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14일 한미 간 합의 사항을 담은 ‘조인트 팩트 시트(Joint Fact Sheet·공동 설명 자료)’를 발표하면서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에 대해 미국 정부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고 했다. 팩트 시트에는 미국이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원잠) 건조를 승인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국의 숙원이었던 농축·재처리 권한 확보와 원잠 건조를 미국이 지지한다는 입장이 처음 문서화된 것이다. 다만 이날 발표엔 큰 틀의 합의만 담겼을 뿐 구체적 방안은 포함되지 않아 험난한 추가 협상이 예상된다.

동해서 한미 연합훈련… 美 항모도 참가 한미 해군 함정이 지난 12일 동해상에서 연합 해상 훈련을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14일 한미 팩트 시트를 발표하면서 “국방력 강화, 전시작전권 환수를 통해 한반도 방위에 대한 우리의 주도적 의지를 천명했고, 미국은 지지하며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고 밝혔다. /국방부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불확실

원자력 협력에 대해 한미 팩트 시트에는 “미국은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를 지지한다”는 문구만 담겼다. ①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②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③평화적 이용이란 단서가 붙었다.

현행 한미 원자력 협정은 한국의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금지하고 있다. 20% 미만 저농도 우라늄 농축은 미국의 사전 동의가 있으면 할 수 있지만, 미국의 소극적 태도로 이를 논의하기 위한 한미 원자력 고위급위원회조차 2018년 이후 열리지 않고 있다. 한 안보 전문가는 “현행 협정에 부합하려면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는 할 수 없고, 우라늄 농축도 제한된다. 미국이 실제 이를 허용할 의지가 있는지 미지수”라고 했다.

정부는 ‘포괄적 사전 동의’를 받아 매번 미국의 사전 동의를 받지 않아도 농축·재처리를 할 수 있는 일본 수준으로 한미 간 협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농축·재처리 문제를 (해결)하려면 미국과 후속 협의해서 기존 협정을 조정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2015년 개정된 현행 협정은 2035년까지 유효하다. 미 행정부가 개정에 동의할지 미지수고, 미국 원자력법에 따라 미국 의회의 반대도 없어야 한다.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란 표현은 이를 의미한다.

위 실장은 팩트 시트 작성 과정에서 원잠보다 농축·재처리 관련 내용이 “마지막까지 많은 논의가 됐다”고 했다. 한국에 농축·재처리 권한을 주는 것을 반대하는 에너지부, 국무부, 전쟁부(국방부) 등 미국 행정부 내 비확산론자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평화적 이용이란 단서는 농축·재처리가 군사적 목적 없이 오로지 원전 산업을 위해 논의돼야 한다는 취지다.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은 이날 “핵추진 잠수함 연료 생산 관련 부분과 원자력 협정에 따른 민수용 농축과 재처리 부분은 (우리 정부도) 분별해서 보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원잠에도 美 입법 조치 필요

원잠과 관련해서는 “미국은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승인했다”며 “미국은 이 조선 사업의 요건들을 진전시키기 위해 연료 조달 방안을 포함해 한국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란 표현이 담겼다. 원잠 건조 장소와 방안이 없어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표현처럼 치열한 후속 협의가 예상된다.

위 실장은 이날 “(한미) 정상 간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 내 건조를 전제로 진행됐다”며 “건조 위치에 대해선 일단 (국내로) 정리됐다고 본다”고 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 내 건조 논의가 없었기에 이를 수용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그러나 정상회담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할 것”이라고 한 만큼 다시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원잠 원료로 쓰이는 농축 우라늄 확보를 위해서도 새로운 협정 체결 등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 위 실장은 “호주의 오커스 가입을 참고해 보면 미국의 원자력법 91조에 있는 예외 조항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했다”고 말했다. 핵물질의 군사적 이전을 통제하는 미국 원자력법을 우회하기 위해 미국 의회가 별도의 입법 조치를 해줘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미 조선 협력과 관련해서는 “한국 내 잠재적 미국 선박 건조를 포함해 미군 전투함의 수를 증가시킬 것”이란 말이 팩트 시트에 담겼다. 미국의 번스-톨레프슨법은 군함의 해외 건조를 금지하고 있지만, 이 대통령은 “미 해군 함정 건조조차도 대한민국 내에서 진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책을 모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미 의회의 법안 개정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우회 행정 명령 발동 등이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