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경제 협력체인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 회의가 31일~11월 1일 경주에서 열린다. 2005년 부산 APEC 정상 회의 후 20년 만에 한국에서 개최되는 이번 회의에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21개 회원국 대표단이 한자리에 모여 글로벌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무역 질서와 미래 과제를 놓고 해법을 모색한다.
◇‘연결·혁신·번영’의 ‘경주 선언’ 추진
APEC은 전 세계 인구의 약 37%, GDP의 약 61%, 교역량의 약 51%를 점유하는 세계 최대의 지역 협력체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 성장과 번영을 목표로 한다. 우리 정부는 이번 경주 APEC 정상 회의의 주제를 ‘우리가 만들어가는 지속 가능한 내일’로, 그 중점 과제를 ‘연결·혁신·번영(Connect, Innovate, Prosper)’으로 정했다. 증대되는 글로벌 불확실성 속에서도 아·태 지역 내의 물리적, 제도적, 인적 교류를 통한 연결성 강화를 추구하고, 디지털 혁신을 촉진해 공동 번영을 이끌어 내자는 취지다. 전 회원국이 합의해서 도출하는 공동 선언인 이른바 ‘경주 선언’에도 이런 내용들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중이던 2021~2024년 APEC 정상 회의 선언에는 ‘세계무역기구(WTO)가 그 핵심을 이루는 규칙 기반의 다자간 무역 체제’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다자간의 자유무역을 강조하는 것이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집권해 중국 등과 ‘관세 전쟁’을 시작한 올해는 미국과 다른 회원국들 간 이견이 있어 이런 내용은 포함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AI·인구 변화 선언문 채택
APEC 의장국을 맡은 우리 정부는 ‘AI(인공지능) 협력’ ‘인구구조 변화 대응’ 등 두 분야에서 정상들 차원의 별도 선언문을 채택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AI의 대두나 인구구조 변화는 APEC 회원국 대부분이 공감하는 현안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경제 발전 관점에서 AI 기술을 포용적·지속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APEC 회원국들과 함께 미래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방침이다. 기존 국제사회에서 주로 논의된 AI의 윤리적·규범적 접근과는 차별화된다. 윤성미 APEC 고위관리회의 의장은 “AI 시대에 어떻게 대비·대응할 것인지를 다루는, 조금은 더 실용적인 관점”이라고 했다.
인구 분야도 저출산·고령화로 요약되는 인구구조 변화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활용하기 위한 공동의 협력 사업을 도출할 예정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26일 KBS에 출연해 “AI와 인구구조 이슈들은 불확실성 속에 제기되는 도전들”이라며 “이것을 어떻게 신성장 동력으로 이끌어낼 수 있느냐”가 이번 APEC의 주요 메시지라고 했다.
◇내년 中 개최 도시 발표되나
1박 2일 일정으로 열리는 APEC 정상 회의는 크게 두 세션과 만찬으로 구성된다. 31일 본회의 개막 후 제1 세션에서는 ‘더욱 연결되고 복원력 있는 세계를 향하여’라는 주제로 무역 및 투자 증진 협력 방안이 논의된다. 여기엔 21개 회원국 외에도 아랍에미리트(UAE) 칼리드 아부다비 왕세자,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참석한다. 저녁엔 APEC 참여 정상들을 비롯해 기업인, 내외빈이 참여하는 만찬이 라한셀렉트 경주 호텔에서 열린다.
이튿날인 11월 1일 오전에는 ‘미래의 변화에 준비된 아시아·태평양 비전’을 의제로 AI 발전, 인구구조 변화 등을 주제로 제2 세션이 진행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차기 의장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한다. 2세션 종료 후 이재명 대통령이 지휘봉을 시 주석에게 건네는 인계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내년 APEC 정상 회의가 중국 내 어느 도시에서 개최될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는데, 인계식 때 개최 도시가 발표될 가능성도 있다.
이번 주 APEC 정상 회의에 앞서 마지막 점검을 하는 최종고위관리회의(27~28일)와 외교·통상 합동각료회의(29~30일)가 순차적으로 개최된다. 최종고위관리회의에서는 정부가 핵심 성과물로 추진하는 AI와 인구 대응 관련 논의 현황을 회원들과 공유한다. 외교·통상 합동각료회의는 정상 회의에서 실질적 성과를 도출하기 위한 최종 점검 성격이다. 올해 APEC 주제인 ‘연결·혁신·번영’을 중심으로 디지털 협력을 통한 지역 도전 과제 대응, 신기술을 활용한 역내 공급망 강화 등을 논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