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21개 회원 정상들이 1일 본회의에서 채택한 ‘경주 선언’에는 역대 공동 선언에 등장했던 ‘세계무역기구(WTO)’ 표현이 사라졌다.
미국발 관세 조치로 보호주의가 대두하면서 자유무역 쇠퇴 기조가 반영된 결과물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등 APEC 회원국이 경주 선언에 들어갈 ‘자유 무역’ 문안을 놓고 이견을 보여 발표를 몇 시간 앞둔 이날 오전에야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주 선언에서 ‘무역과 투자’와 관련한 표현이 마지막까지 쟁점이었다고 한다. 이날 발표된 경주 선언에는 현 상황을 “글로벌 무역 체제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고 분석하면서 “우리는 견고한 무역 및 투자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성장과 번영에 필수적이라는 공동 인식을 재확인한다”고 했다.
하지만 트럼프 1기 행정부 이후인 2021∼2024년 APEC 정상회의 공동 선언에는 ‘WTO가 그 핵심을 이루는(WTO at its core) 규칙 기반의 다자간 무역 체제’라는 표현이 담겼다. 작년 페루 APEC에서 채택된 마추픽추 선언에는 “우리는 WTO가 그 핵심을 이루는 규칙 기반의 다자 무역 체제에 대한 우리의 지지를 재확인한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 때를 제외하면 역대 APEC 선언은 이처럼 자유 무역에 대한 지지를 바탕으로 WTO 체제에 대한 강력한 옹호를 언급하는 방식으로 다자주의를 지향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당초 실무 협상 과정에선 경주 선언에 WTO 단어가 살아나더라도 ‘핵심’이라는 표현이 빠지면서 그 의미가 약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는 했지만, 최종 결과물에선 아예 단어 자체가 빠진 것이다.
올해 경주 APEC 정상 회의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하고 처음 열리는 회의였다. 미국은 APEC 회원국을 대상으로 관세 정책을 통해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강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0일 귀국하면서 APEC 정상 회의에 불참했고,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대신 참석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경주 선언은) 오늘 아침에 완성됐다”며 “문안 정리에 이견이 있었고 그 점에 대해 조정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큰 쟁점은 무역과 투자에 관한 챕터를 둘 것인가”였다고 했다.
외교부는 이날 APEC 외교통상 합동각료 회의(AMM) 공동성명이 정상 선언(경주 선언)과 함께 타결됐다면서 “10월 31일 자정 타결을 협상 시한으로 목표했던 문안 협상이, 새벽까지 수차례의 고비를 겪은 끝에 1일 오전 7시 반에 이르러서야 실무협상이 타결됐다”고 전했다.
오후 1시쯤 발표된 경주 선언은 큰 틀에선 올해 APEC의 3대 중점 과제인 ‘연결·혁신·번영’을 기본 틀로 무역·투자, 디지털·혁신, 포용적 성장 등 APEC의 핵심 현안에 대한 주요 논의를 포괄해 담았다.
또 우리 정부가 내세웠던 인공지능(AI) 협력 및 인구구조 변화 대응에 대한 회원들의 공동 인식과 협력 의지를 집약했다.
대통령실은 “경주 선언은 국제 경제의 불확실성이 심화하는 가운데 21개 회원이 무역을 비롯한 주요 글로벌 경제 현안에 대해 포괄적 협력의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