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은 29일 오전 방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경주에서 두 번째 정상회담을 갖는다. 지난 8월 첫 회담 이후 두 달 만에 열리는 이번 정상회담은 한미 관세 후속 협상의 최대 쟁점인 3500억달러 투자 문제를 비롯해 한미 동맹, 북한 문제 등이 주요 의제로 다뤄질 예정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 중 연이어 “김정은과 만나고 싶다”고 밝힌 만큼,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대북 논의가 ‘트럼프·김정은 판문점 회동’으로 이어질 지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일치기 일정을 1박 2일로 늘렸지만, 관심은 APEC CEO 서밋과 30일 미중 정상회담에 맞춰져 있는 분위기다. 백악관은 28일 기자단에 대한 공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경주에서 최고 훈장 수여식에 참석한다고 밝혔을 뿐, 이재명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은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했지만, 두 정상만 단독 식사를 하며 관계를 두텁게 하는 일정은 계획된 것이 없다. 이에 따라 이번 방한이 ‘국빈 방문’ 형식임에도, 양국이 이에 걸맞은 공동 합의문을 도출할지는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3500억 달러 투자가 합의되지 않아 트럼프가 한·미 정상회담 자체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분위기”라며 “모든 것이 유동적이며 결과를 예상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아세안 정상회의서 발언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7일(현지 시각)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이 대통령은 28일 오후 APEC 정상회의 의장 자격으로 경주에 도착해 회의 준비에 나섰다./뉴시스

지난 8월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기 직전에 SNS에 “한국에서 숙청 또는 혁명이 벌어지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 외교적 긴장이 일었으나, 양국이 신속히 수습하며 회담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이 대통령은 당시 한반도 문제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을 ‘피스메이커(Peacemaker)’라 부르며 자신은 ‘페이스메이커(Pacemaker)’가 되겠다고 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이 대통령을 “매우 좋은 사람이자 리더”라며 치켜세워 우려했던 것보다는 성공적인 회담으로 기록됐다.

그래픽=김성규

◇“李·트럼프 회담, 모든 것이 유동적“… 원자력협상은 물꼬 틀 수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대북 문제는 미국이 중심이 되는 ‘한국 페이스메이커’론이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들고나온 상황에서 한국은 당분간 보조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 이재명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AP통신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이 스스로 ‘운전석에 앉지 않겠다’는 입장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분명히 했다”며 “한국이 주도권을 잡지 못해도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휘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길 바란다”고 했다.

◇END 이니셔티브 지원 요청

이 같은 기조하에 이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지난 유엔총회를 통해 제안한 교류·관계 정상화·비핵화 중심의 ‘END 이니셔티브(Exchange·Normalization·Denuclearization) 구상’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설명하고 지지를 요청할 예정이다. 이 대통령은 이를 통해 “한반도 냉전을 끝내고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 위한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일본 도쿄 국빈관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가진 양자 정상회담에 발언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이번 회담을 계기로 우리 측이 남북·미북·북일 관계 정상화까지 포괄하는 전향적 제안을 할 가능성도 거론한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일본 총리가 취임한 21일 이치가와 게이이치 일본 국가안전보장국(NSS) 국장을 만나기 위해 도쿄를 방문, 이틀간 체류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윤석열 전 정부의 국가안보실 고위 관계자는 “위 실장이 APEC 준비로 바쁜 상황에서 도쿄를 찾은 것은 이례적”이라며 “한미 정상회담에서 다뤄질 북한 문제를 일본 측과 사전 조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트럼프·김정은 판문점 회동’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는데, 실제로 현실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안보 분야 협상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했는데, 이는 원자력 협정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최근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을 곧 시작할 것”이라며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를 미국에 강력히 요청했고, 미국도 이를 수용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번 회담을 계기로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 개시 선언이 나올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국이 주한 미군을 한반도 밖에서 유사시 활용하는 ‘전략적 유연성’ 구상에 대해서도 2006년 합의안보다 진화된 새로운 틀이 제시될 수도 있다.

◇계속되는 3500억달러 대미 투자 논란

외교·안보 현안과는 달리 3500억달러 대미 투자 문제는 난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4일 “타결에 매우 가깝다”고 했으나, 이재명 대통령은 26일 “투자 방식, 금액, 시간표, 손실 공유 및 배당 방법 모두 여전히 쟁점”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세부적인 사안에서는 어느 것도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한국에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할 정도의 투자 조건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은 최근 3500억달러 현금 일괄 투자안을 일부 수정해, 매년 250억달러씩 8년 분할 투자하는 수정안을 제시했으나, 우리 정부가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아시아 순방을 통해 일본·한국·대만을 합쳐 ‘1조달러 투자 유치’를 자신의 성과로 내세우려 하지만, 한미간 타협이 안돼 트럼프가 ‘몽니’를 부리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서울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3500억달러 투자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다른 분야에 대한 합의도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