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내로 번진 자주파와 동맹파의 갈등이 치열한 가운데 양쪽을 대표하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왼쪽)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오른쪽)./ 연합뉴스 뉴스1

통일부가 외교부 주도의 한미 협의에 불참하며 이른바 ‘자주파’와 ‘동맹파’의 갈등이 부각되자, 17일 대통령실이 뒤늦게 봉합에 나섰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앞으로 좀 자제하는 방향으로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조현 외교부 장관에게) 메시지가 전달됐다”고 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통일부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했다. 박지원 최고위원도 “통일부가 주무 부처를 맡고 외교부가 대미외교 지원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당이 자주파 편을 들고 나서면서 앞으로 여파가 계속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그래픽=양진경

◇北 대화 거부에 내부 갈등

이번 충돌의 표면적 원인은 한미 정상회담 합의 후속 이행을 위해 외교부 주도로 16일 열린 한미 협의였다. 한미 합의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도 포함돼 있어 외교부는 통일부에도 참석을 요청했다. 하지만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10일 “남북 관계는 주권의 영역”이라며 “동맹국과 협의의 주체는 통일부”라고 말했다. 통일부는 15일 “대북 정책 관련 사안에 대해 필요시 별도로 미국 측과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불참을 밝혔다.

정 장관과 함께 여권 내 ‘자주파’로 분류되는 임동원·정세현·이재정·조명균·김연철·이인영 전 통일부 장관은 같은 날 “남북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교부에 대북 정책을 맡길 수 없다”는 성명을 냈다. 외교부가 대미 협의를 맡으면 문재인 정부 당시 한미 외교 당국 간의 ‘워킹그룹’처럼 남북 교류 사업의 대북 제재 저촉 여부만 따지며 남북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정청래 대표도 “사사건건 미국의 결재를 받아 허락된 것만 실행에 옮기는 상황으로 빠져든다면 오히려 남북 관계를 푸는 실마리를 꽁꽁 묶는 악조건으로 빠져들 수 있다”고 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현재의 한미 협의는) 워킹그룹이 아닌데 황당하다”며 “북한이 대화에 나오거나 하면 제재를 어떻게 다룰지 고민할 수 있지만 아직 그런 수준의 대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북한이 한미와의 대화를 완전히 거부하고 있는 이런 상황이 오히려 갈등을 촉발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소식통은 “같은 자주파라도 이종석 국정원장은 대중 관계 등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데 정 장관은 정부 출범 후 6개월이 다 되도록 대북 대화가 꽉 막혀 있어 더 답답할 것”이라며 “그렇다고 대화를 거부하는 북한을 탓할 수도 없으니 외교관 출신인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외교부 등 동맹파에 책임을 묻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남북 관계를 우선하는 정 장관과 한미 공조를 중시하는 위 실장은 비핵화 목표, 한미 연합 훈련 조정, 남북 두 국가론 등 대북 접근법의 거의 모든 측면에서 이견을 보여왔다.

◇“대통령이 교통 정리 나서야”

정상회담 후속 조치를 위해 방미 중인 위 실장은 이번 한미 협의에 대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굉장히 긴 논의가 있었고 많은 토론을 거쳐 정리가 됐던 것”이라고 했다. “NSC에서 항상 많은 조율을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자주파는 위 실장이 NSC 상임위원장인 점도 문제 삼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장관이 상임위원장을 맡고, 국방부·외교부 출신인 안보실 1·2·3차장(차관급)도 NSC 토론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여권에서도 “이재명 대통령의 교통 정리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취임 초반 대미 관계가 워낙 중요해서 이 대통령이 위 실장의 조언을 많이 따랐다”며 “그런데 미·북 대화도 성사되지 않자 자주파에서 ‘이래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분출하는 것”이라고 했다. ‘NSC 상임위원장은 국가안보실장’이란 규정은 대통령령에 있어 대통령이 바꿔줄 수 있는데, 이 대통령이 정 장관 편을 들어주지 않아 외부로 갈등이 불거졌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통일부와 외교부의) 견해 차이가 드러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미국에만 매달리지 않고 남북 문제를 우선시하는 장관이 있다는 것은 북한을 향한 메시지로 나쁘지는 않다”고 말했다. 또 “(동맹파와 자주파 간에) 일종의 역할 분담, 전략적 포석 측면도 있다”며 “(이 대통령은 현재의 이견을) 관리 가능하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