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김 주한 미국 대사대리가 20일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담은 설명 자료인 ‘조인트 팩트 시트’에 대해 설명하면서 “공동 도전 과제에 대응해야 한다. 특히 최근 서해에서 일어난 일을 보면 (그 이유를) 잘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구조물을 무단 설치한 것을 언급하며 대중국 문제에서 한미 공동 대응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됐다.
김 대사대리는 서울에서 열린 한미외교포럼 기조연설에서 “우리는 역내 도전 과제가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함께 협력해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최근 서해에서 일어난 일”을 언급하면서 “그렇기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이 한국 국방비를 증액하고 핵(원자력)잠수함과 같은 새 역량을 도입하며 도전 과제에 대응하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한국의 원잠 건조를 승인한 것은 ‘중국 견제’를 염두에 두고 한 일이라는 의미다.
이에 대해 주한 중국 대사관은 대변인 명의로 “미국 관료의 잘못된 발언에 대해 놀라움과 불만을 표한다”고 했다.
◇美 대사대리 발언에, 中 “이간질 말라”
지난 14일 발표된 한미 조인트 팩트 시트에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직접 들어가지는 않았다. 지역 사안에 대한 조항으로 양 정상이 ‘합법적인 해양 이용을 수호하기 위한 노력을 재확인’했으며,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등의 표현만 있었다. 중국의 동·남중국해 내해화(內海化) 시도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됐다. 그런데 케빈 김 주한 미국 대사대리가 공개적으로 ‘서해 문제’까지 언급하면서 미국이 구상하는 한미 안보 협력의 초점은 사실상 대중 견제에 있다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이는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대중 견제에 소극적인 한국을 향해 미국이 ‘중국의 위협은 남 일이 아니니 더 많이 참여하라’는 요구를 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최근 방한한 대릴 커들 미국 해군참모총장도 지난 14일 “한국 원잠을 중국 억제에 활용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예측”이라고 말했다. 김 대사대리는 “(원잠 같은) 새로운 기회가 가능한 것은 한국이 모범 동맹이기 때문”이라며 “기꺼이 국방비를 투자하고 자체 부담을 지며, 한반도에 지속해 주둔하는 주한 미군을 계속해서 지원하는 동맹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의 국방비 증액을 평가하는 한편, 미국의 안보 정책에 협력해야 원잠 건조 등 현안에서 계속 미국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주한 중국 대사관은 이날 ‘미국 관료의 잘못된 발언에 대한 주한 중국 대사관 대변인의 질의 응답’이라는 입장을 통해 “얼마 전 중·미, 중·한, 한·미 정상은 한국에서 회담을 가졌고, 미국 측 관료의 발언이 지도자들의 합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며 “이간질하거나 시비를 걸지 않기 바란다”고 했다.
중국·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동맹국을 무장시키려는 구상은 미국 정부뿐만 아니라 미국 학계에서도 나오고 있다. 19일(현지 시각)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는 오클라호마대 모리츠 그레이프라트 국제안보 교수, 마크 레이먼드 국제관계 교수가 쓴 “미국의 동맹들은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제목의 기고문이 게재됐다. 이들은 “미국이 핵 비확산에 대한 엄격한 고수를 재고(reconsider)하고, 캐나다·독일·일본 등 소수의 동맹국이 핵무장하도록 장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선택적 핵 확산’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신뢰할 수 있는 몇몇 동맹국에 핵무장을 허용해 역내 안보를 주도하게 만들면 미국의 부담을 덜 수 있고, 동맹국들도 중·러 같은 지역 적대국의 위협에 확실한 억지력을 갖게 돼 ‘윈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레이프라트 교수 등은 한국이 핵무장한 북한과 ‘동결분쟁(frozen conflict·평화협정 없는 휴전으로 인한 저강도 갈등)’ 중이기 때문에 일본에 핵무장을 허용하는 것이 더 낫다고 봤다. 그러면서도 “서울이 독자 핵무장을 결정한다면, 한국 역시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핵 관리국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우리 정부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존중한다며, 핵무기 개발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18일 서울외교포럼 기조연설에서 “핵 없는 한반도는 포기해선 안 될 절대적 과제”라고 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4일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대한민국은 NPT 체제에 가입된 나라로서, 핵을 본질적으로 가질 수 없는 나라”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