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모두 발언에서 “한반도는 공식적으로 전쟁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모든 것을 바로잡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탐색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가 1953년 휴전 이후 계속된 한반도 정전(停戰) 체제를 종식시키고 ‘평화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을 공개 석상에서 처음 시사한 것이란 평가가 나왔다.
특히 이 발언은 하루 전 일본에서 미·일 동맹 강화를 강조한 직후에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는 28일 도쿄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회담에서 “미국과 일본은 가장 강력한 수준의 동맹국이며, 미·일 관계는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과는 ‘가장 강력한 동맹(strongest alliance)’이라는 표현을 반복하며 결속을 과시한 반면, 이재명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는 한미 동맹에 대한 공개적인 언급이 없었다. 직전에 열린 CEO 서밋에서의 “한국은 소중한 친구이자 동맹”이라는 짧은 한 문장이 전부였다.
이 같은 차별적 메시지에 대해 트럼프의 동북아시아 안보 구상이 ‘새로운 판 짜기’를 향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에는 ‘동맹 강화’를, 한국에는 ‘정전 체제 해소’를 각각 강조함으로써 한일 역할 분담을 노린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언급한 ‘한반도 전쟁 상태’는 6·25전쟁의 정전 협정 이후 지속되어 온 법적 불완전성을 뜻한다. 미국에서도 이전에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바꾸려는 시도에 관심을 보인 바 있다. 2007년 10월 4일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해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에 대해 협의했다. ‘10·4 선언’에는 6자 회담을 통한 평화 체제 구축이 명시돼 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비핵화 진전 후에 평화 체제 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트럼프는 이번에 정전 체제 종식과 비핵화를 병행하는 식의 다른 길을 예고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방한 직전 “북한은 일종의 핵보유국”이라고 말하고, 김정은과의 회담 여부에 따라 제재 해제도 가능함을 시사했다. 2019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때만 해도 비핵화를 중시했으나, 최근에는 그런 입장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밝힌 것처럼 북한 비핵화를 출구에 위치시킨 ‘END 이니셔티브’ 구상을 통한 정전 체제 해소에 적극적이다. 이에 따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에 어떻게 호응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급변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러나 북한의 호전성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할 경우 주한 미군의 법적 근거가 약화되기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