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합참의장이 참석한 가운데 3일 열린 한미 군사위원회회의(MCM)에서 ①한미 동맹의 역내(域內) 억제력 기여 ②핵·재래식 통합(CNI) 개념의 지속 발전 ③동맹 현대화 ④전작권 전환 조건 평가의 진전 등에 공감하는 취지의 ‘공동보도문’이 나왔다. 모두 한국군의 작전 능력 향상을 요구하는 내용들로, 그 바탕에는 역내 유사시 주한미군이 대만해협이나 남·동중국해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한반도 방어는 한국군이 책임진다는 일종의 ‘역할 분담론’이 깔려 있다.
이런 결과는 안규백 국방부 장관과 피트 헤그세스 미국 전쟁부(국방부) 장관 주재로 4일 열리는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도 보고된다. SCM에서도 ‘한국군으로의 전작권 전환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에 속도를 내자’는 취지의 공동성명이 도출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전작권 전환 “의미 있는 진전”
진영승 합참의장과 존 대니얼 케인 미국 합참의장은 3일 용산 합동참모본부에서 제50차 MCM을 연 뒤, 공동보도문을 통해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 기준에 따라 진행된 연간 평가 중 많은 부분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 있는 것으로 공감했다”고 밝혔다. 안 장관은 취임 전 국회 인사청문회부터 최근까지 줄곧 ‘이재명 대통령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을 주장해 왔다. 헤그세스 장관은 지난달 29일 이런 계획이 “훌륭한 일”이라며 “(한국군이) 주도적인 역할을 점점 더 기꺼이 맡길 원하고 또 그래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한미가 합의한 전작권 전환 기준을 한국군이 많이 충족했다는 취지의 발표가 나온 것이다.
전작권 전환 조건은 ①연합 방위를 주도할 한국군의 핵심 군사 능력(20여 개 과제) ②북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한미 연합군의 대응 능력(20여 개 과제) ③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안보 환경 등 3가지로 나뉜다. 하지만 정성적(定性的) 평가 항목이 많은 편이다. 과거 국가안보실에 근무했던 전직 장성은 “전작권 전환 ‘조건’은 전작권을 내주기 싫은 미국과 받기 싫은 한국이 각기 내건 것에 가까웠다”며 “양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면 전작권 전환은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합참 전작권전환추진단장을 지냈던 예비역 장성은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해도 미군이 ‘보완 전력’을 통해 채워준다는 게 기본 골자”라며 “결국 양국 정부의 의지와 정치적 결단이 핵심”이라고 했다.
◇“한반도 넘어 역내 억제력 기여”
이날 공동보도문에는 한미 합참의장이 “(한미 연합) 억제력이 한반도를 넘어서 안보, 자유, 그리고 번영을 위한 역내 억제력에 기여한다고 공감”했으며 “인도·태평양 지역의 자유와 개방성을 유지하고 잠재적 위협 세력에 대한 억제와 상호 이익 보장을 위해 동맹 및 파트너국과 협력할 것을 재확인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한반도를 넘어서’라는 표현은 주한미군 역할이 북한 억지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됨을 공식화한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고 했다.
이런 이례적 공동보도문이 나온 데 대해 전문가들은 이재명 정부가 전작권 전환을 위해 미국이 원하는 ‘동맹 현대화를 통한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를 수용한 것 아니냐고 보고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동맹 현대화에는 한국의 국방비 증액, 첨단 무기 도입 개념도 포함되기 때문에 우리 측도 ‘자주국방으로 전작권을 가져오겠다’는 큰 틀에서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보에 동의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미 합참의장은 “한미 핵협의그룹(NCG) 지침에 따라 핵·재래식통합(CNI) 개념을 지속 발전”시키기로 했다며 “동맹 현대화에 대해 지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도 밝혔다. 바이든 미 행정부와 윤석열 정부에서 시작된 NCG와 CNI 개념을 폐기하지 않은 것에 대해 전직 정부 고위 당국자는 “CNI는 결국 미국이 계속 ‘핵우산’을 제공할 테니, 한국은 다른 첨단 전력을 많이 확보해서 고도의 재래식 전력으로 뒷받침하라는 뜻”이라며 “한국의 국방비 증액과 한국군의 역할 확대를 원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방침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한미 정상회담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도입에 동의한 것도 이런 흐름과 닿아 있다. 한국이 원잠을 확보해 한반도 주변 이외의 해역에서도 작전할 수 있게 되면 미국의 군사적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핵·재래식 통합(CNI)
핵·재래식 통합(CNI·Conventional-Nuclear Integration)은 미국의 핵전력과 한국의 재래식 전략을 통합해 북한의 핵 위협을 억지한다는 내용이다. 미 대통령만이 사용 가능한 핵전력과 고도화된 한국 육해공 재래식 전력을 결합해 북한의 도발 의도를 사전에 제압한다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