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 이재명 대통령의 전례 없는 ‘연쇄 한·중-한·일 정상 외교’에 국내외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미·중 대결이 구조화되고, 중·일 갈등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4일부터 7일까지 중국을 국빈 방문한 데 이어 13~14일 일본 나라(奈良)시를 찾는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열리는 연쇄 회담을 진단하기 위해 윤덕민 전 주일대사와 이희옥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원 명예원장이 10일 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의 사회로 좌담회를 가졌다.
1월에 한중·한일 회담…타이밍 좋아
- 새해가 밝은 지 2주 내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중국과 일본을 잇달아 방문하는 것은 이례적인데.
윤덕민 전 주일대사(이하 윤)= 한·일 정상회담 직전에 한·중 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열렸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중국은 이 대통령이 일본에 가기 전에 베이징을 먼저 방문하도록 하는 것이 외교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압송 등으로 국제 정세가 유동적인 상황에서 연쇄 회담 타이밍은 좋았다고 평가한다.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원 명예원장(이하 이)= APEC 정상회담 이후 두 달 만의 회동으로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움직인 측면이 있다. 이재명 정부는 3월 중국 양회, 4월 미·중 정상회담,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1월을 놓치면 중요한 국면의 조연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 같다.
中,일본 때리며 한국 압박
- 이 대통령 방중 기간에 중국의 일본을 향한 희토류 수출 통제 등 강경 조치가 나왔는데
윤= 중국은 사드 사태에서도 보듯, 한국을 압박의 틀 안에 두고 메시지를 관리해 온 경험이 있다. 개집 외교(Dog House Diplomacy)를 한 측면이 있다. 이 대통령을 일정 부분 환대하면서 일본에 강하게 나왔는데 이는 한국에 ‘언제든 다시 압박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것이다.
이= 중국은 이 대통령을 초청한 후, ‘살계경후(殺鷄儆猴· 닭을 죽여 원숭이를 훈계한다)’ 전략을 구사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이 가장 예민하게 보는 사안은 대만 문제다. 일본에 대한 희토류 통제는 단순한 경제 조치가 아니라 대만 문제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라는 신호다. 또한, 한국 기업의 핵심 광물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과시한 측면도 있다.
- 이 대통령이 시 주석의 “역사적으로 올바른 편에 서라”는 발언에 대해 “공자 말씀으로 들었다”고 하고, 쿠팡 정보 유출 범인이 중국인으로 알려진 것에 대해 “어쩌라고요”라고 말한 것이 논란이 됐다.
윤= 역사 문제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는 순간 외교적 부담이 커질 수 있었다. ‘공자 말씀’이라고 한 것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닐까. 혐중 문제는 중국이라는 장소적 맥락을 고려하면 답하기 어려운 질문인 것은 틀림없지만, 한국인들 사이에서 혐중이 퍼지는 배경을 따져서 답할 수도 있었기에 좀 아쉽다.
이= 시 주석 발언의 역사 관련 발언에 대해 특정한 해석을 덧붙이는 순간, 그 해석 자체가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이와 관련한 연루 위험을 피하려는 현실적인 대응이었다 본다. 쿠팡 관련 발언은 반중 정서가 정치화되면서 혐오로 번지는 메커니즘에 대한 경고로도 읽힌다.
- 다카이치 총리와의 한일 정상회담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윤= 문재인 정부 때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흐르자 중국이 우리를 홀대하고, 한미 동맹도 흔들렸으며 북한과의 관계도 결국 잘되지 않았다. 이를 상기해야 한다. 일본과는 역사 문제로 쉽지 않지만, 한일 관계가 악화됐을 때 우리 외교에 굉장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계속 일본을 중시하는 실용 외교를 펼쳐나가는 계기가 돼야 한다.
이= 한·일은 제조, 반도체, 로봇, 의료, 콘텐츠 데이터 등에서 강점을 공유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결합한 협력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이기에 실질 협력의 여지가 충분하다. 최근 유망한 ‘피지컬 AI’ 같은 영역에서 함께하면 경쟁력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데 주력했으면 한다. 한일간의 문화적 협력 증대로 중국에 메시지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中과 갈등 후, 다카이치 지지율 상승
- 중국과 일본은 올해 어떤 정치적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나
윤= 중국과의 갈등이후 다카이치 총리의 지지율이 높은 편인데, 지금 빨리 이 기세를 몰아서 1월말 2월초에 중의원을 해산해서 총선을 치르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현재의 상황은 2012년 센카쿠 열도로 인한 중일 분쟁 상황에서 예상을 뒤엎고 아베 신조가 총리가 된 것을 떠 올리게 한다.
이 = 중국에서도 일본을 때리면, 총리의 지지도가 높아지고 훨씬 권력이 공고화되는 현상이 생기는 것을 알아 차린 것 같다. 지금 중국은 내년 21차 당 대회를 앞두고 정치의 계절에 진입했다. 중국에서는 베이징(정치)의 온도와 상하이(경제)의 온도가 좀 다른데, 중국 경제가 어려운데도 베이징의 온도가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 이 대통령은 중·일 갈등 관련 중재 역할에 대해서 부정적인데, 우리가 할 역할이 정말 없나.
윤= 불가능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현재의 중·일 갈등은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고 중재하기에는 매우 까다로운 의제들인 것은 분명하나 중·일이 탈출구를 찾는 시점에 3국 외교장관 회의 등을 통해서 협의 공간을 마련해줄 수 있다. 한국엔 한중일 3국협렵사무국(TCS)도 있다. 3국 정상회의의 정례화를 통해 우리의 역할을 키울 수 있다.
이= 이 대통령도 중국 방문 당시 우리 역할이 필요하면 하겠다고 했다. 3국 간의 다양한 대화 채널을 만들고, 같이 모이는 공간들을 만드는 그런 노력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침공 이후의 정세와 이재명 정부의 외교에 대한 조언한다면.
윤= 패권 국가는 자신의 이해가 걸린 곳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베네수엘라를 침공한 트럼프 대통령은 4월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동북아에서의 ‘판돈’을 키우며 북한에도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본다. 이럴 때 한국은 중립을 선언하기보다 지켜야 할 가치와 이익을 분명히 하면서 일본 같은 ‘미들 파워’ 국가들과의 연대를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 전 세계가 미국, 중국의 세력권 정치로 재편되면서 동아시아에서 질서를 안정적으로 떠받칠 규범이 사라졌다. 중국은 미국의 행태를 보면서 주변 국가들에 대한 ‘그립’을 더 세게 잡으려고 할 것이다. 다른 국가들의 선택 난이도가 급격히 높아졌는데, 한국 외교 역시 중층적·다변화된 외교를 해 나가야 한다. 자강을 기본축으로 삼되, 지역 차원의 협력과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를 병행하며 외교 지평을 확장해야 한다.
☞윤덕민·이희옥
윤덕민 전 주일대사는 1991년 외교안보연구원에 임용된 후, 한일 관계를 비롯한 정부의 외교정책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 2013년부터 4년간 국립외교원장으로 활동했으며 주일 대사를 지냈다. 전문 분야는 한·미 동맹, 한·일 관계, 동북아 안보와 국제 정치.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원 명예원장은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 2012년 성균중국연구소의 초대 소장을 맡아 13년간 7차례 연임하며 한국의 대표적인 중국 싱크탱크로 키웠다. 주요 연구 분야는 중국의 정치 변동과 동북아 국제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