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한화그룹의 조선·해운 분야 미국 계열사 5곳을 겨냥한 제재를 발표했다. 한화쉬핑(한화해운), 한화쉬핑 홀딩스, 한화오션 USA 인터내셔널, HS USA 홀딩스 등 한화그룹이 미국 내에서 선박을 건조하며 현지 조선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만든 자회사들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방문해 한미 조선 협력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의 상징이 된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한화 필리조선소도 포함됐다.
이들은 앞으로 중국 조직·개인과의 협력·거래가 전면 금지된다. 미·중 무역 전쟁과 전략 경쟁의 불똥까지 한국 기업에 튀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3500억달러 대미 투자 펀드 문제로 한미 관세 후속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발 제재까지 겹친 것이다.
중국 상무부는 이번 제재가 “(미국의) 무역법 301조 조사 조치에 반격”하기 위한 것이라며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들은 미국 정부가 중국을 겨냥해 실시한 조사에 협력하고 지지를 보냈고, 중국은 이에 강력한 불만과 결연한 반대 의사를 표명한다”고 했다. 미국 무역대표부가 중국이 조선·해운 분야 지배를 위해 불공정 행위를 해왔다며 지난해 착수한 조사에 협조한 것이 문제란 얘기다. 한국에 ‘미국의 대중 제재나 공급망 규제에 협조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내려는 의도가 있다고 풀이된다.
호주나 이탈리아 등도 미국 내 조선소를 운영하거나 지분을 갖고 현지에서 배를 만들고 있는데, 한화를 콕 집어 제재한 데엔 경쟁자인 한국 기업에 대한 압박 성격도 있다. 지난해 한국의 글로벌 조선 시장 점유율은 28%로 중국(53%)에 이어 둘째였다. 조선 업계 관계자는 “한화가 미국 현지에서 마스가 프로젝트 핵심을 맡고 있는 만큼, 한화를 제재하면 미국 조선업에 실질적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본 것 같다”고 했다.
경주 APEC 정상회의를 보름여 앞두고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한을 조율 중이던 대통령실은 이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한중 통상 채널을 가동해 소통·대응 중”이라며 “추가 제재 가능성은 예단하기 어려우나 계속 예의 주시하겠다”고 했다. 산업통상부는 “마스가 프로젝트는 한미 관세 협상 후속 조치에 따라 차질 없이 진행해 나가겠다”고 했다.
◇대통령실 “피해 최소화 위해 한중 통상 채널 가동”
중국의 한화오션 미국 자회사 제재는 이달 말로 예상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 주석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중 무역 전쟁이 다시 불붙은 가운데 나왔다. 미국은 무역법 301조 조사 이후 보복 조치로 14일부터 중국 기업이 운영하거나 소유한 선박, 중국 국적 선박에 대해 항만 수수료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중국도 미국 국적 선박 등에 특별항만세를 부과해 맞대응했다. 앞서 지난 9일 중국은 미국을 겨냥해 희토류 통제를 대폭 강화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100%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맞섰다.
정상 간 대면 회담을 앞두고 미·중이 기선 제압을 위해 ‘강 대 강(强對强) 조치’를 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모두 우리 기업에는 큰 부담이 되는 조치들이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는 중국이 취한 한화오션 자회사 제재, 희토류 수출 통제 강화 등의 조치에 대해 “한국의 대미 관세 협상 카드인 마스가를 견제하면서 중국산 희토류를 사용하는 한화의 방산 제품까지 견제하려는 이중 포석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중국이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희토류 수출 통제를 계속 강화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회미래연구원은 이날 발간한 연구 보고서에서 한국이 희토류, 리튬, 니켈 등 첨단 산업 필수 광물의 95% 이상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일부 광물의 중국 의존도는 90%를 상회한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지난 7월 말 한미가 합의한 수정 관세율(상호 관세 15%, 자동차 15%, 반도체·의약품 15%)이 적용될 경우, 올해 우리 제조업 부문 대미 수출액이 종전보다 125억3700만달러(약 17조8900억원) 감소할 것이란 우리 정부 분석이 나왔다. 산업통상부가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실에 제출한 ‘미 관세 부과에 따른 수출 영향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22~2024년 제조업 부문 평균 대미 수출액은 1194억달러였으나, 수정 관세율이 적용되면 올해에만 10.5%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