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일본 나라현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은 일본 측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의 환대를 받았습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이 대통령을 태운 자동차가 도착할 때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영접했습니다. 이튿날엔 호류지에서 먼저 대기하며 예우했습니다. 한일의 남녀 정상이 함께 드럼을 친 장면은 오래도록 양국 역사의 중요한 기록 사진으로 남을 겁니다. 일본 외교가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의전에서 성의를 보였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이 대통령은 이에 앞서 4일부터 7일까지 중국을 국빈 방문했는데, 이때도 중국은 9년 전 문재인 대통령 방중 때와는 대비되는 예우를 했습니다. 문 전 대통령 방중 때는 사드(THAAD) 갈등의 여진 속에서 의전 논란과 ‘혼밥’ 장면이 ‘굴욕 외교’의 상징처럼 남았습니다. 국빈 방문임에도 환영 행사 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문제가 됐습니다. 조어대에서 열린 한중 비즈니스 회의에서는 동행했던 한국 기자들이 폭행당하고, 혼잡한 시장처럼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는 증언들이 나왔습니다.
문 전 대통령 방중 때 차관보급을 공항에 내보냈던 중국은 이번엔 장관급을 내보냄으로써 격을 높였습니다. 이 대통령은 중국의 시진핑 주석, 리창 총리와 모두 식사를 하고, 우리 국회의장 격인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 상무위원장도 면담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의 새해 벽두 연쇄 중일 방문으로 인한 최대의 ‘피해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라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며칠 전, 전직 외교관들이 참석한 모임에서 “같은 진보 정권인데, 이재명 대통령의 잇따른 중국, 일본 방문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방중, 방일이 비교된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일본 방문 10시간 만에 돌아온 문재인 대통령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5월 대통령 취임 후 첫 방일 당시 10시간 만에 돌아온 것은 이 대통령의 이번 첫 방일과 여러 면에서 비교됩니다. 문 전 대통령은 당시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6년 반 만의 방일로 주목받았지만, 한·중·일 3국 정상회의참석, 한일 정상회담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다른 행사가 없었습니다. 아베 신조 총리가 문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을 축하하는 케이크를 선물했지만, “이가 좋지 않아 단것을 잘 먹지 못한다”고 해 일본 측이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한일 오찬 회담후,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주일 대사관의 대사 관저에 2시간가량 머물다가 귀국했습니다.
문 전 대통령 측은 “한·중·일 3국 정상회의 때문에 방일한 것이고, 방일 다음 날이 취임 1주년이기 때문에 빨리 돌아와야 했다”고 하나 변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2018년 10월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 후 반일 정책 기조를 유지하다 보니, 일본 방문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었다는 관측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문 대통령이 회담 후 일본의 유력 인사들도 안 만나고, 재일 교포들과의 모임도 갖지 않고 10시간 만에 귀국한 것이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문 전 대통령의 당시 방일은 리커창 중국 총리와 선명하게 대비되기도 했습니다. 당시는 한·일 관계 못지않게 중·일 관계가 일본의 센카쿠 열도 영유권 주장 이후 긴장된 상태인데, 리 총리는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5월 8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리 총리는 11일엔 아베 총리와 함께 홋카이도의 삿포로를 방문하며 자신의 방일을 중·일 양국의 화해 계기로 삼았습니다.
중·일 갈등에서 ‘전략적 환대’받는 이 대통령
국제 정치에서 상대국 지도자에 대한 최고 예우와 환대는 개인적 호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그 나라가 가진 전략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향후 외교 노선을 함께하고 싶다는 시그널입니다.
미·중 전략 경쟁이 구조화되고, 중·일 간 갈등이 커지는 상황에서 한국은 동북아시아에서 ‘가까이 지내야 할 국가’이자 ‘완충 지대’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미국, 일본과 갈등이 커지고 있는 중국의 입장에선 한국은 거리를 좁혀야 할 ‘관리 대상’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한국을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떼어 놓으려고 합니다. 일본의 입장에서도 한국의 몸값은 올라갔습니다. 트럼프가 기존의 동맹은 중시하지 않고, 서반구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중국과 맞설 때 한국과의 연대는 필수적입니다.
이명박 정부 주도로 서울에 한·중·일 협력 사무국 설립
중일 갈등이 커질 때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10월 서울에서 출범한 한·중·일 협력 사무국(TCS)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TCS의 서울 유치는 이명박 정부의 외교 성과 중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중국과 일본이 TCS 사무국을 서울에 설치하자는 이명박 정부의 제안을 거부하지 못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모두와 제도적 협력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중국과 일본을 포괄하는 협력 기구를 서울에 유치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는 좋지 않다”는 오래된 통념을 흔드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2011년 TCS 설립을 기념한 국제 학술 회의에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와 탕자쉬안 전 중국 국무위원을 포함해 200여 명의 3국 지식인이 참석했습니다. 이들은 한국어·중국어·일본어·영어를 자유롭게 섞어 쓰며 동북아의 미래를 논했습니다. 유럽공동체(EU)의 통합 경험을 동북아에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토론도 오갔습니다.
새해 시작부터 중국과 일본의 ‘전략적 환대’를 받은 이재명 대통령은 TCS의 역사를 새기며 이를 활용한 중재 외교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윤덕민·이희옥, “TCS 활용해 3국 정상회의 정례화하자”
지난 토요일(10일) 일본과 중국 관련 사안에서 두각을 나타내 온 윤덕민 전 주일대사와 이희옥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원 명예원장을 초대, 이 대통령의 중·일 연쇄 방문을 진단하는 좌담회를 가질 때였습니다. 사회자로서 저는 한국의 중재 외교 가능성을 타진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부정적인 입장이었지만, 동북아 평화를 위해 중·일 갈등을 중재하며 ‘피스메이커’ 역할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좌담회에서는 이런 문답이 오고 갔습니다.
- 이 대통령은 중·일 갈등 관련 중재 역할에 대해서 부정적인데, 우리가 할 역할이 정말 없나.
윤덕민 전 주일대사= 불가능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현재의 중·일 갈등은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고 중재하기에는 매우 까다로운 의제들인 것은 분명하나 중·일이 탈출구를 찾는 시점에 3국 외교장관 회의 등을 통해 협의 공간을 마련해줄 수 있다. 한국엔 한·중·일 3국 협력 사무국(TCS)도 있다. 3국 정상회의의 정례화를 통해 우리의 역할을 키울 수 있다.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원 명예원장= 이 대통령도 중국 방문 당시 우리 역할이 필요하면 하겠다고 했다. 3국 간의 다양한 대화 채널을 만들고, 같이 모이는 공간들을 만드는 그런 노력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현 상황에서 단기적 성과를 기대하는 중재는 어렵지만, 정례적인 대화의 틀을 복원하고 관리하는 역할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으로 다시 언급된 것이 바로 TCS인 것은 상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도해서 만들고, 서울에 유치한 TCS의 기능을 더욱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S. 신봉길 TCS 초대 사무총장과 ‘기가 센’ 중일 여성 사무차장들
TCS 초대 사무총장을 맡은 이는 한국 외교관 출신의 신봉길 전 주인도대사(전 한국외교협회장)였습니다. 그는 2011년 TCS의 초대 사무총장을 맡아 당시 동북아시아 외교가에서 일약 주목받는 인사가 됐습니다. 2011년 11월 발리에서 열린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에 이어 2012년 5월 중순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 잇달아 초청받았습니다.
베이징 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원자바오 중국 총리,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와 나란히 앉아 3국 간 현안을 논의했습니다.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한중일 협력 사무국의 운영 방향을 듣기 위해 그를 워싱턴 DC로 초대했습니다. 한·중·일 3국과 관련된 행사가 개최될 때마다 ‘섭외 대상 1순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신 총장은 TCS 사무실을 만들고 한중일 3국 직원들을 충원, TCS가 현재의 골격을 갖추는데 기여했습니다. 중국과 일본에서 파견된 사무차장들과의 협의를 이끌며 ‘화합’을 다졌습니다.
TCS의 중국 측 초대 사무차장은 현재 중국 외교부 대변인으로 활동 중인 마오닝이었습니다. 신 총장은 최근 자신의 SNS에서 마오닝 대변인과의 재회를 소개하며, “10여 년 전 서울에서 함께 일하던 사무차장이 이제 중국 외교의 얼굴이 됐다”고 회고했습니다.
일본 측 사무차장은 나중에 일본 정계로 진출한 마쓰가와 루이 참의원 의원입니다. 마쓰가와는 아베 신조 당시 총리에게 발탁돼 외교관 경력을 바탕으로 정계에 진출했습니다. 신 총장은 “실력 있고, 기가 센 중국과 일본의 사무차장들 사이에서 내가 고생 좀 했다”고 조크를 하기도 했습니다. 마오닝과 마쓰가와 루이, 두 사람 모두 상당한 실력을 갖춘 외교관들이었고, 세월이 흐른 뒤 각국 외교·정치의 전면에 등장했다는 점에서 TCS가 길러낸 인적 자산의 상징으로 평가할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