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오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구운 꼬치요리를 수린 핏수완 아세안 사무총장(오른쪽)에게 권하자 유명환 장관이 활짝 웃고 있다. 유명환 장관은 첫 4강 대사 인선에서 권철현 주일대사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건의가 모두 수용됐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은 기업인 출신 주중대사를 원했으나, 결국 외교관 출신의 신정승 대사가 임명됐다./조선일보

최근 국립외교원 외교사연구센터가 출간한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의 회고록(오럴 히스토리)은 이명박 정부의 4강 대사 인선을 둘러싼 비사를 구체적으로 담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그동안 역대 외교부 장관이 주요국 대사의 인선에 대해 기술한 적은 있지만, 청와대와 실제로 오간 논의 과정과 미묘한 긴장 관계를 이처럼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유 전 장관은 먼저 4강 대사의 중요성에 대해 분명히 짚습니다. “4강 대사에 우리나라는 특별히 의미를 두고 있다. 주변 4강은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여건에서 볼 때 외교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중국 및 러시아와의 외교는 북한과의 관계와 안보적인 측면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안보는 미국이고, 경제는 일본과 중국도 중요하다. 그래서 4강 대사라는 것은 외교정책 구상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태식 주미대사, 한미 FTA 때문에 유임

정권이 교체될 경우, 일반적으로 주변 4강 대사는 모두 교체하는 것이 관행입니다. 유 전 장관은 “취임 후 제일 시급한 것은 내가 주일대사를 하다 들어왔기 때문에 후임을 내정하는 것”이라며 “주일대사는 내가 검토하기 전에 먼저 청와대에서 정치적으로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을 내정했다”고 했습니다. 권 의원은 대통령 실장(비서실장)으로도 거론됐는데, 주일 대사로 나간 후 ‘간 큰 대사, 당당한 외교’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4월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 중 딕 체니 미국 부통령과 오찬 간담회를 갖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태식 주미대사, 이명박 대통령, 유명환 외교부장관, 전광우 금융위원장. 이태식 대사는 정권 교체 후 여당인 한나라당에서 '노무현 정부 사람'이라며 교체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외무고시 7회 동기인 유 장관이 한미 FTA의 성공을 위해 유임을 건의, 2009년 1월까지 재임했다./조선일보

반면, 2005년 9월 부임한 이태식 주미대사는 유임시키기로 했습니다. 그는 “그때 가장 큰 현안이 한미 FTA 비준 문제였기 때문에 한미 FTA 비준이 끝날 때까지 유임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직업 외교관이기 때문에 유임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외무고시 7회 동기인 이태식 대사를 유임시키는 결정에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이 대사는 노무현 정부에서 주영대사·외교부 차관·주미대사를 잇달아 역임하며 중요한 역할을 했기에 정권 교체 후 여당이 된 한나라당 내에서는 그를 ‘전 정권 사람’으로 분류하며 몰아내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필자가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하던 2008년 가을 여야 의원들이 국정감사차 워싱턴 DC에 왔을 때도 이런 기류가 감지됐습니다. 여당 의원 중 일부는 저와 다른 특파원들에게 “이태식 대사는 ‘노무현 정권 사람’인데, 교체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이 대사는 한미관계를 원만하게 관리하고, 유 장관의 배려도 있서 2009년 1월까지 약 3년 반 동안 재임하며 ‘장수한 주미대사’로 기록됐습니다. 이태식 대사 때 한미 비자 면제 협정이 체결되고, 60~70년대에 한국에 파견됐던 평화봉사단(Peace Crops) 단원들을 한국에 초대하는 ‘감사’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주러시아 대사 유임 결정은 쉽게 이뤄졌습니다. 유명환은 당시 이규형 주러시아 대사에 대해 “외교관 출신이고 정치적 색깔이 뚜렷하지 않았으며, 부임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기 인사 때 교체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며 유임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합니다. 이규형 대사는 이명박 정부에서 주러시아대사로 근무 후, 주중대사에 임명돼 한 정권에서 주중, 주러 대사를 역임하는 첫 사례가 됐습니다.

주중 대사 인선, 유독 난항

이명박 정부의 초대 4강 대사 중에 주미·주일·주러 대사는 순조롭게 결정됐습니다. 하지만 주중대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유명환은 주중대사 선임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합니다.

당시 주중대사는 베이징에서 6년 반 동안 ‘최장수 주중대사’로 활동했던 김하중 대사가 통일부 장관으로 입각하면서 공석이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주중대사는 한중 통상 관계, 무역 관계, 경제 협력 문제가 중요하니까 실물 경제를 다뤄 본 기업인 중에서 골라보고 건의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유 장관은 삼성, 현대차, LG 등 주요 대기업을 중심으로 현직 기업인 출신 주중대사 후보를 물색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습니다. 현직 기업인들은 주중대사직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유 장관은 그 이유에 대해 “대사로 가기 위해서 퇴직하면 2~3년 후에 다시 회사에 돌아올 수도 없고 보수도 하늘과 땅 차이이기 때문에 선뜻 수락할 사람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대기업에서 은퇴한 사람 중에서 고르는 건 ‘임팩트’가 없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게 차일피일 한두 달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그러자 청와대 인사 담당 실무선에서는 유 장관이 사보타주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청와대의 김명식 인사담당 비서관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기업인 중에서 주중대사 보내라고 그러니까 항명하시는 겁니까” 라며 독촉했습니다.

이에 유 장관은 이같 얘기했습니다. “그러면 청와대 인사 쪽에서 먼저 골라봐라. 그럼 내가 검토해서 얘기하겠다. 청와대에서 특별히 의중에 있거나 마음에 둔 사람이 있으면 먼저 좀 가르쳐 달라. 그러면 나름대로 알아보고 내 의견을 주겠다.”

이에 따라 청와대에서 주중대사 후보를 기업인 중에서 물색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적임자를 골라내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외교관 중에서 적임자를 보내라고 회신이 왔습니다.

유 장관은 그러자 1990년대 초 자신이 외교부 대변인으로 일할 때 중국 과장으로 한중 수교 교섭 실무를 맡았던 신정승 대사를 떠올렸습니다. 유 장관은 회고록에 한중 수교 협상이 극도의 비밀 속에 진행되던 상황에서 신정승 과장이 병원에 입원한 것처럼 병가를 내며 비밀 협상을 했던 일화를 소개합니다. 유 장관은 한중 수교 발표 당시 대변인으로 내외신 기자회견을 하고, 이상옥 장관을 수행해 베이징에 가서 첸치천(錢其琛) 외교부장과의 수교 서명식에도 배석했습니다.

“MB가 유 장관에게 힘 실어주려 신정승 대사 임명”

그는 이런 인연으로 외교부 아태국장에 이어 주뉴질랜드 대사를 역임한 후, 경기도 자문대사로 있던 신정승 대사를 주중대사 후보로 생각한 겁니다. 유명환은 “한중 수교 당시 중국과장이었던 신정승 대사를 (이 대통령께) 건의했더니 그 자리에서 승낙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에 따라 2008년 4월 10일 ‘권철현 주일대사, 신정승 주중대사 내정’이 발표됐습니다. 유명환은 “이런 얘기는 과거에 (공개적으로) 한 적이 없다. 4강 대사 임명에 얽힌 이야기를 (처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명환 외교부 장관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기업인 대신 추천해 베이징에 부임한 신정승 주중대사(맨 왼쪽)가 2008년 9월 13개월 간의 신축 공사 끝에 완공된 대사관저를 베이징 주재 한국특파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세계일보

그런데, 유 장관의 회고록과는 다른 시각도 존재합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측근 중에는 외교부가 주중대사 자리를 외부 인사에게 내주기 싫어서 ‘기업인 주중대사’ 후보를 열심히 찾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고 합니다. 김명식 비서관이 던진 “항명하십니까”에는 언중유골의 진실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유 장관이 외교관 후배를 주중대사로 보내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자, 이 대통령은 유 장관의 권위를 살려주기 위해서 이를 승인했다는 관측이 유력합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임명하는 첫 주중대사는 기업인 출신이 되기를 희망했지만, 유 장관에게 힘을 실어주는 선택을 했다는 겁니다. 이 대통령은 이후 중국에서의 신정승 대사의 업무 처리에 대해 대체로 만족했다는 후문입니다.

MB의 이규형 대사 임명 후, 외교관 출신 주중 대사 없어

이명박 대통령은 신정승 대사에 이어 류우익 비서실장을 주중대사로 임명했고, 2011년 5월에는 이규형 전 주러시아 대사를 다시 주중대사로 기용했습니다. 외교부와 외교관을을 중시하는 인사를 한 겁니다.

그러나 이규형 대사가 2013년 5월 귀국한 이후, 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부에서는 외교관 대신 정치인, 군인, 교수, 학자 출신 인사들이 잇따라 주중대사로 임명됐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주중대사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인 노재헌 씨를 임명했습니다. 주중대사에 외교관이 철저히 배제되는 흐름이 계속되면서 외교부 ‘차이나 스쿨’ 사기는 크게 저하돼 있습니다. 외교부 안팎에서는 당분간 이러한 흐름이 쉽게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