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대미투자특별법’ 심사를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에 합의했다. 오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특위 구성안을 의결한 뒤, 그 후 한 달 간의 활동 기간 내에 여야 합의로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한미 관세 협상 후속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해 11월 민주당이 발의한 이 법은 미국에 약속한 3500억달러 대미 투자를 이행하기 위해 ‘한미 전략 투자 기금’을 설치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양국 합의에 따라 미국은 이 법이 발의된 지난해 11월부터 한국산 자동차·의약품 등에 부과했던 25% 관세를 15%로 인하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우리 국회에서 이 법이 통과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아 한국에 대한 관세를 다시 25%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미국 정부는 관세 인상을 확정 시행하기 위한 관보 게재 준비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막기 위해 방미한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카운터파트인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만나지 못한 채 3일(현지 시각) 귀국길에 올랐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이날 워싱턴DC에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통상·안보 현안에 대한 회담을 열었지만, 관세 문제에 대한 합의는 도출되지 않았다. 국회 특위가 대미투자특별법을 처리하기까지 최대 한 달여간 미국의 관세 인상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계속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여야는 민주당 8명, 국민의힘 7명, 비교섭 단체 1명 등 총 16명으로 특위를 구성하되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맡기로 했다. 국민의힘은 관세 협상에 대한 국회 비준 동의가 필요하다는 그간의 주장을 접어두고, 특별법 처리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美, 대미투자법 통과 때까지 관세 인상 미룰지는 불확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6일(현지 시각) 국내 입법 절차 지연을 문제 삼아 한국에 대한 관세를 다시 25%로 올리겠다고 밝힌 후, 미국 행정부는 관세 인상을 위한 관보 게재 절차를 시작했다. 우리 수출 기업의 경쟁력을 고려하면 국회의 대미투자특별법 통과까지 관보 게재를 보류해 달라고 미국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 방미한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카운터파트인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간 회동은 미국의 대(對)인도 관세 타결 일정 등이 겹치면서 성사되지 않았다. 뒤이어 미국을 찾은 조현 외교부 장관이 3일(현지 시각) 워싱턴DC에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회담을 했지만, 관세 문제에 대한 명확한 결론은 없었다.
이날 귀국을 앞두고 워싱턴DC에서 취재진과 만난 여 본부장은 “그리어 대표와는 방미 전 통화했고, 이번엔 (릭 스위처) USTR 부대표와 만나 2시간여 논의했다”며 “미국 측이 우리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이를 설명했고, 앞으로도 대미 접촉(아웃리치)을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 사태가 쿠팡 문제 등과 관련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여 본부장은 “쿠팡은 정보 유출이 핵심이며 디지털 통상 이슈와는 분리해 대응한다는 입장을 (미국에) 충분히 설명했다”고 답했다. 그는 “대미투자특별법의 국회 입법 지연이 핵심 원인으로 파악된다”며 “정부와 국회가 협업해 가시적 진전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는 조현 외교부 장관이 이날 루비오 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서 한미 관세 합의와 대미 투자 이행을 위한 국내적 노력을 설명하고 “통상 당국 간 원활한 소통과 협의가 이어지도록 외교 당국 차원에서도 계속 협력해 나가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국회에서 입법 절차가 진행되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는 취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 국무부 발표엔 ‘관세’란 표현이 아예 없었다. 미 국무부는 두 장관이 “민수용 원자력, 원자력 추진 잠수함, 조선, 미국의 핵심 인프라 재건을 위한 한국의 투자 확대 등을 위해 계속 긴밀히 협의하기로 했다”고만 밝혔다.
미국은 과반 의석을 기반으로 여러 법안을 일방 처리해 온 여당이 대미투자특별법을 아직까지 통과시키지 않은 것은 투자 의지가 없기 때문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민주당이 미국 정부가 우려를 표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등은 통과시켰으면서도 대미투자특별법은 서두르지 않은 데 불만이 크다는 것이다. 그리어 USTR 대표는 지난달 “한국은 3500억달러 투자 등을 약속했다”며 “하지만 관련 법안을 처리하지 않고 디지털 서비스 관련 새 법을 도입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대미 투자와 관련해 미국 측의 불만도 감지된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지난달 미국을 찾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에게 국회의 대미투자특별법 처리 지연 문제와 함께 투자 프로젝트 선정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취지로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적극적인데 한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투자 프로젝트와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에너지, 인프라 등 다양하게 이야기했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었다”고 했다.
다만 정부는 미국이 당장 25% 관세 부과 조치를 관보에 게재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 본부장은 한국에 대한 관세 인상 시점에 대해 “미국 내에서도 관보 게재를 위한 관계 부처 협의를 거치고 있는 단계”라며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민주당이 4일 국민의힘과 특위를 구성해서 여야 합의로 대미투자특별법을 처리하기로 한 배경에도 결국 대미 투자를 너무 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여권 관계자는 “법이 통과되고 나면 트럼프 대통령이 25% 관세보다 더 부담스러운 금액의 대미 투자를 압박하지 않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초 로이터가 보도한 인터뷰에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강달러와 원화 약세 등으로 인해 올해 상반기에는 3500억달러 투자 실행이 어렵다고 했다. 관세 부과의 적법성에 대한 미국 연방 대법원의 판결도 어떻게 나올지 불투명하다.
그러나 만약 미국이 25% 관세 부과를 일단 시작하면, 이후 우리 국회에서 대미투자특별법이 통과됐다고 해서 바로 다시 지난해 합의한 15%로 인하해 줄지는 알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 우리 측의 대미 투자가 이뤄질 때까지 25% 관세를 유지할 수도 있다”며 “미국이 더 고율 관세나 다른 수단으로 압박해 올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미 외교장관은 이날 회담에서 한반도와 세계 문제도 논의했지만, 방점은 달랐다. 국무부는 두 장관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외교부는 ‘비핵화’ 언급 없이 조 장관이 우리 정부의 남북 긴장 완화, 신뢰 구축 노력을 설명하고 “한미가 함께 대북 대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발신하며 북한의 대화 복귀를 견인해 나가자”고 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