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이 이웃 국가들에 다소 문제가 되고 있다”며 “중국의 부상과 도전을 상당히 경계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고위 당국자가 ‘중국이 문제’란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조 장관은 3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한 인터뷰에서 한국이 직면한 지정학적 도전에 대한 질문을 받고 “북한의 대러 파병 대가로 러시아가 군사적 기술이나 관련 물질을 북한에 이전하지 않을지 염려해 왔다”고 했다. 이어 “중국이 이웃 나라들에 다소 문제가 되고 있는 또 다른 문제도 있다”면서 “우리는 중국이 남중국해와 황해(서해)에서 벌여온 일들을 지켜봐 왔다”고 했다.
중국은 2022년부터 매년 대만 포위 훈련을 하고 있고,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중인 베트남·필리핀 등과의 해상 충돌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 한중이 공동 관리하는 서해 잠정조치수역(PMZ)과 이어도 인근 등에 군사 정찰용으로 의심되는 대형 부표와 철제 구조물도 설치하기 시작했다. 조 장관의 발언은 이런 상황들을 모두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조 장관은 또 “경제적으로도 중국은 너무나 잘 발전해서 아주 빠르게 경쟁자가 됐다”고 했다. ‘올바른 대중 접근법’에 대한 질문에 그는 “중국에 ‘우리는 좋은 (한중) 관계를 유지하고 싶고, 중국이 양자 관계뿐만 아니라 역내 문제에서도 국제법을 준수하기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일본과 잘 협력할 것”이라며 “모든 이런 일들은 우리 동맹인 미국과의 좋은 협력 속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한미, 한·미·일 협력을 우선시하는 발언이다. 이에 대해 주한 중국 대사관은 “현재 중국은 주변국들과 모두 양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논평을 냈다.
◇“中, 역내 문제 국제법 준수해야… 美·日과 협력하겠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대한민국 외교의 근간은 한미 동맹”이라면서도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도외시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재명 정부의 ‘실용 외교’는 중·러와의 관계 개선 방향이 될 것으로 예상돼 왔다. 그럼에도 조 장관이 “중국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직설적 표현을 사용한 배경에는 달라진 한미, 한중 관계의 현실이 반영돼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①트럼프 행정부의 동맹 압박 ②중국의 서해 내해화(內海化) 시도 ③중국에 대한 국내 여론 변화 ④대미·대중 통상 구조의 변화 등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이번 인터뷰는 지난 1일(현지 시각) 미국에서 이뤄졌다. 조 장관이 워싱턴 DC를 방문해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첫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한 다음 날이다. 현재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과 한미 정상회담 일정·의제를 조율하고 있는데, 백악관은 이 대통령 당선 직후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을 우려”한다고 했다. 조 장관으로서는 미국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런 의구심을 해소할 필요성을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
국방비 증액과 주한 미군 재조정 등 ‘한미 동맹 현대화’가 협의되고 있는데, 중국 문제에서 미국과 이견이 있는 듯한 발언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조 장관은 WP 인터뷰에서 ‘주한 미군 감축’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가정적인 질문이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에 만난 상원 의원들 모두 그런 일(감축)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했다”고 했다. 또 “주한 미군에 대한 우려는 없다”며 “우리는 주한 미군이 지금처럼 남아 있고 그들의 역할도 오늘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조 장관은 한미 관세 협상 막바지인 지난달 29~30일 먼저 일본에 들러 이와야 다케시 외무상과 회담을 하고,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를 예방했다. 이와 관련, 조 장관은 WP 인터뷰에서 “미국에 오는 길에 일본에 먼저 들렀다”며 “우리가 역내에서 직면한 새로운 도전(중국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중국이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에 대형 구조물을 설치한 상황을 방관할 수만은 없다는 점도 조 장관의 발언 배경으로 꼽힌다. 아무리 대중 관계 개선이 필요해도, 중국의 주권 침해까지 용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중국 전문가인 주재우 경희대 교수는 “중국도 자국의 영토·주권 문제에 민감하다. 한국이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다만 현재 정부의 우선순위가 대미 관계이기 때문에 대중 관계를 뒤로 미뤄 놓은 측면도 있다”고 했다.
국내 여론과 한중 경제 관계의 변화도 대중 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지난달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대중 호감도는 19%로 대미 호감도(61%)보다 훨씬 낮았다. 중국 기업들의 기술력 향상으로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한국 기업이 고전하는 것도 문제다. “중국은 경쟁자가 됐다”는 조 장관의 발언은 이런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조 장관은 한미 관세 협상에 대해 “우리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일 수 있지만 동시에 제조업 분야에서 선두를 유지할 수 있다”며 “우리가 동북아에서 마주한 지정학적 도전들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게 우리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직은 이재명 정부의 ‘대중 외교 정책’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중 정책은 대미 관계가 안정된 후에 본격 형성될 것이란 예상이다. 조 장관은 WP에 “나는 중국에 관여(engage)할 필요성도 주목했다”며 “단순히 중국을 막으려고 시도하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3일 ‘한미 동맹 현대화’와 관련해 “(중국에) 우리 정부가 취할 조치들에 대해 잘 설명해왔다”며 “(한중 관계에) 큰 어려움으로 대두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이 대중 견제에 동참한다고 판단하면, 중국의 압박도 시작될 수 있다.
조 장관의 발언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 논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시 주석 등 각국 정상들에게 10월 31일~11월 1일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 초청장을 보냈다. 외교 소식통은 “중국이 내년 APEC 정상회의 주최국이기 때문에 시 주석의 참석 가능성은 여전히 매우 높다”며 “그렇지만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해야 할 시점도 올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