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3일 도쿄를 방문함으로써, 양자 외교 첫 방문국으로 일본을 선택한 첫 한국 대통령이 됐습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후, 한국 대통령이 다자 회의 참석을 제외하고 일본을 방문한 것은 처음입니다.
이 대통령은 또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 회담 후, 17년 만에 공동 성명을 발표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두 정상은 공동 언론 발표문에서 “양 정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 구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하고, 대북 정책에 있어 양국 간 협력을 지속해 나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습니다.
공동 발표문에는 “이시바 총리는 1998년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언급했다”는 내용도 명시됐습니다.
이 대통령은 이에 앞서 일본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을 “한국에 매우 중요한 존재”라고 평가하며, 양국 간 신뢰와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및 강제 징용 문제 등 과거사와 관련해 “이전 정부가 맺은 합의를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국가 간 약속의 존중과 정책 일관성, 대외 신뢰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노 대통령 초기 연상시키는 이 대통령
이 대통령은 취임 전에는 일본에 비판적이었는데, 취임 초기에 한일 관계에 전향적인 입장을 보였다는 점에서 진보 계열에서는 문재인 전 대통령보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03년 취임한 노 대통령도 처음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매우 좋은 관계를 가졌습니다. 두 정상의 우호적인 관계를 상징하는 것은 2004년 7월 21일 제주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기자회견입니다.
이날 제주 신라호텔의 기자회견장에 나란히 등장한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정장 대신 밝은색 콤비를 입고 있었습니다. 넥타이도 매지 않았습니다.
노무현과 고이즈미의 ‘노 타이’ 기자회견
노 대통령이 고이즈미 총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복장만큼 파격적인 선언을 했습니다. 자신의 임기 내에 한일 간 과거사 문제는 공식화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과거사) 합의를 이루기 어려워 공식 의제나 쟁점으로는 제 임기 동안엔 제기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2003년 일본 국빈(國賓) 방문 때 “모든 문제를 다 후벼 파는 것이 후손들을 위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 것에서 더 나아간 것이었습니다.
노 대통령 발언의 배경은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일본 총리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었습니다.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서 오부치 총리는 과거 일제 지배에 대해서 사죄하고, 김대중 대통령은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자고 받아들인 것이 공동선언에 포함돼 있습니다. 이날도 노 대통령은 “일본 정부와 국민이 가진 인식이 더 중요한 만큼 일본 국민 내부에서 합리적인 좋은 지혜가 나오길 바란다”고 말해, 일본의 민관이 우리 나라의 기대에 부응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2004년 제주 회담 당시는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인기가 있을 때였습니다. 노 대통령은 회담 중에 이 드라마가 화제에 오르자 고이즈미에게 “오늘 우리 둘이서 ‘여름연가’ 한번 찍어 보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말이 나올 만큼 두 정상의 회담 분위기는 좋아했습니다. 외교부는 당시 노 대통령이 등산을 좋아해 제주도 높새오름 등에 고이즈미 총리와 함께 등산을 하는 방안을 고려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고이즈미 총리가 운동을 좋아하지 않아 신라호텔의 ‘쉬리의 언덕’ 길을 산책하기로 했습니다. 이 언덕에서 해안으로 나가는 길도 고려됐는데, 어떻게 산책을 할지에 대해서는 두 정상의 판단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제주에서 산책을 하면서 정상회담을 하는 방식이 처음이어서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 낙관하지 못했는데, 반응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았습니다.
같은 해 12월 노 대통령은 일본 가고시마현 이부스키의 온천을 셔틀 외교차 방문했습니다. 그는 “한국은 아버지, 일본은 어머니의 나라”라고 말하는 도공 15대 심수관을 고이즈미와 함께 만나 양국 관계를 한 걸음 더 진전시키는 사진을 남겼습니다.
일본에 불쾌감 갖기 시작한 노 대통령
하지만, 노무현·고이즈미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두 정상의 관계는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역사 교과서 왜곡, 그리고 북한 문제에 대한 견해 차이 등으로 틀어져 버렸습니다.
노 대통령이 불쾌감을 갖기 시작한 징조가 나타난 것은 2005년 3·1절 기념사입니다. 그는 “한일 양국은 동북아의 미래를 함께 열어가야 할 운명 공동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양국 관계의 진전을 존중하지만, 진정한 미래를 위해서는 진실과 성의로 마음의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과거사에 있어 일본이 진실을 규명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며, 필요시 배상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한일 관계는 법적·정치적으로 진전을 이루었지만, 이것만으로는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양국이 진정한 이웃이 되기 위해 과거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포괄적 해결을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역설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같은 해 3월 23일 2005년 원고지 30매 분량의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발표했습니다. “(양국이) 서로 얼굴을 붉히고 대립하는 일도 많아질 것”이라며 “이번에는 반드시 (역사 왜곡의) 뿌리를 뽑도록 하겠다”고 분노했습니다. 그 요지는 이렇습니다.
“일본은 과거를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은 채 역사 교과서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도발은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대한민국의 영토입니다. 대한민국은 단 한 치도 흔들림 없이 독도를 지켜나갈 것입니다. 과거를 직시하지 않는다면 한일 간의 진정한 우호와 협력은 불가능합니다.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려는 시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합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잘못된 역사관과 영토 도발에 냉정하되 단호하게 대응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분노에만 머무르지 마시고, 슬기롭게 이 문제를 극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존심을 지키면서도 후손에게 당당한 역사를 물려주어야 합니다. 왜곡된 역사가 아니라 진실의 역사를 우리 아이들에게 남겨야 합니다.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일본의 잘못된 역사관을 바로잡겠습니다. 정의로운 역사를 세워나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올바른 역사 인식과 상호 존중만이 한일 관계 발전의 토대가 됩니다.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은 일본이 과거를 바로잡을 때 가능해집니다. 대한민국은 국민과 함께 역사를 지키고 영토를 지키며, 미래 세대를 위해 당당히 나아갈 것입니다.”
이것으로 두 정상 관계는 사실상 막을 내렸습니다. 그 후 2006년 일본의 독도 주변 수역 탐사 계획으로 충돌 위기를 거치며 악화일로였습니다. 유명환 차관(주일 대사, 외교부 장관 역임)은 당시 “대한민국이 두 쪽이 나도 끝까지,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우리 측 독도 주변 수역에 대한 일본의 탐사 계획을 막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23일 두 번째 정상회담을 갖고 좋은 출발을 한 이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는 21년 전 노무현·고이즈미 관계가 비극으로 끝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 정치가 과도하게 외교에 영향을 미치면, 언제든 비극이 재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당시의 교훈을 되새겨야 합니다. 양국 정상이 언제든 연결 가능한 ‘핫 라인’을 만들어 대응하는 방안도 고려되기를 바라는 이가 적지 않은 듯합니다.
[P.S.]
1. 노 대통령의 ‘다케시마’ 발언
2004년 7월 노 대통령이 고이즈미 총리와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이 큰 실수를 했습니다.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라고 표현한 겁니다.
기자회견에서 일본 신문 기자가 야스쿠니 신사, 다케시마 문제 등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이 “다케시마 문제에 관해서는 좀 적당하게 얘기하고 넘어가겠다”고 말해버린 겁니다. 명백한 실언이었습니다. 일본 기자가 ‘다케시마’라고 질문해도 한국 대통령은 ‘독도’라고 했어야 했는데, 깜빡한 겁니다.
당시 한국의 일본어 통역은 중요한 회담 경험이 많은 서명진씨였습니다. 일본어 능력 못지않게 정치적 감각이 뛰어났던 서명진씨는 노 대통령이 실수한 것을 눈치채고, 일본어로 통역할 때 ‘다케시마’를 ‘독도’로 옮겼습니다. 노 대통령이 실수한 것을 통역이 바로잡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럼에도 파문은 컸습니다. 일본 지지(時事)통신은 노 대통령이 “일한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다케시마(한국명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불렀다”고 보도했습니다. 지지통신은 “영토와 역사 문제에 대한 견해를 묻는 일본인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 무심코 발언한 것으로 보이는데, 눈살을 찌푸리는 한국인 기자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했습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다음 날인 22일 상임운영회의에서 노 대통령의 실수를 비판했습니다. 제주 출신 원희룡 최고위원은 “내 고향 제주도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다케시마가 (도대체) 웬 말이냐. 다음 달 15일 한나라당 의원들의 독도 방문을 추진하려는데, ‘독도 방문 프로그램’이 아니라 ‘다케시마 방문 계획’으로 바꿔야 하느냐“고 했습니다.
급기야 청와대가 나서서 “(대통령이) 질문을 받아 설명하는 과정에서 ‘다케시마’ 언급이 한 번 있었을 뿐이다. 대통령의 답변의 핵심은 ‘독도 문제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는 것’으로 답변 과정에서의 표현을 문제 삼아 왜곡하는 것은 문제”라고 반발했습니다. 대통령이 쓰는 단어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에피소드였습니다.
2. 유명환 차관 “대한민국이 두 쪽 나도...”
2006년 유명환 차관은 일본의 ‘독도 주변 수역 탐사’ 계획으로 한일 양국 간 갈등이 일 때 “대한민국이 두 쪽이 나도 끝까지,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우리 측 독도 주변 수역에 대한 일본의 탐사 계획을 막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당시 한국 언론에 널리 보도됐습니다.
그런데, 유 차관은 취재 기자들에게 “하늘이 두 쪽이 나도...라고 말했는데, 이를 기자들이 잘못 알아 들었다고 말합니다. 통상 결연한 의지를 표현할 때 쓰는 관용 문구를 썼다는 겁니다. 하지만, 복수의 기자가 유 차관의 발언을 듣고, 이를 일제히 기사화했다는 점에서 잘못 들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유 차관의 주장과는 관계없이 “대한민국이 두 쪽이 나도...”라는 발언은 그의 독도 수호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인식돼 화제가 됐습니다. 당시 유 차관의 대일 협상을 주시하던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에서도 그가 강력한 표현을 하면서 영토 수호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인 것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