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28일 도쿄를 국빈으로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부부와 함께 일본 요코스카 기지를 찾아 호위함 ‘가가’에 승선후, 이동하고 있다. 미 대통령이 일본 자위대 함정에 승선한 것은 처음이었다. 요코스카 기지는 유엔사 후방기지로 북한 도발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지난달 28일 첫 만남에서 ‘세계에서 가장 강한 동맹’을 상징하는 사진을 전 세계에 퍼트렸습니다. 두 정상은 도쿄 영빈관에서 첫 회담을 가진 뒤, 미 대통령 전용 헬기 ‘마린 원’을 함께 타고 도쿄 남부 가나가와현 요코스카항의 해군 기지로 이동했습니다.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에 함께 올라 미군 장병들 앞에 나란히 섰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옆에서 활짝 웃고 있던 다카이치 총리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동맹이 된 일미 동맹을 더욱 높이 끌어올리겠다”고 해 박수를 받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앞서 영빈관에서는 “우리는 가장 강력한 동맹이며, 일본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루 뒤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얘기입니다.) 일본 내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취임 일주일 만에 아베 신조 전 총리 시절과 같은 ‘미일 초밀착 관계’를 복원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6년 만에 다시 요코스카 방문한 트럼프

제가 트럼프·다카이치 정상회담에서 주목한 것은 트럼프가 지난 2019년 방일 때처럼 미일동맹의 견고함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요코스카 기지를 선택한 겁니다. 트럼프는 2019년 5월 갓 즉위한 나루히토 천황의 첫 국빈 으로 방문했을 때도 아베 신조 당시 총리와 함께 요코스카를 찾았습니다. 미일 양국의 정상이 부부동반으로 이곳을 방문한 것은 큰 화제가 됐습니다. 트럼프는 일본이 항공모함으로 개조하기로 한 헬기 탑재 호위함 ‘가가’에 승선해 일본 자위대원과 미 해군 장병들 앞에서 연설했습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이 함정은 동북아 지역을 위협으로부터 방어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가가는 대단한 함정”이라며 “나는 이 함정 덕분에 매우 안전함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28일 가나가와현 미군 요코스카 기지에 정박 중인 미 원자력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에 승선해 미군 장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함께 연설하고 있다. 트럼프는 “일본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라고 다카이치를 소개했고, 마이크를 이어받은 다카이치는 영어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모두에게 감사하다”고 말한 뒤 일본어로 연설을 이어갔다./ AFP 연합뉴스

저는 트럼프가 요코스카를 방문하기 반년 전인 2018년 11월 요코스카 기지를 포함, 일본 내 유엔군사령부(UNC) 후방 기지들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1951년 제2차 세계대전을 법적으로 종결지은 샌프란시스코 협정 이후, 미국 주도의 UNC는 일본 내 7개 미군 기지를 한반도 방어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1954년 UNC와 일본 간 협정에 따라 요코스카(横須賀), 요코다(横田) 기지 외에도 사세보(佐世保), 오키나와현의 가데나(嘉手納)·후텐마(普天間) 기지 등 7곳을 후방 기지로 사용하며 북한의 위협을 억제해 왔습니다. 이 기지들은 한반도 유사시 병력과 물자를 신속하게 전개하고, 병참 지원 및 병력 재편을 담당하는 후방 거점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UNC 후방 기지들은 70년 넘게 압도적인 전력을 유지하며 전쟁 억지력을 발휘해 왔습니다.이 중에서도 미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가 같은 항구를 공유하며 협업하는 요코스카 기지는 UNC 후방 기지 중 핵심 요충지입니다.

성조기, 일장기, 유엔기 휘날리는 요코스카 기지

2018년 요코스카 기지를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주일 미군 해군사령부 앞에 휘날리는 유엔기였습니다. 성조기, 일장기와 함께 나란히 걸린 유엔기는 이곳이 UNC의 후방 기지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요코스카 기지에는 미국뿐 아니라 영국·프랑스·캐나다 등 9개국의 UNC 병력이 주둔하며 유사시에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UNC 후방 기지의 사령관과 부사령관은 각각 호주와 캐나다 출신 군인이 맡고 있었습니다.

요코스카 기지가 비축 중인 디젤유는 1억1000만 갤런, 폭약은 2000t이 넘는 규모로 평양은 물론 인근 도시를 초토화할 수 있을 만큼의 폭발력을 갖고 있습니다. 도쿄의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유엔사 해체를 주장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전력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요코스카 기지에서 미 제7함대 사령부의 지휘함 블루리지에 올랐습니다. 일본 정부가 사실상의 항공모함으로 개조해 F-35B를 배치하겠다고 밝힌 호위함 ‘가가’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호주 잠수함과 프랑스 군함도 수시로 드나들고 있었습니다.

2018년 11월 일본 요코스카 기지에서 일본인 기술자들이 미 해군의 매케인함을 수리하고 있다. 미군측은 요코스카 기지의 미군함 수리는 100% 일본 정부 소속의 일본 기술자들이 담당한다고 밝혔다./이하원 기자

미군 함정 수리하는 기술자들은 모두 일본인

버스를 타고 요코스카 기지를 돌아볼 때 당시 충돌 사고를 일으킨 미 해군함 매케인함이 약 30m 깊이의 드라이 독(Dry Dock)에서 수리받는 것이 보였습니다. 헬멧을 쓴 기술자 30여 명이 배 수리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모두 일본인이었습니다. 기지를 안내하던 미군 대령은 한국계였는데, 꼭 이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는 듯이 힘주어 말했습니다. “이곳의 미군 함정은 100% 일본인 기술자들이 수리하고 있습니다. 일본 기술자들의 지원이 없으면 한국을 지키는 미군 함정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당시 한일관계는 2018년 10월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 이후 악화되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이었습니다. 요코스카 기지에 근무하는 일본인 기술자와 근로자 1만 명은 모두 일본 정부에 소속돼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정비한 미군 함정이 동북아 해역을 지키며 한국 방어를 지원하는 현장을 목격한 겁니다. 이들이 없으면, 한반도를 포함해 아시아·태평양 해역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미 7함대는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일본 시민 반대에도 오스프리 배치

UNC 후방기지로 도쿄 서쪽에 위치한 요코다(橫田) 미군 기지를 방문했을 때는 끝없이 펼쳐진 활주로 위에 C-130 수송기 10여 대가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유사시 한반도로 즉각 출격 가능한 편대였습니다.

미군은 2018년부터 이곳에 수직 이착륙기 오스프리(CV-22)를 배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스프리는 한반도 비상사태 발생 시 특수부대를 신속히 수송하는 항공기입니다. 2019년에는 5기를 공식 운용하기 시작했고, 2024년까지 10대로 확대했습니다 오스프리가 오키나와현이 아닌 일본 본토에 배치된 것은 처음입니다. 미 국방부는 북한의 핵 위협 등 동북아 긴장이 여전하다는 판단 아래 오스프리의 본토 배치를 결정했습니다. 미군은 요코다 기지 주변 일본 시민들의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 계획을 실했습니다.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를 방문했을 때도 오스프리 수십 대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들은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도록 활주로 인근에서 정비를 받고 있습니다. 후텐마 기지의 데이비드 스틸 사령관은 “어떤 상황에서도 대응이 가능한 작전 운용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2018년 11월 오키나와의 후텐마 미군기지에서 오스프리 편대가 줄 지어 서 있다. 오스프리는 한반도 유사시 언제든 특수부대를 태우고 출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이하원 기자

후텐마 기지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제5항공사령부는 공해상에서 북한의 불법 환적을 감시하는 초계기 P-3C를 공개했습니다. 보잉 737기와 유사한 크기의 이 초계기는 드럼통 180개 분량의 연료를 싣고 시속 650㎞로 비행하며 감시 활동을 수행합니다. 다쿠야 하타테 소령은 “미국, 영국, 뉴질랜드, 캐나다 등 8국이 협력해 북한의 불법 환적 활동을 적발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에 눈엣가시 같은 UNC 후방 기지

요코스카를 포함한 UNC 후방 기지는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자주 찾는 곳입니다. 2019년 미·북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 외교부와 국방부 고위 관계자들이 잇달아 UNC 후방 기지를 방문했습니다. 외교부 김태진 북미국장(현 외교부 의전장)은 2019년 1월 이틀간 시찰했습니다. 이 시찰에는 UNC 마크 질레트 참모장이 동행했습니다. 이에 앞서 박종진 제1군사령관(대장)도 2018년 11월 말 방일, 후방 기지를 방문했습니다. 당시 국방부와 외교부 고위 관계자들이 유엔사 해체 가능성에 대비해 후방 기지를 직접 확인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됐습니다. 특히 최전선을 담당하는 제1군사령관의 유엔사 후방 기지 방문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북한으로서는 UNC 후방 기지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은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남북·미북 정상회담이 잇달아 개최되자 UNC 및 후방 기지 해체를 거론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의 리용호 외무상은 2018년 10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유엔군 사령부는 남북 사이의 판문점 선언 이행까지 가로막는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해체를 요구했는데, 지금도 이런 주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이들이 있는데,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