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거행된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 경축 열병식에서 극초음속 단거리탄도미사일(SRBM)로 추정되는 ‘화성-11마’가 이동식 발사대에 실려 이동하고 있다. 화성-11마는 사거리가 400~800㎞로 추정돼, 대남 공격용으로 평가된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마하 5(시속 6120㎞) 이상 속도로 비행하며 변칙 기동을 해서 요격이 어렵다. 열병식에는 미국 본토를 겨냥한 최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20’도 등장했다./ 노동신문 뉴스1

북한이 10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80주년 열병식에서 미국 본토를 겨냥한 최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20’과 우리 방공망을 무력화할 수 있는 극초음속 단거리탄도미사일(SRBM)로 분석되는 ‘화성-11마’를 공개했다. 우리 군에는 없는 다연장 자폭 드론 이동식 발사 차량도 최초로 선보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연설에서 북한군이 “적을 압도”하는 “무적의 실체로 계속 진화돼야 한다”고 했다. 우리 대통령실은 “노동당 창건 80주년 행사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내부 행사”라며 “관련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11일 밝혔다.

이날 열병식의 하이라이트는 한반도 타격용 ‘화성-11마’ 8기, 괌을 타격권에 둔 극초음속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6’ 4기, 다탄두 ICBM ‘화성-20’을 탑재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동식 발사대 3대가 연달아 등장한 최후반부였다. 조선중앙통신은 화성-20을 “최강의 핵전략무기 체계”로 부르며 “절대적 힘의 실체인 전략무기 체계들이 지심을 울리며 광장에 진입했다”고 보도했다.

◇北, 한반도·괌·워싱턴 한번에 때릴 ‘미사일 3종세트’ 내놨다

10일 열린 북한의 노동당 창건 80주년 열병식에는 병력 1만6000여 명과 12종·60여 대의 장비가 참여했다. 2만2000여 명이 참석하고 무기 체계 31종을 공개했던 2015년 당 창건 70주년 열병식이나, ICBM 16기를 공개한 2023년 건군절 75주년 열병식에 비해 규모는 작았다. 전문가들은 “양보다 질에 초점을 맞춰 북한의 국방 과학 기술력을 과시하려는 의도”라고 평가했다.

김정은은 열병식 후 중국 리창 국무원 총리와 포옹하고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위원회 부의장과 손을 맞잡는 장면도 보여줬다. 중·러 2인자 앞에서 신무기를 대거 공개하며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려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반도 겨냥 ‘화성-11마’ 8기 공개

북한은 이날 열병식에 ‘화성-11마’를 8기나 등장시켰는데 한반도 공격에 특화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기반 극초음속 미사일로 분석됐다. 지난 4일 김정은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한 북한의 ‘무장장비전시회’에서 최초로 공개된 화성-11마는 기존의 SRBM에 극초음속 활공체 탄두부를 붙인 형태다.

국방정보본부는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에게 “(화성-11마가) 미사일 방어 체계를 회피하기 위한 의도로 개발된 것으로 보인다”며 “기존의 SRBM 화성-11에 극초음속 활공체 탄두부를 붙인 2단 형태로, 추진체가 분리된 뒤 탄두부가 활공해 날아가는 방식”이라고 했다.

우리 합참은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전 배치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번 화성-11마는 시험 발사를 한 적이 없어 실제 사거리 및 회피 기동 능력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합참은 ‘극초음속 미사일도 한미 미사일 방어 체계로 요격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다만 전문가들은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극초음속 미사일의 위력이 입증됐다고 보고 있다. 서방의 지원을 받아 우크라이나군이 운영 중인 패트리엇 시스템의 러시아 미사일 요격률은 30%대에서 지난달 한 자릿수로 급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군의 극초음속 미사일이 회피 기동을 하면서 궤도 예측이 어려워져 요격 실패가 늘었기 때문이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은 “극초음속 미사일이 회피 기동을 하면 그만큼 속도가 느려져 ‘이론적으로는’ 기존 미사일 방어 체계가 효과적일 거라는 생각이었는데 그렇지 않음이 실증됐다”고 했다. 북한은 올 초 시험 발사한 화성-16 극초음속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4기도 이날 열병식에서 공개했는데, 이는 미국령 괌을 타격할 수 있는 무기다.

◇다탄두 ICBM, 재진입 기술은 의문

북한은 또 다탄두 각개 목표 설정 재돌입체(MIRV) 기술을 탑재한 것으로 알려진 신형 ICBM ‘화성-20’도 이날 공개했다. MIRV는 기만체가 섞인 탄두 10여 개가 흩어지면서 각자 목표를 타격하는 형태로, 이 역시 한미의 미사일 방어 체계에 과부하를 걸 수 있다.

조선중앙TV의 중계 영상엔 화성-20의 이동식 발사대 외관만 보였지만, 전문가들은 발사대 내부에 지난 4일 무장장비전시회에서 선보인 미사일을 탑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성-20은 북한이 지난해 ‘최종 완결판’이라고 주장한 ICBM 화성-19보다 엔진 출력이 40%가량 증가해 사거리와 탄두 중량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중앙TV는 열병식 녹화 중계에서 화성-20에 대해 “타격의 사정권에는 한계가 없음을 선언하는 초강력 전략 공격 무기”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 합참은 북한 ICBM의 재진입 기술이나 다탄두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재래식 무기 현대화 ‘북한판 CNI’

북한은 열병식에서 한국에 뒤떨어진 것으로 알려진 전차 등 재래식 무기 현대화도 강조했다. 한미가 미국 핵 전력과 한국 재래식 전력을 통합 운용하는 핵·재래식 통합(CNI) 논의를 진전시키자, 북한도 대응 조치를 하고 있다고 분석된다.

북한이 열병식에서 처음으로 제식 명칭을 공개한 신형 전차 ‘천마-20’은 우리 K2 전차 ‘흑표’에 대응하는 최신 전차로 평가된다.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에 따르면 천마-20은 ‘대전차 무기 능동 방어 체계’를 탑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유 의원은 “적의 대전차 무기가 접근하면 자동으로 요격하는 방식으로, 이스라엘 ‘아이언 피스트’와 유사한 체계로 보인다”고 했다. 능동 방어 체계는 아직 국내 개발 중이라 K2 전차에는 탑재되지 않았다.

천마-20에서는 부교 없이 강바닥을 수중으로 도하할 수 있도록 하는 ‘스노클’로 보이는 장비도 포착됐다. 군 관계자는 “천마-20의 실제 성능에 대해서는 추가 판단이 필요하다. 기만을 위해 외형만 갖췄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한국군의 ‘천무’, 미군의 ‘하이마스’와 유사한 신형 방사포(다연장 로켓포)도 공개됐다. 240㎜ 로켓탄과 전술 유도 무기(단거리 탄도미사일)가 함께 장착돼 있는 점이 특징이다. 우리 K9 자주포에 대응하는 신형 155㎜ 자주포도 모습을 드러냈다.

◇자폭 드론 차량과 러 파병 부대 등장

러시아 국기와 북한 인공기를 나란히 든 부대도 이날 열병식에 등장했다. 러시아에 파견됐던 것으로 알려진 리창호 정찰총국장이 선두에 서 러시아 파병 특수부대로 추정된다. 김정은은 이날 연설에서 “해외 전장에서 발휘한 영웅적 전투 정신과 달성한 승리”를 언급했다. 파병 경험도 열병식에 반영됐다.

우선 북한은 열병식에서 고정익 자폭 드론 6대가 탑재된 차량형 발사대를 공개했다. ‘벌떼 드론’ 공격 등에 쓰일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한미 미사일 방어망 무력화에 일조할 수 있다.

잎사귀나 나뭇가지 등을 이용한 위장복 ‘길리슈트’를 입은 저격수 부대도 열병식에 등장했다. 김정은은 지난 4·5·8월에도 길리슈트를 입은 특수부대 훈련을 참관했다. 북한군은 러시아 파병 초기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공격에 고전했는데, 길리슈트는 드론이나 열 영상 장비로도 식별이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