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지난 23일(현지시각) 공개한 새 국방전략(NDS)에 동맹에 대한 ‘핵우산 제공’을 의미하는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라는 표현이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으면서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에 이어 NDS에서도 ‘북한 비핵화’ 목표와 함께 ‘확장억제’란 단어 자체가 사라지면서, 역내 유사시 미국의 핵우산 제공 의지를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을지 불분명해졌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번 NDS는 한국이 “대북 억제를 책임질 능력이 있다”며 미군은 “결정적(critical)이지만 더욱 제한적(more limited)인 지원”만 하겠다고 했다. 2022년 바이든 행정부가 발표한 NDS에는 ‘확장억제’ ‘핵 확장억제’ 등의 표현이 5차례 등장했고, NDS에 첨부된 핵 태세·미사일 방어 검토 보고서까지 합치면 ‘확장 억제’란 말이 23차례나 나왔다.
이런 변화에 대해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은 “동맹에 대한 ‘핵심적(critical) 지원’이란 표현이 핵우산 제공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며 “그보다는 중국 핵 전력도 증강되고 있는데 어떻게 대응할지 등에 대한 실질적 협의를 미국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안보 전문가도 “미국이 핵우산 제공을 안 한다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붕괴할 텐데 확장억제 언급이 없다고 안 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4월로 예정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이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대화 추진 등을 염두에 두고 북·중을 자극하는 표현을 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방한한 피트 헤그세스 미 전쟁부 장관은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서 “핵을 포함한 미국의 모든 범주의 군사능력을 운용해 대한민국에 확장억제를 제공한다는 미국의 굳건한 공약을 재강조”했다. 미 정부 당국자들도 이런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외교·안보 부서의 한 고위 전직 당국자는 “트럼프의 국방전략이란 결국 미국이 들이는 비용은 최소화하고 미국 본토를 우선 방어하겠다는 것”이라며 “한반도에 진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미국이 본토가 북한의 핵 공격을 받을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할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NDS 작성을 주도하고 그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25일 방한한 엘브리지 콜비 미 전쟁부(국방부) 정책 담당 차관은 지난 2024년 바이든 행정부의 확장억제 공약에 대해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하기 위해 미국 여러 도시와 미국인을 북핵 공격에 노출시키는 위험”이 있다며 “미국은 이 약속을 지킬 수 없다”고 말한 적 있다. 실제 이번에 발표된 NDS에도 북한 핵 능력의 “규모가 커지고 정교해 지고 있다”며 “미 본토에 대한 명확하고 현존하는 위협”이란 표현이 담겼다.
이 전직 당국자는 “앞으로 중국 견제를 위해 주한미군을 해·공군 위주로 재편해 지상군을 감축·철수하고, 전시작전통제권까지 한국군한테 넘겨준다면 한반도 유사시 미군이 한반도에 얼마나 개입하겠나”라며 “원거리에서 정보를 제공하고 재래식 중장거리 미사일로 공습해 주는 정도의 제한적 지원만 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다.
미국이 확장억제 공약을 표현하지 않는 것 자체가 문제란 시각도 있다. 군 소식통은 “미국이 공식 문서를 통해 확장억제 의지를 만천하에 천명하는 것 자체가 주는 억지 효과가 있는데, 한미 간 논의나 비공개 석상에서만 얘기한다면 억지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용 문제로 바이든 정부에서 본격화했던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도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관심 자체가 줄어든 측면도 있다. 이번 NDS에는 “한국은 북한의 침공 위협을 계속 경계해야 한다”는 등의 표현이 담겼다. 하지만 북한의 위협에 대한 서술은 영단어 118개로 중국(347단어), 러시아(369단어), 이란(446단어)에 대한 서술보다 훨씬 짧았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확장억제는 물론 북한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나 우선순위가 이전보다 낮아졌다고 봐야 한다”며 “바이든 행정부의 핵태세 검토보고서에는 ‘북핵 사용시 북한 정권 종말’ 같은 표현도 담겨있었는데 앞으로 이런 표현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
동맹국에 대해서도 미 본토와 같은 수준의 핵 억제력을 제공하겠다는 미국의 공약. 핵우산 개념에 재래식 무기, 미사일 방어 등을 더해 잠재적 적국이 동맹국을 핵 공격하면 미국이 모든 역량을 동원해 보복하겠다고 천명해 공격을 억지한다. 미국은 1978년 한국에 대한 핵우산 제공을 명문화했고,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확장억제를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