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가 외교부 주도 한미 협의에 불참하면서 ‘자주파’와 ‘동맹파’의 갈등이 부각된 가운데, 자주파 원로로 분류되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19일 “한미 협의체는 ‘워킹그룹 시즌2’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정 전 장관은 동맹파를 대표하는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운영과 관련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내 관련 특위에 자주파 배치를 검토하고 있다.
정 전 장관은 이날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외교부 주도의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 후속 협의에 대해 “이것이 언제 다시 한미 워킹그룹 시즌2로 나올지 모른다”고 했다. 정 전 장관은 “우리 외교부가 미국 국무부와 먼저 회의를 시작하면 백발백중 미국이 가자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며 “우리 정부 내에서 외교부·통일부·국방부가 (논의해서) 대북 정책이 정해진 뒤에 미국과 협의를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북 관계와 관련해 미국의 협조를 얻는 데 외교부에 부탁을 하면 처삼촌 묘 벌초하듯 (건성으로) 한다”고 했다.
정 전 장관을 비롯해 진보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자주파 인사 6명은 지난 15일 “외교부에 대북 정책을 맡길 수 없다”는 성명을 냈다. 문재인 정부 당시 한미 워킹그룹처럼 남북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은 또 NSC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는 위 실장이 “지금의 운영 체계는 김대중 정부 이래 운영된 제도와 관행을 따르고 있다”고 한 것을 두고 “위 실장이 아주 늠름하게 사실을 왜곡했다”며 “NSC 상임위의 전신인 김영삼 정부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 의장은 통일부 장관이었고, 김대중 정부 때도 상임위 의장이 통일부 장관이었다. 나도 했다”고 주장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NSC 상임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취지다.
민주당 지도부도 자주파 편을 들고 있다. 정청래 대표는 지난 17일 “정동영 통일부의 결정이 옳은 방향”이라며 “한미 관계 자주성, 남북 관계 자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조언하는 ‘한반도 평화 전략위’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한반도 평화 전략위에는 정 전 장관과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 등 자주파 인사 배치가 거론되고 있다.
다만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정 대표 발언은 특정한 입장을 대변하려는 것은 아니고 국회가 정부를 어떻게 뒷받침할 것인가를 강조한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국회 외교통일위 소속 한 여당 의원은 “통일부 측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는 내년 4월에 맞춰 남북 관계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고 보고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것”이라며 “최종 조율은 대통령실이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