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 중인 엘브리지 콜비 미 전쟁부(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이 26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국방 전략은 제1도련선에서 ‘거부에 의한 억지(deterrence by denial)’를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며 “여기에는 일본, 필리핀, 한반도에 걸쳐 회복력 있고 분산된 전력을 현대화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중국이 역내 패권국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하도록 일본 열도~대만~남중국해를 잇는 제1도련선에서 막겠다는 뜻으로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은 물론, 한국이 연루될 가능성도 커졌다.
콜비 차관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연구소에서 열린 초청 연설에서 “인도·태평양은 이제 글로벌 경제 성장의 중추이자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제조업의 허브다. 미국의 장기적 안보, 번영, 자유는 여기서 벌어지는 일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며 “이 핵심적 지역을 어떤 국가도 지배하지 못하도록 막는 힘의 균형”을 찾겠다고 했다. 중국의 코앞에서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국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듯한 연설이었다.
18분 안팎의 연설에서 콜비 차관은 중국을 7차례 언급했고 북한은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추구하는 바는 미국뿐 아니라 동맹국에도 효과가 있는 안정적인 균형, 어떤 국가도 패권을 강요할 수 없는 유리한 힘의 균형”이라며 “이러한 안정은 바로 ‘괜찮은 평화(decent peace)의 토대’”라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군사력·산업 능력·정치적 결의를 갖춘 동맹국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지난 23일(현지 시각)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국방전략(NDS)’ 작성을 주도한 콜비 차관은 이런 내용을 이날 우리 정부 고위 당국자들과의 면담에서도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오랫동안 동맹이 일방적인 의존이 아닌 공동 책임에 기반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며 “대한민국이야말로 이를 가장 깊이 이해하고 실천하는 나라다. 그래서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지로 대한민국을 선택했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국방비를 GDP(국내총생산) 대비 3.5%로 증액하고, 대북 재래식 방위를 주도하기로 했다.
◇“감정만으론 동맹 안돼… 많은 나라가 방어에 과소 투자"
엘브리지 콜비 미 전쟁부 정책담당 차관은 26일 세종연구소 초청 연설에서 약 18분간 연설했다. 참석한 관계자는 “미 국방전략(NDS)에 명시된 안보 상황 평가 내용을 대부분 반복했는데, 그만큼 NDS에 정책통인 콜비가 깊게 관여했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했다.
대중 강경파로 알려져 있는 콜비는 이날 연설에서 “제1도련선을 넘는 (중국의) 침략은 불가능하고, 확전은 매력적이지 않으며, 전쟁은 비합리적인 선택이 되도록 보장하는 군사 준비 태세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미국)는 베이징의 정권 교체를 추구하지 않으며 중국을 지배하려 하지 않는다. 중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알고 존중한다”며 중국에 대한 발언 수위를 조절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면서 연설 후반부는 동맹의 역할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뒀다.
콜비 차관은 한국의 국방비 증액 발표를 두고 “이재명 대통령의 결정은 매우 현명하고 현실적”이라며 “한국은 모범 동맹”이라고 했다. 또 “동맹은 위험 공유, 비례적 기여, 지속적인 상호 이익에 기반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미동맹은 공유된 역사와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서도 “결국 동맹은 감정(sentiment)만으로는 구축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너무 오랫동안 주요 지역의 안보가 미국에 불균형적으로 의존해 왔고, 많은 동맹국들은 자체 방어에 과소 투자해 왔다. 그러한 불균형은 공정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고 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실상 미국의 안보 패키지가 ‘구독형 서비스’로 바뀌었다는 것을 재차 강조한 것”이라며 “과거에는 무상으로 모두 퍼줬다면 앞으로는 동맹이 기여한 정도를 따져서 미국도 지원을 해주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군 소식통은 “일본에 앞서 한국을 찾아 한국의 기여를 강조한 것은 일본을 압박하려는 포석으로 볼 수도 있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NATO 및 한국과 같은 수준인 ‘GDP 대비 3.5%’를 일본에도 비공식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