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2022년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무단 설치한 석유 시추선 형태의 대형 고정식 구조물. 가로 100m, 세로 80m, 높이 50m 규모다. 27일 중국은 무단 설치된 이 구조물을 PMZ 밖으로 이동시키는 중이라고 밝혔다./국민의힘 엄태영 의원 제공

중국이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무단 설치한 대형 구조물 1기를 이동시키는 중이라고 27일 밝혔다. 양국 배타적경제수역(EEZ)이 중첩되는 지역에 무단 설치한 구조물 3기 중 2022년 ‘관리 시설’이란 명목으로 설치한 유인(有人) 시설만 PMZ 밖으로 옮긴다는 것이다.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 기자의 관련 질문을 받고 “중국 측 기업이 현재 관리 플랫폼 이동과 관련한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 해사국도 관련 공지를 했다.

우리 외교부의 강영신 동북·중앙아 국장은 “정부는 PMZ 내 일방적 구조물 설치에 반대하는 입장 하에 그간 대중국 협의를 이어온 만큼, 이번 조치를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하고 있다”며 “한중 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는 변화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양국 외교당국은 지난 5일 열린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유인 시설부터 철거하는 방안을 협의해 왔다. 이재명 대통령도 회담 후인 지난 7일 “관리하는 시설은 ‘철수할게’라고 해서 아마 옮기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외교부는 구조물 이동이 “기업이 자체적인 경영 발전 수요에 따라 자율적으로 내린 배치 조정”이라며 정부 연관성은 부인했다. 나머지 구조물 2기는 여전히 PMZ 내에 남아 있다. 중국은 우리 측에 이동 통보를 이날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국에 관세 재인상을 위협한 당일 발표해 한국을 중국 쪽으로 끌어당기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해 반쪽 철수… 정부 “추가 협의”, 중국은 확답 안 해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 내에 무단 설치된 중국 측 구조물 중 1기를 PMZ 밖으로 이동시키는 이번 조치는 약 10개월에 걸친 양국 정부 간 협의의 결과물로 풀이된다. 중국은 PMZ 안팎에 부표 최소 13개를 설치했고, 2018~2024년 대형 철제 구조물도 3기 설치했다. 우리 외교당국은 그중 대형 철제물 3기에 대해 지난해 4월부터 중국 측과 고위급·실무 협의를 진행했다. 지난해 11월 경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이재명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이 문제를 제기했고, 지난 4~7일 이 대통령의 국빈 방중을 앞두고 큰 틀의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안보 전문가는 “트럼프 미 행정부는 역내 동맹국들이 대중 견제를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한국·일본에 대한 관세 위협을 서슴지 않아 왔다”며 “한국이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 대오에서 이탈하기를 바라온 중국이 그 기회를 이용하기 위해 서해 문제를 다소 조율하기로 결정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중어업협정에 따라 PMZ에서는 양국 어선의 조업만 허용돼 있다. 하지만 중국은 2018년과 2024년 지름 약 70m의 철제 이동식 구조물을 설치했고, 2022년엔 석유 시추선 형태의 고정식 구조물 1기도 설치했다. 중국 측은 이동식 구조물 2기를 각각 ‘선란(深藍) 1·2호기’라고 부르며, 민간 기업의 ‘양식 시설’이라고 주장해 왔다. 고정식 구조물 1기는 그 관리 시설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한중 정상회담 후인 지난 7일 “중국은 ‘진짜 물고기 양식장인데 뭘 그러냐’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관리 시설’이라는 고정식 구조물에는 헬기 이착륙장과 숙소가 있고, 고속정과 잠수 장비 등을 갖춘 인력의 모습도 확인돼 ‘군사 시설’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달 중국의 서해 구조물 설치는 “회색지대(grey zone) 전술”이라며 “남중국해 등에서 (섬이나 암초 등을) 군사화할 때 사용한 ‘점진적 주권 확장’ 방식”과 같다고 지적했다. 민관(民官)의 경계가 불분명한 중국 체제의 특성을 이용한 내해화 작업이란 것이다. 우리 정부도 이런 점을 고려해 지난해 봄부터 3기의 구조물 중 관리 시설부터 우선 철거하는 게 좋겠다는 뜻을 중국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威海) 해사국의 공고에 따르면 예인선 두 척을 동원해 이 구조물을 이동시키는 작업은 27일 오후 7시(한국 시각 오후 8시)부터 31일 자정까지 진행된다. 정부 당국자는 “논란됐던 잠정조치수역 내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까지는 확인했다”고 말했다. 일단 PMZ 외부로 이동하겠다는 방침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PMZ 내에 남아 있는 구조물 2기의 처리다. 우리 외교부는 “일관되게 견지해 온 우리 입장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계속 진전을 모색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모든 구조물의 철거를 위해 협의를 지속하겠다는 것이다. 중국과의 서해 해양 경계 획정은 더욱 지난한 장기 과제가 될 전망이다.

이날 구조물 이동을 발표하면서도 중국 측은 국가의 관여나 정부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의 발표는 “황해에 설치한 양식 시설을 이동하나? 한국 측의 요구와 관련 있나?”라는 자국 기자의 질문에 대해 궈자쿤 대변인이 “알아본 바에 따르면 중국 측 기업이 현재 관리 플랫폼 이동과 관련한 작업을 실시 중”이라고 답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어디까지나 기업의 경영상 결정이지, 한중 간 외교 협의의 결과나 중국 당국의 공식 조치는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궈 대변인은 또 “중국 측은 남황해 어업 양식 시설 문제에 대한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했다. 어디까지나 양식 시설이란 뜻으로, 앞으로 남은 구조물 2기의 철거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다만 궈 대변인은 “중국과 한국은 해상 이웃 국가로서 양측은 관련 해상 사안에 대해 줄곧 긴밀한 소통을 유지해 왔고, 이견을 적절히 관리·통제하는 한편 상호 이익의 협력을 촉진해 왔다”고 했다. 갈등 관리를 위한 협의는 계속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