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일본과 북한의 첫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던 다나카 히토시(田中均) 일본총합(総合)연구소 국제전략연구소 특별고문은 “북한과 상식을 벗어나는 협상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것이 불가능하면 협상을 중단한다는 원칙이 있었다”고 말했다.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으로 북한의 ‘미스터 X’와 비밀 협상을 했던 그는 최근 ‘금기를 깨뜨린 외교관’ 출간을 계기로 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다나카 고문은 사하시 료 도쿄대 교수 등과 대담 형태로 구성된 이 책에서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방북,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이뤄 낸 비밀 교섭에 대해서 상세하게 밝혔다. 다나카 고문은 인터뷰에서 “일본인 납치는 북한이 저지른 범죄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을 배려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 책을 보면 고이즈미 총리 방북을 앞두고 선양 주재 일본 총영사관에서 탈북자 진입 사건이 발생했는데, 일본 외무성이 이를 원칙대로 처리한 사실이 눈에 띈다. (일본은 총영사관에 들어왔다가 중국 공안에 잡힌 탈북자들에 대한 인도적 처리를 요구, 이들은 필리핀을 거쳐 한국에 입국했다.)

“이 사건이 났는데도 북한은 예정된 협의를 하자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국회 출석도 있고 해서 그대로 진행할 수 없어서 연기시켰다. 그러자 북한은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협의를 일방적으로 미룬 것을 뜻밖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나는 북한 측에 (인도주의 원칙에 따른) 탈북자 처리에 불평하지 말라고 했다.”

- 한국의 진보 정부에서는 북한과 대화하려면 북한에 양보하거나 북한 정권을 배려해야 한다는 입장이 강한데.

“내가 북한과 협상하면서 분명히 유지한 것은 상식을 벗어나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납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에 무언가를 양보한다든지,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돈을 지급하는 것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 북한이 비밀 협상 과정에서 집요하게 ‘돈’을 요구했다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북한이 집착한 것은 식민지 ‘보상’의 개념이 아니라 경제 협력의 금액이었다. 일북 관계 정상화되기 전에도 경제 지원을 바랬다. 일본이 얼마를 제공할지 구체적인 금액 제시를 요구했다. 이는 보상 차원의 요구가 아니라 정상화 이후의 경제협력 패키지를 사전에 확정하려는 의도였다.”

- 당시 비밀 협상한 미스터 X는 숙청된 류경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으로 알려져 있는데, 협상 상대로서 이를 확인해줄 수 있나.

“(고개를 저으며) 협상장에 나간 내게 중요한 것은 미스터 X가 약속을 이행할 수 있는 사람인가, 김정일과 직접 소통이 가능한가였다. 나는 그 사람의 실제 직업이 무엇인지, 본명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 고이즈미 총리 방북 당시 동행한 아베 신조 전 총리는 납치 문제를 정치적 기반 강화에 활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말한 그대로다. 아베 전 총리는 정치적 계단을 올라가기 위해 일북 관계를 활용했다. 그 결과 국민적 지지가 올라갔고, 이후 자민당 간사장, 관방장관, 나아가 총리까지 순식간에 올라갔다.”

- 퇴직한 후에도 동북아시아의 외교·안보 문제를 꾸준히 분석해 왔는데.

“지금의 국제 정세를 보면, 미국조차 한반도 유사시, 대만 유사시 실제로 군사 개입을 할 것인지에 대해 예전만큼 확신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서 보듯, ‘전쟁이 나면 미국이 와서 도와줄 것이다’라는 안일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엇보다 일본과 한국이 스스로 ‘전쟁의 씨앗’을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