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니어재단이 ‘복합 전환기, 한국의 자강지계(自强之計)’를 주제로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주최한 세미나에서 외교·통상 전문가들은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며 동맹 전략을 급격히 수정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생존 방정식 또한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은 “적과 동지의 경계선이 약해지고 있다”며 “한국은 ‘동맹 없는 자강’을 선택할 수도 없고 ‘자강 없는 동맹’에 안주할 수도 없다”고 했다.
윤 전 장관은 “트럼프 행정부와 이해를 같이 하는 분야를 확대해 한국이 미국에 필수적인 동맹임을 각인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에 대해 “마스가를 넘어 마아가(MAAGA·미국과 동맹을 다시 위대하게)로 확대해 나가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안보 분야에서는 한미 동맹 현대화와 북핵·미사일 대응을 위한 한국의 3축 체계 강화, 방산 업그레이드, 한국의 우라늄 농축·재처리 능력 확보 등이 자강책으로 꼽혔다.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은 미군에 의존해 온 정보·감시·정찰(ISR) 능력의 확보를 자강의 핵심으로 꼽으면서 “위성 정찰기, 고고도 무인 정찰기, AI(인공지능) 기반 표적 식별 체계와 같은 ISR 능력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대북 핵 억제와 관련해선 “미국이 핵 유사시 다 알아서 할 테니 한국은 그냥 미국을 믿어달라는 미국식 ‘핵 신비주의’에 안주해서는 곤란하다”고 했다. 2023년 창설된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통해 핵무기 운용 체계 논의에 한국이 능동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동맹의 신뢰성이 트럼프주의로 상당히 위협받는 상황에서 연대가 중요하다”며 “유럽, 일본, 동남아시아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강한 네트워킹을 하는 것이 한미 동맹을 보완한다”고 했다.
경제 분야에서는 AI, 반도체, 배터리, 조선 등 전략 산업 육성과 에너지 안보 강화, 금융·무역 안정성 확보 등이 과제로 꼽혔다. 소버린 AI와 데이터 주권, 우주 역량 강화, 기술 혁신 생태계와 인재 전략 등 ‘기술적 자강’의 필요성도 논의됐다.
한미 관세 협상과 관련, 김영수 중소기업정책개발원 원장은 “(3500억달러) 대미 투자금의 목적을 명확히 해 AI 반도체, 차세대 전지, 조선 등 첨단 기술 분야 제조·생산기지 구축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최병일 법무법인 태평양 통상전략혁신 허브 원장은 “현지화 전략으로 한국 기업의 존재감을 부각해 이런 기술들의 경제 안보 전략에 중요한 이해 당사자로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미국 등 우방국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부문이 무엇인지 찾아내 이를 대체할 자강력을 확보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또 자강과 자주(自主)는 구별돼야 한다며 “동맹과 연대 없이 국가를 부강하게 하고 국민의 높은 복지를 유지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