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매일같이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성균중국연구소가 최근 600쪽 분량의 ‘차이나 핸드북’을 발간해 눈길을 끌었다. ‘거대한 중국을 한눈에 보는 법’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2014년 초판, 2018년 개정증보판 이후 7년 만에 다시 중국의 변화를 반영했다. 한국의 중국 전문가 110명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10분야, 130주제에 걸쳐 중국의 과거·현재·미래를 한 권에 집약했다. 한국 사회의 중국 연구를 가늠할 수 있는 ‘차이나 핸드북’은 성균중국연구소가 아니면 발간하기 어려웠다는 게 중국 전문가들의 평가다.
2012년 설립된 성균중국연구소는 삼성그룹이 성균관대 운영에 관여하면서 학교로부터 약 60억원을 지원받아 한국을 대표하는 중국 전문 연구 기관으로 성장했다. 한국 유일의 중문 계간지 ‘성균중국관찰’을 만들어 중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배포하고, 국내에선 ‘성균차이나브리프’ 등을 펴내며 중국 연구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다. 중국 공산당, 당교, 연구 기관의 주요 인사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됐다. 성균중국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취임한 뒤 13년간 7차례 연임 후 이달 말 명예소장으로 물러나는 이희옥 소장을 6일 만났다.
삼성이 관여하는 성대에서 60억 지원
−작은 벽돌 두께의 차이나 핸드북이 화제다.
“인터넷에 떠도는 중국 관련 정보는 부정확한 경우가 많아 한국 각 분야 최고 학자 110명이 집필에 참여했다. 7년만에 개정판을 내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중국 붐이 꺼진 상황이어서 환경이 매우 어려웠다. 중국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한국은 여전히 관련 연구 인력 등 인프라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거대한 변화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해 위기감을 느낀다.”
−중국 인프라가 어느 정도로 취약한가.
“한국의 중국 관련 집단 지성과 연구 인프라는 차마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국책 기관의 경우 국립외교원에 중국 담당은 2명, 통일연구원과 국방연구원에도 각각 1~2명, 국가안보전략연구원도 2명뿐이다. 10명이 채 안 된다. 이들이 중국의 모든 현안을 분석하고 정부 정책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중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변화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종합적으로 해석하는 역량이 부족하다. 다른 대학 중에는 전임 중국 연구자가 없는 곳도 많다.”
−외교부는 어떤가.
“중국의 서해 내해(內海)화와 관련, 한국 외교부의 조약과 직원은 거의 매년 바뀌어 지난 10여 년간 열 명 넘게 교체됐다. 반면 중국은 담당자가 그대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에 논리를 갖춰 제대로 항의할 수 있겠나.”
−성균중국연구소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삼성그룹에서 직접 지원받나.
“박사급 연구원 5명을 포함해 전임 인력이 10여 명 된다. 전임 연구원이 10명이 넘는 중국 단일 연구소는 국내에서 우리가 유일하다. 삼성그룹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성균관대 학교법인은 재정 지원은 하되, 운영에 개입하지 않는 원칙을 지켜왔다.”
-대학 연구소장이 13년간 바뀌지 않은 것은 이례적인데, ‘장기 독재’ 아니었나.
“그게 아니라 열심히 봉사한 것이다(웃음).”
중국의 절박함, 동원체제와 결합 중
−중국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1979년 미·중 수교 다음 해에 대학에 입학했다. 당시 중국의 개혁·개방을 보며 새로운 국제 질서가 꿈틀거리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느꼈다. 중국 연구를 막 시작했을 때는 한국에 참고할 만한 책이 거의 없어 일본어를 배워 일본에서 발간된 책을 통해 공부했다.”
−올해 한국 사회는 두 번의 ‘중국 쇼크’에 놀란 것 같다. AI 딥시크와 화웨이 쇼크에 대해 많이 이야기한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통해 이뤄 온 ‘축적의 힘’이 이제 나타나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절박함이 중국 사회의 동원 체제와 결합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나는 중국 사회를 보고 놀라는 오피니언 리더들을 보며 오히려 놀랐다.”
−무슨 뜻인가.
“화웨이의 비약을 보고 놀라는 이들은 그동안 미국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얘기다. 중국의 변화에 둔감했던 것이다. 중국은 지난 수십 년간 자기 혁신을 거듭하며 엄청난 변화를 이뤘지만 한국 사회는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나마 한국 대기업들은 이제 중국의 추격을 우려하는 단계를 넘어, 차선을 바꾸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중국 추격 막기 위해 ‘차선’ 바꿔야
−차선을 어떻게 변경해야 하나.
“예를 들어 AI 분야에서는 AI와 금융, AI와 환경, AI와 바이오 등 융합적 상상력으로 차선을 바꿔야 한다. 복합적 사고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시대다.”
−우리가 빨리 앞서갈 수 있는 분야는.
“우리는 곡선 주로에서 추월하는 쇼트트랙을 잘하지 않나.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선진 제조업과 의료·바이오 분야에 경쟁력이 있다. 특히 의대 진학자는 최우수 학생층이고, 의료 분야는 우수한 보험 체제와 수준 높은 임상 빅데이터를 갖추고 있다. 이런 강점을 미래 산업과 결합해야 한다.”
−미·중 대결 속에서 한국 진로에 대한 논쟁이 격화되고 있는데.
“이전 정부는 한미 동맹의 틀 안에서 한중 관계를 다루는 ‘동맹 환원론’에 머물렀다. 한미 동맹이 강화되면 중국이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더 높게 볼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예전과 다르다. 한미 동맹 강화가 한국의 전략적 가치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중국은 미·중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한국을 다루는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경우 한국은 종속 변수가 될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대안은 무엇인가.
“한미 동맹과 한중 관계의 크기는 분명 다르다. 그러나 이제는 두 관계를 동시에 관리하는 것이 한국의 부담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과거 노무현 정부의 균형자론 아닌가.
“그렇지 않다. 현재의 구조적인 문제를 단순히 ‘탈중국’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한미 동맹과 한중 관계를 전략적으로 차등화하되, 중국 변수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국제 정치에서 지금의 중국 위상은 10년 전과 다르고, 한중 무역 적자도 쉽게 줄이기 어렵다.”
−중국 붐이 사라지고 혐중론이 확산되는 이유는.
“과거에는 한 다리를 건너면 중국과 연결된 사람이 있었지만, 지금은 한중 비즈니스 모델이 주로 기업 간의 B2B 거래로 바뀌었다. 중국이 ‘기회의 땅’이라는 인식이 약화됐다.”
핵심 이익 침해되면 단호하게 대응할 필요
−중국의 서해 내해화 등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한국의 핵심 국가 이익이 무엇인지 규정하고, 이를 침해당하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서해 한중잠정조치수역의 중국 구조물 문제는 여론이 매우 부정적이기에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 다만 우리도 구조물을 만드는 식의 맞대응은 상호 감정을 악화시켜 관계 회복을 어렵게 만들기에 유의해야 한다.”
−중국이 한국에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한미 동맹 약화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다만 동맹 현대화 논의, 주한 미군 전략적 유연성 확대에는 민감하다. 이에 대해 이재명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시나리오가 많이 거론되는데.
“트럼프 정부도 대만 문제와 북한 문제를 연계할지,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지 불확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먼저 입장을 정하는 것은 부담이 될 수 있다. 트럼프의 대중 정책은 불확실성이 큰데, 우리가 먼저 성급한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입장을 명확히 하는 대신 ‘모호성 전략’이 필요하다는 건가.
“미국이 당장 관세 유예 조치 연장에 잠정 합의하지 않았나. 미국과 중국은 서로 관계를 끊는 ‘디커플링’ 중이지만, 상황 변화나 자국 이익에 따라 다시 관계 복원을 시도하며 ‘커플링’ 할 수도 있다. 우리가 먼저 움직이는 것이 국익에 맞는지 판단해야 한다. 한미 동맹만 중시해서 갈 수도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자유’와 ‘질서’ 모두를 버리고 있지 않나. 복잡한 문제를 복잡하게 해결하는 게 외교의 영역이고 지혜다.”
시진핑 실각설은 중국 경제 어렵다는 뜻
−시진핑 실각설을 어떻게 보나.
“중국 엘리트 정치를 오래 관찰한 입장에서 실각 가능성은 낮다. 이런 소문은 중국 경제의 어려움에서 비롯됐지만, 중국이 쇠퇴할 일만 남았다는 ‘피크 차이나’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이렇게 때릴 이유가 없지 않나.”
−한중 관계의 목표는 무엇이 돼야 하나.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정태적 안정이 아니라, 불편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동태적 안정이 필요하다. 양국 간 문제를 심층 논의해 새로운 모델의 안정적인 관계를 추구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중국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현재 미·중 전략 경쟁 구조에서는 한중 양국이 협력 범위를 넓히기 어렵다. 양국이 기대치를 낮춘 상태에서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며 함께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다. 10월 말 한국에서 개최되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 회의는 시진핑 주석도 참석할 예정이니 좋은 계기로 삼아야 한다.”
−북·중 관계는 어떻게 보나.
“중국은 북한 문제를 미·중 관계 틀에서 보기 시작했다. 중국은 북·중·러 삼각관계 형성에 비판적이다. 갈 길이 바쁜 상황에서 신냉전 구도에 휘말리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중국의 젊은 세대가 북한에 비판적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이희옥
한국외국어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 2012년 성균중국연구소의 초대 소장을 맡았다. 주요 연구 분야는 중국의 정치 변동과 동북아 국제 관계. 성균중국연구소장으로 오랫동안 활동하며 중국 베이징대, 푸단대, 지린대 등 주요 대학과 교류를 이끌어 한국의 대중(對中) 연구 수준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