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10월까지 전 장병을 대상으로 ‘민주주의와 헌법 수호’ 특별 정신교육을 실시하겠다며 작성한 표준 교안 내용이 논란이 되고 있다. ‘경계 소초 음주 제한 명령’ ‘지각 금지 명령’ 등은 따르지 않아도 항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소개했기 때문이다.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할 의무가 있는 군인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줘 자칫 군 기강이 해이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은 21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민주주의와 헌법, 그리고 군(軍)’이란 국방부 교육 자료를 공개했다. 국방부는 지난 8일 모든 장병과 군무원이 의무적으로 특별 정신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이를 각 군 본부 등에 하달했다고 한다. 자료 중에는 수갑 찬 군인의 뒷모습 사진과 함께 군 형법의 ‘항명죄’ 구성 요건이 설명돼 있었다.
문제가 된 것은 ‘적법한 군사상 명령에 해당하지 않아 불이행에 따른 항명죄가 성립하지 않은 사례’란 제목으로 판례를 나열한 부분이다. ‘상관이 일과 시간에 정시 출근하라는 지각 금지 명령’ ‘중대장의 독신자 숙소 환기 명령’ ‘해안 경계 부대 소초장의 음주 제한 명령’ ‘중대장의 구타 금지 교육’ 등이 따르지 않아도 법원에서 항명죄로 인정되지 않은 사례로 열거됐다. 이런 지시는 ‘정당한 명령에 해당하지 않음’이란 표현도 있었다.
국방부는 “군 형법상 항명죄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지, 이런 사례도 다른 관련 법규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설명이 없어 ‘이런 명령은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왜곡된 인식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방부는 논란이 커지자 “내용을 보완하고 있다”고 했다.
◇계엄 후… 軍, 민주주의 가르친다며 ‘항명 무죄’ 사례 돌려
국방부가 ‘민주주의와 헌법 수호’ 특별 정신교육을 하겠다며 ‘항명죄’ 관련 법규 교육 자료를 만든 것은 12·3 비상계엄 여파로 풀이된다. 국방부는 지난달 12·3 비상계엄 당시 위법·부당한 명령을 따르지 않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 기여한 장병을 찾아 특진 등 포상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에 이어 무엇이 적법한 명령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며 ‘항명죄’ 판례 교육에 나선 것이다. 한 야전 지휘관은 “명령을 목숨보다 중요시해야 할 장병들이 전쟁터에서 ‘명령이 정당한지 법리적으로 따져보고 따르겠다’는 식으로 생각할 수 있어 군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가 판례를 교안에 담은 방식도 문제다. 국방부 교안에는 ‘부하 능력 향상 목적의 교육, 훈련 명령이라도 군사적 직무 범위, 필요 수준을 벗어난 불필요하고 과도한 고통을 야기하는 경우, 정당한 명령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이어 관련 판례로 ‘분대장이 병사들의 총검술이 미숙하다는 이유로 내린 얼차려 명령’을 제시했다. 마치 얼차려 명령은 정당하지 않기 때문에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판례를 보면 항명죄가 불성립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법원은 직접 명령권을 가진 ‘순정 상관’이 법규에 맞게 내린 ‘정당한 명령’을 ‘고의’로 따르지 않았을 때 항명죄가 성립한다고 본다. 실제 사건에서는 3분대장이 1분대원들의 총검술 교육을 위임받아 하다가 손등 대고 팔굽혀펴기, 한강철교 등을 연달아 시켰고 마지막 선착순 구보를 뛰지 않은 병장이 항명죄로 기소됐다. 법원은 3분대장이 1분대원들에게 ‘포괄적 명령권’을 가진다고 볼 수 없고, 얼차려 규정상 ‘일과 시간 외 구보’만 시킬 수 있는데 규정에 없는 가혹행위를 했기에 몸이 좋지 않아 열외한 병장을 항명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그러나 국방부 자료에 이런 설명은 없었다. ‘군인 신분으로서의 윤리적 책무나 일상적 의무에 대한 명령은 정당한 명령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관련 판례로는 ‘상관이 일과 시간에 정시 출근하라는 지각 금지 명령’ ‘중대장의 독신자 숙소 환기명령’ ‘해안 경계 부대 소초장의 음주 제한 명령’ 등을 나열하는 식이었다. 개별 판례에서 항명죄가 성립하지 않았다고 이런 명령이 모두 부당하다고 할 수 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엄효식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총장은 “군이 헌법적 가치에 반(反)하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내용을 전달하면 될 일인데 개별 사례를 들면서 문제가 꼬였다”고 했다.
국방부 교안은 또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윤리 규범에 대한 교육은 군의 구체적인 작전 수행이나 지휘 통솔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부족하므로 적법한 명령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중대장의 구타 금지 교육’을 사례로 적었다. 중대장이 구타 금지 교육을 했는데도 타 병사를 구타한다면 항명죄는 성립하지 않을지라도, 군형법상 가혹행위나 폭행죄가 될 수 있다. 군 관계자도 “법무 검토를 한 번이라도 받았다면 이런 식으로 교안이 구성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교안은 국방부 정책실 주도하에 국방부 정신전력과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소식통은 “상부에서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어서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연구 자료를 ‘복붙’하듯이 만든 교안으로 안다”고 했다. 정작 비상계엄에 대한 내용은 이 교안에 나오지 않는다. 한 관계자는 “정권이 또 바뀌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니 민감한 내용을 피하며 판례만 나열하다가 사달이 났다”고 말했다.
전 장병 대상 교육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은 “명령의 적법성을 따지고 그 책임을 지는 주체는 지휘관”이라며 “신병은 물론 전 장병을 교육 대상으로 삼으면서 향후 지휘·복종 체계가 무너지고, ‘정당한 명령’에 대한 판단을 개별 병사에게 떠넘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우려들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자료를 보완한 후 장병 교육에 활용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