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최근 ‘일본인 88인의 이야기’를 출간했습니다. 일본 야마토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본 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인물 88명을 골라서 쓴 일본 탐사 서적입니다. 약 1년 전부터 김 전 총리가 이 책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를 듣고 있다가 출간 직후 ‘아무튼, 조선일보 주말 섹션’아무튼, 주말’에 이를 소개했습니다.(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5/11/01/GUVJVHJUZFDLFOHSPAVCJMOGZE/)
그런데, 부끄러운 이야기를 고백하자면, 3년간 도쿄 특파원을 했으면서도 제가 모르는 이들이 이 책에 많이 있었습니다. ‘시마바라의 난’을 이끈 17세 소년 크리스천 아마쿠사 시로(天草四郎), 걸어서 일본 지도를 만든 이노 다다타카 (伊能忠敬)를 포함, 많은 이들을 처음으로 알게 됐습니다. 특히 일본의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편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찾아 머리를 숙였던 하타노 아키라(秦野章) 전 법무대신 일화를 발견하고, 밑줄을 굵게 그었습니다. 이 책을 계기로 하타노 전 법무대신이 1994년 9월 안 의사 탄신 115주년을 맞아 한국을 방문, “(안 의사의 동양 평화) 정신이 널리 퍼지지 않으면 세계 평화는 오지 않는다”며 추모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안중근 의사에 머리숙인 전 일본 법무대신
그래서 김 전 총리 인터뷰 중 이런 질문을 주고 받았습니다.
- 이 책을 통해 1982년 일본 중의원의 하타노 아키라 의원이 “한국에서 안중근이 영웅인 것은 당연하고, 일본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위대한 정치가인 것도 당연하다. 이것은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저는 하타노 의원의 말에 공감합니다. 안 의사는 일본을 배척한 분이 아닙니다. 한·중·일 세 나라가 협력해 서양의 침략에 대응해야 한다는 평화 사상을 가졌죠. 이토를 제거한 것도 일본에 대한 적대감 때문이 아니라 일본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안중근 의사 숭모회장을 2017년부터 맡고 있는데, 안 의사는 한일 관계의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디딤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한일 양국이 서로를 객관적으로 보고, 균형 잡힌 이해를 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길 바랍니다.”
김 전 총리의 이 발언은 도쿄 특파원 시절 했던 안 의사 관련 취재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일본에서는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처럼 안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말하는 이들이 다수지만, 동양 평화를 구현하려 했던 그의 정신을 기억하려는 일본인들도 있습니다.
도쿄 한복판서 안중근 추모 모임
도쿄 특파원으로 활동하던 2018년 9월 주용중 당시 편집국장(G현 TV조선 대표)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안중근 의사 숭모회가 도쿄에서 추모 모임을 가진다고 하니 취재해보라는 지시였습니다. 당시는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이 나오기 전 이었지만, 한일 관계가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의 관계가 좋지 않아 불안하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을 때입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2018년 9월 10일 도쿄 긴자(銀座)의 한국 음식점에서 열린 추모 모임은 일본에서는 보기 드문 행사였습니다. 안 의사를 기리는 이들이 한·일 양국에서 모였습니다. 일본에서 안 의사의 평화 정신을 알리는 활동을 해온 일본인 10여 명이 마이크를 잡고 안 의사가 펼치려 했던 평화사상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일본 아사히신문의 오다가와 고(小田川興)전 서울지국장은 “안 의사는 100년 전에 유엔의 사상을 제시했기에 21세기 현 시점에서도 존경한다”며 “동북아시아의 변화하는 정세 속에서 안 의사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도쿄에 거주하는 A씨는 “안 의사의 평화사상에 대해 책을 쓰고 있다”며 “일본의 극우 세력이 공격할지도 모르지만, 그의 뜻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안 의사의 유해 발굴을 위해 1990년대부터 수차례 중국을 방문한 일본인도 있었습니다. 교토쿠 데쓰오(行德哲男)씨는 “유골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아직 찾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는 안 의사가 즉각 처형되지 않았다면 생동감 넘치는 붓글씨를 많이 남겼을 것이라며 자신이 직접 써 온 작품을 참석자들에게 나눠줬습니다.
안 의사 유해 찾는 일본인
이날 모임에는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독일 철학자 칸트의 ‘영구평화론’과 연관지어 해석해 주목받아온 학자도 참석했습니다. 마키노 에이지(牧野英二) 호세이(法政)대 교수는 “철학자의 입장에서 안 의사의 평화 사상을 연구해 일한 관계를 더 가깝게 하는 것이 목표”라며 “안 의사와 관련된 유고를 더 발굴해 한국에 돌려주는 것이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일본인들에게 안중근 사상을 강연하는 기타니 미치도부(木谷道宣)씨는 40년 전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우연히 만난 한국인으로부터 안중근 기념관에 꼭 가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후 그는 한국을 200차례 넘게 방문할 때마다 안중근 기념관은 거르지 않고 찾았습니다.
안중근의사 숭모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안 의사의 관선 변호사였던 미즈노 기치타로(水野吉太郞)가 “안중근을 생각하면 언제나 눈물이 난다”의 발언을 언급하다가 자신도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일본에 안 의사의 고귀한 뜻을 제대로 알려서 한·일 양국이 평화와 번영의 시대로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날 모임에 앞서 김 이사장, 강덕기 전 서울시장 직무대리,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등 20여 명의 ‘안중근 의사 숭모회’ 회원들은 9일 미야기(宮城)현 다이린지(大林寺)에서 주관하는 안 의사 추모법회에 참석했습니다. 다이린지는 안 의사와 그를 존경하게 된 뤼순 감옥의 간수 지바 도시치(千葉十七) 위패가 안치된 절로, 안 의사의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 석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교토의 안중근 동양평화연구센터
이날 모임 이후 일본 내에서 안중근 의사를 추모하는 모임에 관심을 갖다가 교토 류코쿠대(龍谷大)에 ‘안중근 동양평화연구센터’가 있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처음엔 일본의 관방장관이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안 의사를 기리며 연구하는 곳이 일본내에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습니다.
2021년 한국계 교토 국제고가 마이니치 신문이 주최하는 봄 고시엔에서 처음으로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이를 전하기 위해 출장을 가면서 교토의 료코쿠대 안중근 동양평화연구센터를 먼저 취재하기로 하고, 사전에 연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교토에 간 첫날 안중근 의사 숭모회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2021년 ‘안중근 동양평화상’을 신설했는데 그 첫 수상자로 류코쿠대 안중근 동양평화연구센터를 선정했다는 겁니다. 그동안 기자로서 적지 않은 경험을 해왔는데, 이렇게 절묘하게 출장 명분이 배가된 것은 처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2021년 3월 23일 류코쿠대를 방문, 리수임(李洙任) 안중근동양평화연구센터장을 만났습니다. 자신을 재일교포 2세가 아니라 ‘한국계 일본인’으로 소개한 그가 바로 이 센터가 동양평화상을 받게 한 주역이었습니다. 1995년부터 류코쿠대에서 영어 교육을 가르쳐 온 리 교수는 이곳에 안 의사가 남긴 유묵(遺墨)이 4점 있는 것을 알게 된 후, 그의 사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센터가 만들어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리 센터장은 “안중근 평화사상의 핵심은 이질(異質)적인 상대와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라며 이번 수상이 일본에서 안중근 연구를 주목받게 하며 활력을 주게 될 것이라고 기뻐했습니다.
그는 “안중근 의사는 1910년 사형집행 전까지 5개월의 짧은 기간에 많은 일본인 간수와 신뢰 관계를 구축할 수 있던 분”이라며 “그가 강하게 희망한 한일 화해와 동양 평화가 진전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안 의사 유묵은 말로는 다할 수 없는 힘을 가진다”
안중근 동양평화연구센터는 안중근의사숭모회와 연대해 2014년부터 매년 학술 심포지엄을 열어 그의 평화사상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2020년에는 코로나 상황에서도 일본의 대표적 진보학자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이 참가한 가운데 화상 심포지엄을 개최했습니다. ‘안중근과 동양 평화-동아시아의 역사를 둘러싼 월경(越境)적 대화’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류코쿠대는 안 의사가 사형집행 전에 쓴 ‘不仁者不可以久處約’(불인자불가이구처약·어질지 않은 사람은 곤궁에 처하면 오래 견디지 못한다),’戒愼乎其所不睹‘(계신호기소불도·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경계하고 삼간다), ‘敏而好學不恥下問’(민이호학불치하문·배우기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獨立(독립)’, 단 두 글자를 한자로 크게 쓴 유묵도 있습니다. 여기엔 모두 왼손 약지가 없는 장인(掌印)이 뚜렷이 찍혀 있었습니다. 이 유묵은 안 의사가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순국하기 전에 만난 일본인 스님을 통해서 시즈오카현의 사찰에 보관돼 오다가 1997년부터 류코쿠대학 도서관으로 옮겨졌습니다.
리 교수는 “안 의사가 남긴 고인의 유묵은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2013년 안중근 동양평화연구센터를 만든 그는 이 유묵을 활용해서 2015년부터 ‘동아시아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안 의사의 평화 사상을 강의해왔습니다. 그때까지 누적 수강생은 약 800명. 그는 “안 의사는 동양 평화에 대한 소망을 담아서 소프트 파워로서 많은 유묵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안 의사의 유묵을 보여주면서 수업을 하면 많은 학생이 감동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수업에 참가한 학생들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훌륭한 발상을 하는데, 한 학생이 안 의사가 민족, 인종을 뛰어넘은 대화를 실천하는 월경(越境)을 했다고 말했을 때 놀랐다”고도 했습니다.
리 교수와 인터뷰 할 때 일본 대학에서 안중근 연구센터를 만드는 데 반대는 없었을까, 저는 이게 가장 궁금했습니다. 이에 대해 리 교수는 “류코쿠대의 설립 이념에는 인류의 대화와 공존을 바라는 평화의 마음이 담겨 있다”며 “학교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당시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독일 철학자 칸트의 ‘영구평화론’과 연관 지어 해석해 주목받은 마키노 에이지 호세이(法政)대 교수 등 15명이 비상근 연구원으로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2012년 정년퇴직 후에도 이 센터의 사무국장을 맡아 계속 안중근 사상의 일본 내 전파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류코쿠대 안중근 동양평화연구센터의 노력이 계속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