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박 2일간의 일본 방문을 마치고 24일 워싱턴 DC로 출발했다. 이 대통령은 25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그러나 회담을 하루 앞둔 이날까지도 양국은 의제, 일정, 합의 사항, 발표 형식 등을 여전히 조율 중이라고 한다. 일정도 일부 유동적인 상황으로, 변동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얘기가 우리 정부에서 나오고 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정상회담 합류를 위해 이날 미국으로 출국했다. 강 실장은 “한미 정상회담의 성공은 대단히 중요하다”며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고, 한마디라도 더 설득할 수 있다면 당연히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을 설득해야 할 쟁점이 남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대통령 순방 때 국내에 머물며 현안을 챙기는 대통령 비서실장이 정상회담 준비차 미국으로 가는 것 자체도 전례가 없다.

강훈식(왼쪽에서 둘째) 대통령 비서실장이 한미 정상회담이 열릴 워싱턴 DC로 가기 위해 24일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으로 향하고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김용범 정책실장에 이어 강 비서실장도 미국 방문에 합류하면서 이례적으로 대통령실의 ‘3실장’이 모두 국내를 비우게 됐다. / 연합뉴스

앞서 미국에 도착한 조현 외교부 장관은 22일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루비오 장관은 인도·태평양에서 대중 억지력 강화,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미국 제조업 부흥 지원, 대미 무역의 공정성·상호성 회복 분야에서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의 일본 방문에 동행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24일 도쿄를 출발하기 전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미국과) 지금 여러 협의가 진행 중”이라며 “정상회담 타이밍쯤 되면 (의제가) 조율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여전히 미국과 협의에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방미 세부일정 여전히 유동적… 대통령실 3실장 모두 미국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1박 2일 일정의 일본 방문을 마치고 워싱턴 DC로 출발한 24일,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도 서울에서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이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 준비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는 방증으로 여겨졌다. 일본부터 순방에 동행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김용범 정책실장 외에 강 실장까지 대통령실 ‘3실장’이 모두 미국으로 향한 것은 그만큼 이번 회담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고위급 협의에서는 여전히 이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현 외교부 장관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22일 워싱턴 DC에서 외교장관 회담을 한 뒤 우리 외교부는 두 사람이 “이 대통령의 첫 방미를 위한 사전 준비 협의를 가졌다”고 밝혔다. 반면, 미국 국무부 발표에는 사흘 후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미 국무부는 두 장관이 “인도·태평양에서의 억지력 강화, 집단적 부담 분담 증대, 미국 제조업 부흥 지원, 무역 관계의 공정성과 상호성 회복 등 미래 지향적 의제를 중심으로 한미 동맹 진전 논의를 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회담을 앞두고 미국 측이 요구를 쏟아냈다고 볼 부분이라고 해석했다.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의 크리스토퍼 그린 컨설턴트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이 대통령이 카운터파트(트럼프 대통령)에게 몇 가지 자랑할 거리를 주고 평판이 손상되지 않은 채 워싱턴을 벗어날 수 있다면 상당한 성취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태평양에서의 억지력 강화란 대중 견제 요구로 풀이된다. 로이터통신은 “미 국방부는 중국의 위협 쪽으로 동맹의 초점을 옮기려고 하고 있다”고 했다. 또 “미국 국방부 내에는 주한 미군을 감축하자는 논의도 있다”고 전했다. 한중 관계를 관리하면서 주한 미군 규모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우리 정부에는 부담이 되는 논의다. 하지만 우리 외교부 발표에는 “북한 문제 및 지역 정세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는 말이 있을 뿐, 인도·태평양은 언급되지 않았다.

‘집단적 부담 분담 증가’란 한국이 한반도와 역내 방위를 위한 비용을 더 부담하라는 취지로 볼 수 있다. 로이터 통신은 익명의 미국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방위비 분담이 핵심 초점이 될 것”이라며 “트럼프는 한국이 (분담금을) 더 내도록 밀어붙이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내각 회의에서 “(한국이) 1년에 (방위비) 100억달러를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해 10억달러 정도인 방위비 분담금을 10배 가까이 올리라는 것인데, 기존 방위비 분담금 협상의 범위 자체를 넘어서는 액수다. 최근 미국이 동맹국들에 국방 예산을 국내총생산(GDP) 5% 수준으로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어, 국방비 증액 방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 국무부가 한미 간에 미국 제조업 부흥 지원, 무역 관계의 공정성과 상호성 회복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힌 점도 눈에 띈다. 한미 조선 협력을 위한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 세부 사항과 대미 투자, 미국산 농축산물 수입 확대 등이 현안이 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 외교부도 양측이 “지난달 관세 합의를 평가하고 일부 미합의 사안이 남아있는 상황에서도 통상 당국 간 진행 중인 협의가 원만하게 좁혀질 수 있도록 계속 독려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관세 협상에서 합의한 3500억달러(약 487조원)의 대미 투자 펀드(간접 투자) 운용과 수익 환수 등에 대해 양측 간 이견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관세 협상에서 우리 측이 거부한 미국산 농축산물 수입 추가 개방도 미국은 계속 요구하고 있다. 앞서 방미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과 이런 현안들을 협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