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내년 1월 4일부터 7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중국을 국빈 방문한다고 청와대가 30일 발표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17년 이후 9년 만이다. 이 대통령은 4~6일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 및 국빈 만찬 등 공식 일정을 갖는다. 6~7일엔 중국 상하이를 찾을 예정이다.
우리 대통령의 1월 방중은 이번이 역대 두 번째다. 2012년 1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3주 후 중국을 방문해 한반도 문제를 조율한 뒤 처음 있는 일이다. 중국은 통상 우리의 설과 같은 춘제(春節) 연휴와 3월 초의 연례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이후로 국빈 방문 등 주요 외교 일정을 잡는다.
이에 대해 정부 소식통은 “내년 4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미북 대화를 성사시키려면 서둘러 중국과 한반도 평화 구상을 조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우리 측이 조기 방중을 강력히 요청했다”고 전했다. 다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 협상과 남북 대화를 거부하고 있어, 한중 간 관련 논의도 비공개로 이뤄질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1월 중순 일본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대통령이 새해 벽두부터 중·일을 연쇄 방문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日 가기 전에 中 찾는 李… 시진핑 통해 ‘김정은과 대화’ 뚫으려는 듯
이재명 대통령은 11월 1일 경주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참석차 한국을 찾은 시진핑 주석과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일 “(당시) 시 주석에게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올해 중 방중했으면 한다고 말씀드렸다”며 “동북아 안정을 위한 안보 협력도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애초 국가안보실은 연초 방중에 대해 “중국 측이 그렇게 빨리 안 움직인다”(국가안보실 고위 관계자)고 했다. 하지만 12월 초순쯤 분위기가 바뀌었다. 정부 안팎에서는 정권 내부의 이른바 ‘자주파’, 특히 이종석 국가정보원장이 중국을 매개로 북한과의 대화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권 일각에서는 내년 4월 트럼프 미 대통령의 중국 방문때 김정은도 방중, ‘트럼프·시진핑·김정은 3자 회동’ 하는 시나리오도 거론한다.
다만 중국 측은 ‘비핵화 불가’를 주장하는 김정은의 입장도 배려해야 하기 때문에 한반도 문제에서 당장 가시적 성과가 나기는 어렵다. 중국 정부는 사회·문화적 부작용을 이유로 한한령(限韓令) 해제에도 미온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민생 성과’를 강조하고 있다. 강유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 대통령의 이번 방문을 통해 양국 정상은 두 달여 만에 다시 만나 한중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전면적 복원 흐름을 공고히 하고, 공급망·투자·디지털 경제·초국가 범죄 대응·환경 등 ‘민생’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구체적 성과를 거양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또 “부처 간 양해각서(MOU)도 다수 체결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중 전략 경쟁의 영향으로 흔들리는 한·중 경제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방안도 핵심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이번 정상회담 계기에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중국이 무단 설치한 구조물에 대한 논의가 진전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달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거론된 후, 양국 외교당국은 상호 타협할 수 있는 해결책을 논의해 왔다.
이 대통령은 방중 일주일여 후에 일본도 찾을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교도통신을 비롯한 일본 언론은 한·일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이 대통령이 1월 중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고향인 나라(奈良)시에서 정상회담을 여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재일 교포 단체인 민단은 나라시에서 열릴 예정인 이 대통령과의 동포 간담회 참석자 초청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정부 일각에서는 과거 노무현 정부의 균형자론, 문재인 정부의 균형 외교 기조의 연장선에서 한국이 최근의 중·일 갈등 완화에 일정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다만 중국의 입장은 냉담한 것으로 전해진다. 외교 소식통은 “중국은 일본을 본보기 삼아 미국과 동맹국에 대만 문제를 건드리면 강한 대가를 치른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국면”이라며 “한국이 개입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대만을 둘러싼 최근의 중·일 갈등과 관련해 우리 측의 명확한 입장 표명을 요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 우리 외교부는 이날 “정부는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대화와 협력을 통한 양안 관계의 평화적 발전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상하이 방문 시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할 예정이다. 강 대변인은 “상하이에서는 2026년 백범 김구 선생 탄생 150주년이자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100주년을 맞아 역사적 의미를 돌아보고, 앞으로 한중 간 미래 협력을 선도할 벤처 스타트업 분야에서 양국 기업의 파트너십을 촉진하기 위한 일정도 가질 예정”이라고 했다. 서울의 외교소식통은 이와 관련해 “중국 측이 임정 방문을 이용해 ‘한·중은 항일(抗日) 동지’란 메시지를 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