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미국 백악관에서 2시간 20분 동안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의 첫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번 회담에서 두 정상은 최근 논란이 된 고율 관세 문제를 비롯해 안보, 북한 문제 등에 대해 폭넓게 논의했다. 본지는 27일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김재천 서강대 교수, 주재우 경희대 교수 등 외교·안보 전문가 3인을 초청해 좌담회를 열고, 이번 회담의 의미와 한미 동맹, 남북 관계, 그리고 한중 관계 등에 미칠 영향에 대해 분석했다.

신범철(왼쪽부터) 전 국방부 차관, 주재우 경희대 교수, 김재천 서강대 교수가 27일 서울 중구 본사 편집국에서 한미 정상회담 의미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좌담을 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이번 정상회담을 어떻게 평가하나.

신범철 전 차관(이하 신)=이 대통령이 과연 트럼프 대통령과 호흡이 맞을지 걱정이 있었는데, 이번 회담을 통해 그런 우려가 상당 부분 해소됐다. 두 정상 간 유대(紐帶) 차원에서 큰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를 확인한 것이 눈에 띈다. 한국이 국방비 증액을 통해 군사력 강화를 선언한 점 역시 회담 이전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부분이다.

김재천 교수(이하 김)=회담의 전개를 영화에 비유하자면 공포영화로 시작해 로맨스 영화로 끝났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 현대화’를 강조하며 주한 미군의 용도 변경, 규모 조정 등을 중국 견제용으로 명시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을 전면적 위협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인도·태평양 지역 안정이라는 포괄적 수준에서 합의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래픽=김현국

-이 대통령은 회담 전 기내 브리핑에서 주한미군이 다른 지역 분쟁에 개입하는 ‘전략적 유연성’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는데.

신=이 대통령은 ‘주한 미군 유연화’라는 표현을 쓰며 당장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주한 미군의 미래형 전략화’는 우리도 필요하다“고 했다. 사실 ‘전략화’가 아니라 ‘전력화’가 정확한데, 이는 결국 주한 미군이 5세대 전투기 배치 등 미래형 전력을 통해 전략적 유연성을 갖는 것에 대해 우리가 이해하나, 공개적으로는 동의하지 않기로 한미 간에 합의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주재우 교수(이하 주)=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베트남전부터 시작됐다. 최근 문제가 되는 것은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 확산되면서부터다. 한미 상호방위조약 3조에는 태평양 지역에서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개입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를 감안해 전략적 유연성 논의에 대비해야 한다. 이보다 우려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중장거리 미사일을 한반도에 배치할 가능성인데, 이는 중국이 가장 크게 우려하는 것으로 우리가 수용하기 어렵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회담 후, 한미 원자력 협정 관련 의미 있는 논의가 있었다고 했는데.

김=트럼프 행정부가 강조하는 전략적 유연성은 우리가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정세가 변하면서 미국은 더 이상 특정 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오래 주둔시키지 않는다. 이를 인정하면서 주한 미군 감축을 막으려면 원자력 협정 개정과 연계해야 한다. 예컨대 전략적 유연성을 ‘전략적’으로 수용하면서 20% 미만 농축 우라늄은 우리가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도록 보장받아야 한다. 재처리 권한도 확보해야 한다.

신=원자력 협정 개정에서 실질적 진전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상업적 목적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를 ‘핵 잠재력’이라는 안보 차원에서 접근하면 곤란하다. 핵 잠재력 문제로 접근하면 협상이 어렵게 되므로, 과거 일본의 협상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원전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서는 ‘농축·재처리’보다는 ‘농축·재활용’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 시각)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 회의 도중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다. /UPI연합뉴스

-존 볼턴 전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번 회담이 끝난 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열망한 것이 가장 우려된다”고 했는데.

신=일리가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당시 북한은 2017년 완성된 제재망을 돌파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대화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북·러 관계 개선으로 북한의 외교 환경이 나아졌기에 대화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실패한 방식, 즉 한미 연합 훈련을 선제적으로 중단해 북한을 협상장으로 유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연합 훈련 중단은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정상회담 추진을 위해 미리 양보할 사안은 아니다. 대화 과정에서 비핵화 의제가 실종될 위험도 크다. 현재 이재명 정부는 ‘동결-축소-비핵화’ 3단계로 접근한다고 했는데, ‘북한 비핵화’ 대신 ‘한반도 비핵화’ 개념을 사용하고 있어 문제다.

김=김정은이 단순히 미국 대통령과 사진 몇 장 더 찍기 위해 회담에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한을 협상장으로 끌어내려면 엄청난 선물이 필요한데, 이는 사실상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해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또한 주한 미군 감축을 동맹 현대화 차원이 아니라 김정은을 협상장으로 유인하는 카드로 활용한다면 큰 위험이 된다.

-북한은 한미 정상회담 후 “비핵화 망상증에 걸린 위선자의 정체가 드러났다”며 이 대통령을 비판했고, 중국 환구시보는 “미국을 맹목적으로 따른다면, 한국의 운명을 위험한 수레에 스스로 묶어버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핵 보유국이 됐다며 ‘적대적 2국가’론을 내세우는 북한으로서는 회담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북한과의 대화는 성급히 시작하기보다 국제 환경 변화를 지켜본 뒤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종결되면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떨어진다. 이럴 때, 즉 북한의 대외 관계가 변화할 때가 기회가 될 수 있다.

주=중국의 논조는 2016년 사드 배치 이후 일관됐다. 이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 중국과 관련한 맥락을 잘 짚은 것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안미경중을 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미·중 경쟁이 대결 구도로 흐르는 상황에서 한국의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양국 간 산업 분업 구조가 고착돼 있는 만큼 불필요하게 중국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

-제라르 롤랑 UC버클리 교수는 최근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 좁은 회랑(corridor)을 걸어야 한다고 했는데, 한국의 활로는 무엇인가.

김=중국은 한국이 피할 수 없는 지정학적 현실이다. 중국과 모든 관계를 끊는 ‘제로 차이나’ 정책은 불가능하다. 탈중국화를 거론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중국과 의미 있는 교역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안보든 경제든 중국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전략적 공간은 존재한다. 이를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신=미·중 경쟁 속에서 이재명 정부는 ‘코리아 퍼스트’를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한반도 안보와 경제 이익을 고려할 때 최우선은 한미 동맹이다. 동시에 중국과는 상호주의적 호혜성을 유지하면서, 서해 구조물 문제처럼 중국이 합의를 위반하는 사안에는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 외교적으로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되, 국익의 기준점을 명확히 하는 전략적 명료성을 가져야 한다.

주=미·중 관계가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국익을 지키려면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양보할 수 없는 가이드라인을 분명히 세워 중국이 위험한 선을 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시급하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우리의 과제는.

김=현재 한국은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과감히 풀어야 한다고 본다. 2008년 한국의 광우병 사태 이후 입증된 과학적 근거로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을 때 개방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칠 수 있다. 미국이 바라는 30개월 이상의 소고기 수입 문제를 풀어주면서 반도체 품목 관세 협상에서도 보다 유리한 조건을 확보할 수 있다. 또 디지털 플랫폼 법안도 데이터 주권을 내세우지만, 해외에서는 가능한 서비스가 한국에서는 안 되는 불합리성을 해소해야 한다.

주=오는 11월 APEC 정상회의에 시진핑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이 모두 참석할 가능성이 크다. 이 자리에서 한국이 한·미·중 3자 정상회의를 주도해 성사시킨다면, 이재명 정부의 큰 외교적 성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신=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동맹이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한미 동맹의 현대적 업그레이드를 통해 주한 미군 감축 가능성에 구체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정부가 대북 정책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추진한다면 큰 리스크를 동반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