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군사령부는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법률’과 관련해 “DMZ법 통과는 정전협정 정면 위배”라고 28일 밝혔다. 유엔사는 지난해 12월 성명을 통해 군사분계선 이남 DMZ 출입 통제는 유엔사의 고유 권한이라고 밝혔는데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평시 한반도 정전 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유엔사가 특정 현안과 관련해 기자들과 만나 직접 입장을 밝힌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유엔사 관계자는 이날 서울 용산 드래곤힐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 정부는 주권에 따라 DMZ 남측 구역에 대한 관할권을 회수할 수 있다(can take back)”면서도 “하지만 법리적·논리적으로 볼 때 한국 정부가 그렇게 한다면 이는 정전협정과 직접적으로 충돌하게 된다”고 했다. 유엔사 관계자는 DMZ법 통과와 관련해 “그 행동에는 중대한 결과가 따를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법리적 관점에서 DMZ 법안이 통과되면 한국 정부는 정전협정의 대상이 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정전협정을 관리·감독하는 유엔사 권한을 저해하고 한국·유엔사뿐 아니라 다른 당사자들 사이에 상당한 우려를 야기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물론 유엔사회원국과 북한 등도 이를 우려한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이재강·한정애 의원 등은 비군사적·평화적 목적의 경우 DMZ 출입을 한국 정부가 승인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각각 발의했고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유엔사는 여권 주장대로 유엔사령관의 출입 통제권을 제한하는 것은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만약 해당 법이 입법돼 유엔사령관 승인 없이 민간인이 DMZ를 출입하게 될 경우 원칙적으로는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입장도 밝혔다.
유엔사 관계자는 “민간인도 MDL을 월선하면 정전협정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유엔사와의 협의나 승인 없이 민간인의 DMZ 출입을 허용하기 시작하면 완충 지역이라는 DMZ의 존재 이유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했다.
유엔사 관계자는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며 “만약 DMZ 내에서 사건이 발생해 적대행위가 재개된다면, 실패의 책임을 추궁받을 사람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고 유엔사령관”이라고 했다. 군 소식통은 “최근 무인기 사태 등을 보면, 유엔사 입장에서는 한국 민간인이 DMZ 내에서 돌발 행위에 나서는 상황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유엔사 관계자는 “유엔사는 군사 조직이지 국가가 아니고 주권(sovereignty)을 가질 수 없다”며 “정전협정은 (한국의) 주권을 양도하는 것이 아니라, DMZ 남측 구역에 대한 관할권과 통제권을 부여하고 있다”고 했다.
유엔사가 지난해 김현종 국가안보실 1차장의 DMZ 출입을 불허한 배경에 대해서는 실무적 이유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유엔사에 따르면 김 1차장은 지난해 11월 말 DMZ 내 화살머리 고지 출입을 신청했지만, 마침 한국군 간부가 지뢰 폭발 사고로 부상을 입는 등의 상황 때문에 안전상의 이유로 시점을 연기하고 방문 장소도 변경했다는 것이다.
제이비어 브런슨 유엔사령관은 지난해 12월 미국 팟캐스트에 출연해 “우리의 행동을 규정하는 것은 ‘정전협정’이고 정전협정에 명시된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며 “정전협정이라는 법적 문서를 무력화하면서 일하는 방식을 변경하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날 유엔사의 발언도 이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으로 해석됐다. 다만 유엔사 관계자는 “여권의 DMZ법 입법에 대한 우려를 밝히기 위해 마련한 자리는 아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