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왼쪽) 외교장관이 지난 31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 국무부에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을 만나 대화하고 있다./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전 세계 주요 국가들과의 관세 협상을 마무리한 후, 안보 현안에 본격 나설 전망이다. 이르면 이달 말 트럼프 행정부의 동북아 정책 등을 담은 새로운 국방전략(NDS)도 발표된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 중국 견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경우, 1950년대 ‘애치슨 라인’처럼 한국을 미국의 극동 방위선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관측이 트럼프 행정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이달 중 열릴 예정인 한미 정상회담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포함, 주한 미군의 역할 재조정 등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애치슨 라인에 버금가는 ‘트럼프 라인’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행정부 고위 인사가 최근 주한 미군 관련 언급을 하면서 애치슨 라인을 거론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여러 시나리오가 논의되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그래픽=이철원

◇“중국으로부터 떨어져 중국 견제”

실제로 지난 3월 일본의 ‘닛케이 아시아’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대만뿐 아니라 한국도 방위선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내용을 보도하며 애치슨 라인을 직접 언급한 바 있다. 이 기사에서 워싱턴 DC의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디펜스 프라이어리티스(Defense Priorities)’ 소속 제니퍼 캐버너 선임연구원은 “과거 애치슨 라인에는 일본과 필리핀이 포함됐지만 한국은 제외됐던 것처럼, 트럼프 2기에는 한국과 대만 모두에 대해 안보 측면에서의 확약을 주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캐버너 연구원은 ‘포린 어페어스’ 3·4월 호 기고문에서도 “역대 미국 정부는 중국 및 대만에 인접한 지역에 군사기지를 지나치게 확대해왔다”며 제1 도련선(島鏈線) 방어에 집착한 전략을 비판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 근해 방어 전략을 수정, 제2 도련선에 대한 방어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하면서, 일본 북부, 괌, 미크로네시아, 팔라우 등의 공항 및 항구를 전략 거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중국과의 전면전 위협, 신기술의 발전에 따라 중국으로부터 떨어져서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논리로, 여기에 한국은 포함되지 않았다.

트럼프 2기 국방 정책의 핵심 인사로 꼽히는 엘브리지 콜비 국방정책차관도 비슷한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그는 “미국은 팽창하는 중국의 패권에 맞서기 위해 유럽의 전략 자산을 아시아에 집중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대만과 한국에 대해서는 “미국이 직접 방어에 나설 것이 아니라, 중국 견제의 관점에서 필요한 수준의 개입만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는 한국과 대만이 국방비를 대폭 증액하면서 스스로 방어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최근 트럼프 행정부 안팎에서 거론되는 신(新)애치슨 라인과 맥이 닿아 있다.

트럼프의 한미 동맹과 주한 미군 경시론은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새로운 형태의 애치슨 라인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하게 만들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해 5월 대선 캠페인 당시 ‘타임’지 인터뷰에서 또 다시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위험한 지역에 (주한) 미군이 주둔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한국은 부유한 나라다. 왜 우리가 누군가를 대신 방어해야 하느냐”고 강하게 반문했다.

트럼프 1기의 마크 에스퍼 전 국방장관은 회고록에서 트럼프가 실제로 주한 미군 철수를 추진하려 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함께 “재선 이후로 미루라”고 설득했던 일화를 소개한 바 있다. 에스퍼 전 장관은 지난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도 “트럼프의 재집권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방위 공약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그가 출마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 김정은과의 협상 카드 가능성

트럼프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재협상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그가 김정은을 다시 만나 주한 미군 철수 또는 감축을 협상 카드로 테이블에 올려놓으면서 ‘트럼프 라인’을 제안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중국과 관세·무역 문제로 갈등을 벌이다가도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비슷한 협상안을 제시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트럼프 정부 안팎에서 ‘애치슨 라인’이 거론되는 이유는 일본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설령 주한 미군을 전면 철수시켜 한국을 극동 방위선에서 제외하더라도, 일본 열도가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다. 트럼프는 주일 미군 방위비 분담금에 대해서는 불만을 표시했지만, 주일 미군의 전면 철수 가능성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장은 “트럼프 행정부는 이재명 정부가 중국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여전히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며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한국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비롯, 새로운 동맹의 근간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세워 한미 정상회담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애치슨 라인과 도련선

애치슨 라인: 1950년 1월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이 밝힌 미국의 극동 방어선. 일본 본토~오키나와~필리핀의 주요 섬을 연결했으나 한국과 대만은 포함되지 않아 미군의 직접 방어 대상이 아님을 시사했다. 북한의 김일성이 남침을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도련선(島鏈線): 중국이 태평양 진출과 해양 방어를 위해 섬(島)을 사슬(鏈)처럼 이은 전략 경계선. 제1도련선은 일본 오키나와·대만·필리핀을 연결해 근해 방어에 주력한다. 제2도련선은 이보다 더 동쪽으로 진출, 괌·사이판·팔라우 등을 이으며 미국을 견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