른 관련 합의의 조항을 수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보삭 전 부비서장은 “장기적으로는 (DMZ법이) DMZ가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해 더 큰 우려를 야기할 수 있다”며 “현 정부는 DMZ를 평화적으로 사용하려고 한다지만 다른 정권이나 비정부기구는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려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월북하려는 의도를 갖고 DMZ에 들어가거나 북한 측으로 풍선·무인기를 보내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사건·사고의 위험성을 높이는 다른 활동의 위험성도 커진다”고 말했다.

마이클 보삭 전 유엔사 군정위 부비서장. /유엔사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한 보삭 전 부비서장과의 인터뷰.

-2019년 타미플루 대북 지원을 막은 것은 유엔사가 아닌가.

“2019년 1월 타미플루 대북 반출을 유엔군사령부(유엔사)에서 막았다는 내용의 오보가 언론상에 계속해서 보도되고 있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유엔사는 2019년 1월 20일에 타미플루 반출을 승인했다. 한국 정부 공식 요청으로부터 24시간 이내에 이뤄진 조치다. 이후 1월 31일까지 매일 갱신된 대북 반출 신청을 계속해서 승인했다. 이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타미플루 전달에 관한 유엔사 팩트시트를 참조하면 된다."

-북한이 타미플루를 받지 않기로 한 것을 유엔사는 언제·어떻게 알았나.

“북한은 유엔사에 거부 의사를 통보하지 않았다. 유엔사는 나중에 한국 정부 측 카운터파트를 통해 북한이 화물 수령을 거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 한국 언론의 잘못된 보도가 이어졌나.

“문재인 정부는 남북 간 마찰을 인정하기 싫어했기에 통일부는 유엔사와 “(타미플루 지원을) 협조 중”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유엔사가 훼방을 놓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완전히 날조(complete fabrication)된 이야기다.

-한국 여권의 ‘DMZ법’이 통과돼 통일부 등이 DMZ에 대한 관할권을 가지게 되면 어떤 상황이 우려되나.

“단기적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는 DMZ 내 사건이나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다. 더 넓게 보면, DMZ 법은 정전협정뿐만 아니라 한미 간의 수많은 양자 협정 하에서의 한국 정부의 임무 및 의무와 양립할 수 없다.

일부는 이러한 임무와 의무가 한국의 주권에 대한 모욕이라고 불평할 수 있지만, 정전 준수와 관련해 한국 정부가 미국과 체결한 양자 협정은 주권 정부로서의 권한 내에서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한국이 일방적으로 수정할 수 없다.

장기적으로는 DMZ 더 큰 우려가 있다. 현 정부는 DMZ를 평화적으로 사용하려 하지만, 차기 정부 또는 비정부 행위자들의 의도는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월북하려는 의도를 갖고 DMZ에 들어가거나 북한 측으로 풍선·무인기를 보내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사건·사고의 위험성을 높이는 다른 활동의 위험성도 커진다. 정전협정의 중요성은 DMZ 행정에 있어 명확성, 일관성 및 투명성을 보장한다는 점에 있다."

-일각에서는 DMZ 관할권을 ‘영토 주권’ 문제로 바라본다.

“정전협정은 주권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주권은 남북이 해결해야할 정치적 문제로,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DMZ는 이런 상황에서 특정 규칙과 절차에 따라 관리돼야 할 행정 구역이다.

-유엔사 근무할 때 ‘6살 아이들의 DMZ 내 현장체험 학습’ 요청 등을 받았다고 들었다.

“DMZ는 놀이터가 아니다. 인프라가 열악하다. 상용 버스가 아닌 전술 차량이 다녀야 할 곳이다. 약 200만 개의 지뢰와 불발탄이 있다. 남북으로는 철저한 대비 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군대가 있다.

-한국 내부와 유엔사가 바라보는 DMZ의 위험성에 대한 시각차가 커 보인다.

“한국의 통념과 유엔사의 DMZ 내 프로토콜 사이에 괴리가 있는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DMZ에 대한 지식과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다. 판문점, 제3땅굴, 도라전망대와 같이 정비된 장소들을 가본다면 나머지 95%의 DMZ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하게 된다. 언젠가 DMZ가 ‘평화 지대’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 하지만 남북의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하며 강제력 있는 합의, 군사력 감축, 포괄적인 지뢰 제거 노력, 그리고 수백만 달러 규모의 인프라 개선 작업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출입 관련 정부 요청을 유엔사가 거부한다는 시각이 있다.

“여러 요인이 있다. 한국 측의 출입 규칙에 대한 이해 부족, 상급자의 명령에 하급자가 반박하기 어려운 문화, (DMZ 실정에 대한) 무관심이다. 청와대(Blue House) 고위급 인사가 DMZ 내 특정 지점 방문을 준비하도록 요청하는 상황이 있다. 출입 규칙을 잘 모르는 당국자는 하루 이틀 전에 국방부에 출입 의사를 전달하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확립된 규칙과 프로토콜에 어긋나면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은 유엔사다. 이런 일은 아주 여러 차례 반복됐다. 청와대는 예시일 뿐이다. 정부부처, 국회, 지자체 실무진의 이런 요청은 수도 없이 들어왔다.

또 일부 한국 당국자들은 자신들이 DMZ 내 어디든 가서 이를 테면 기자 회견 등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북한군과의 합의에 따라 DMZ 내 가능한 활동에 대해서는 구체적 규정이 있다. 지난해 유흥식 추기경 DMZ 방문 추진 때에는 촉박하게 출입 요청이 이뤄졌다. 13개 ‘안보견학장’에서 통상적인 DMZ 방문은 가능하지만 별도 협의가 필요한 행사는 (시간 상) 추진이 어렵다고 전했다. 그러자 통일부는 추기경의 DMZ 방문을 취소하고 유엔사를 탓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