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력 규모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젊은 장교와 부사관은 한국 군을 떠받치는 ‘허리’다. 하지만 갈수록 많은 초급 간부가 군문(軍門)을 떠나고 있다. 본지가 취재한 전현직 간부 10여 명은 열악한 처우와 구시대적 조직 문화가 ‘복합 위기’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전역한 육군 대위 출신 이모씨는 “지금 군 조직을 유지하는 것은 대위와 소령인데 이들조차 군을 떠나려는 건 심각한 신호”라고 했다.
◇병사가 간부에게 “밥 사드릴까요”
공군사관학교 출신 A 대위는 “병사들이 간부들에게 느끼는 PDI(Power Distance Index·계급 간 권위)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고 했다. 대선 때마다 병사 처우 개선이 강조되고, 병장과 소위·하사의 급여 차이가 크지 않게 되자 초급 간부를 ‘친구’처럼 대하는 병사도 있다는 것이다. A 대위는 “병장이 소위에게 ‘월급 많이 못 받으시잖아요. 제가 밥 사드릴까요’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했다.
전방 사단에서 근무하다가 전역을 준비하고 있는 김모 중사는 “그 월급에 그런 대우 받고 간부 하느냐”는 주위의 말에 전역을 결심했다. 김 중사는 “초임 하사는 실수령액이 세후 180만원 수준”이라며 “국가가 임금 등 처우 개선에는 관심 없고, 책임감과 사명감만 강조한다”고 했다. 그는 “훈련 등 군인으로서 업무보다 풀 깎고, 시멘트 바르고, 대변기를 교체하는 잡부에 가까운 업무가 많았다”고 했다.
정부는 당직비 인상 및 초과 근무 수당 확대 등 초급 간부 처우 개선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내년 전역 예정인 육군사관학교 출신 B 대위는 “군인 연금이 곧 개악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러면 군인으로 버틸 사람이 더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기업 채용 시 단기 복무 장교 우대도 사라지는 추세라는 것도 미래에 대한 불안을 키운다. 그는 “간부 처우를 비판하는 유튜브 채널을 보는 것이 낙(樂)”이라고 했다.
◇부모들은 “불침번 빼 달라” “밥 잘 먹여라”
간부들은 “징병제 하에서 병사 인권이나 처우 개선은 필요하지만 초급 간부들이 무조건 을(乙)이 되는 상황도 초급 간부 엑소더스를 일으킨다”고 했다. 훈련을 하다가 사고가 나면 일단 소대장·중대장 같은 초급 간부가 책임을 지는 분위기 속에서 사고 안 나는 게 최우선인 군대가 됐다는 것이다.
B 대위의 경우 중대장을 맡던 시기 2~3일에 한 번꼴로 병사 부모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우리 애 불침번을 빼 달라” “군대 밥이 맛없다고 하니 더 좋은 음식을 먹여 달라”는 요구가 이어졌다고 한다. 육사 출신 C 대위는 “후방에서는 소대원 10명 중 5명 이상이 관심 병사인데, 학교에서도 통제가 어려웠을 인원들을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머릿수만 채운다고 전투력이 유지되는 게 아닌데, 이들이 ‘아프다’ ‘병원 가야 한다’며 분위기를 흐린다”고 했다. 동부전선 전방 사단에서 근무하는 D 중사는 “요즘은 다문화 가정 병사가 많이 입대하는데, 한국어를 잘 못해서 군대 안에서 소통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대로 된 훈련은커녕 체력 단련을 할 분위기를 만들기도 어렵다고 한다.
병사나 다른 간부가 의욕적인 간부를 ‘갑질’ 등으로 신고해 보직 해임을 시키는 일도 적지 않다. 공군 소속인 E 소령은 “병사뿐 아니라 단기 복무 간부도 잘못 건드리면 ‘나락’으로 간다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했다. 신고를 당하면 직무에서 배제되거나 진급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보니 하급자가 문제가 있어도 덮어두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일은 장기 복무를 선택한 간부에게 몰리고, 군은 애국심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인원만 갈아 넣는 조직이 됐다”고 했다.
C 대위는 “실기동 훈련을 하는데 ROTC 장교가 기초적인 독도법과 통신 장비 사용법을 몰라서 육사·3사 출신 장교가 이를 대신해 줘야 했다”고 말했다.
◇“상관에만 충성. 전쟁 나면 지겠구나”
초급 간부 가운데는 군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기 어려운 조직 분위기 때문에 군을 떠났다는 사람도 많았다. 예비역 대위 이모씨는 “상급자가 ‘20년만 버티고 연금 받고 나가면 되지’라고 하는데 ‘전쟁 나면 지겠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B 대위는 “임관할 때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막상 상관에게만 충성하기 급급한 조직 문화에 금방 숨이 막히더라”며 “‘내 임기에 사고만 치지 말라’는 상관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꼈다”고 했다.
여기에 야전에서 힘들게 군 생활을 하는 사람보다 국방부, 각군 본부, 합동참모본부 등 소위 ‘정책 부서’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진급하는 문화도 젊은 간부들의 이탈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중령 진급 심사에서 정책 부서 경험이 없는 ‘야전통’이 물먹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군심을 흔든다는 것이다. 한 군 소식통은 “후방 부대 간부는 ‘칼퇴’(정시 퇴근)하는데 야전 부대에 있다고 확실한 우대를 받는 분위기가 아니다”라며 “아무리 고생해도 윗사람과 인맥이 있고 보고서 잘 쓰는 사람을 못 이기면 누가 힘들게 군 생활을 하고 싶겠느냐”고 했다.
A 대위는 “이번 장군 인사에서 4성 장군(대장)이 한꺼번에 모두 교체됐다. 군 내부 정책 지속성이 단절되고 있다”고 했다. 12·3 비상계엄 이후 군 수뇌부가 줄줄이 수사를 받으면서 군은 어수선한 상황이다. 그는 “군이 정치와 독립적일수록 국방력이 강화된다고 생각하는데, 4성 장군들이 맥없이 교체되는 것을 보니 군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깊어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