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지난 27일(현지 시각)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만나 악수하는 모습. 푸틴 대통령은 최선희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따뜻한 인사를 전해달라”고 했다./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방한을 앞두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고 싶다”며 대북 제재까지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북한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28일 최선희 외무상이 전날 러시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예방했다고 보도하면서 북·러 밀착 관계를 과시했다. 당분간 북·러 관계에 집중하겠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미국을 의식하며 ‘몸값 높이기’에 나섰다고도 볼 수 있다. 미·북이 탐색전을 이어가는 가운데 우리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김정은과 ‘깜짝 회동’에 나설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북·러 “최고위급서 관계 강화”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최선희 외무상이 27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푸틴 대통령을 예방했다고 공개했다. 최 외무상은 김정은 위원장이 보내는 “가장 뜨거운 동지적 인사”를 전달했고, 이에 푸틴 대통령이 “따뜻한 인사”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은 앞서 열린 최선희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간의 회담에서 양측이 “토의된 모든 문제들에서 견해 일치”를 봤으며 “최고위급에서의 전략적 인도 밑에 양국 관계의 다방면적인 강화 발전을 가속화해 나갈 의지를 재확언”했다는 내용의 공보문도 공개했다. 러시아는 이 회담에서 “국가의 현 지위와 안전 이익, 주권적 권리를 굳건히 수호하려는 북한 측의 노력과 조치들에 전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북한의 핵보유를 사실상 인정한다는 취지다.

다만 러시아 외무부는 두 장관이 “한반도를 비롯한 국제 정세 긴장이 고조되는 이유가 미국과 그 동맹들 때문”이라고 비난했다고 밝혔지만, 북한 측 공보문에는 미국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앞으로 미·북 대화가 이뤄질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만난 日 납북자 가족들 일본인 납북 피해자 가족들이 28일 미·일 정상회담이 열린 도쿄 모토아카사카 영빈관에서 피해자들의 사진을 들고 서 있다. /AFP 연합뉴스

◇美 당국자 “대북 정책은 비핵화”

​트럼프 대통령은 27일(현지 시각) 김정은에게 제시할 수 있는 카드를 묻는 질문에 “우리에게는 제재가 있다”고 답했다. 올 1월 재집권한 후 처음 대북 제재 완화를 시사한 것이다. 2019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영변 핵시설 폐기의 대가로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영변 외 다른 핵시설까지 모두 신고할 것을 요구하면서 회담은 결렬됐다.

하지만 트럼프 1기 때와 대외적 상황이 달라진 지금, 북한이 바로 대화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러시아와 밀착한 북한은 파병의 대가로 경제적·군사적 지원을 받고 있다. 지난달 초 김정은이 6년 만에 방중해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하면서 한동안 소원했던 북·중 관계도 회복세다. 중·러의 묵인하에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도 형해화되고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2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이런 정세 변화를 고려할 때 “(북한이) 조금 더 청구서를 키우고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핵보유 세력(nuclear power)”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렇다고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핵무기 보유국(nuclear weapon state)’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대북 협상을 직접 담당할 미국 국무부의 고위 당국자는 로이터통신에 “미국의 대북 정책은 여전히 비핵화를 목표로 한다”고 했다. 실질적 미·북 회담이 시작되면 미국이 북핵·미사일에 문제를 제기하며 김정은의 일정한 양보를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이 지난달 “비핵화란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 것도 이를 알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회담에서 북한 정권이 극도로 싫어하는 인권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8일 도쿄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함께 일본인 납북 피해자 가족과 면담하고 “미국은 (피해자) 가족, 그리고 일본과 함께 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일본 방문 때도 당시 아베 신조 총리와 납북자 가족을 만나 “납치 문제를 미·북 정상회담에서 제기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한 회동 가능성은 남아 있다. 판문점에서 기념 촬영만 해도 미·북 정상 모두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서다. 정부도 이를 예의 주시 중이다. 다만 대통령실 관계자는 “판문점 회동을 해도 이재명 대통령은 안 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