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 내부 대형 스크린에 한국인 강제 노역으로 악명 높았던 군함도(하시마·端島)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위 사진). 군함도 등에서 생활한 사람들의 사진도 전시돼 있다(아래 왼쪽 사진). 이 센터는 “한국인에 대한 차별 대우는 없었다”는 등 일본에 유리한 증언만 소개하고 있다. 아래 오른쪽 사진은 석탄 산업 등에서 이룬 일본의 산업화 성과를 홍보하는 모습이다./도쿄 특파원 공동취재단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한국이 일본의 군함도(원명 하시마·端島) 탄광 관련, 역사 왜곡 문제를 정식 의제로 채택하려 했지만, 표결에서 졌습니다. 한국은 일본이 2015년 세계유산 등재 당시 약속했던 조선인 강제 동원 관련 설명이 불충분하다고 보고, 이 문제를 유네스코에서 다시 논의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양자 협의로 해결해야 한다며 ‘의제 제외’ 수정안을 제출, 표결 결과 일본의 주장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일본의 약속 불이행과 우리 정부의 외교 전략 미숙이 겹쳤는데,이를 계기로 논란이 된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다룬 ‘산업유산정보센터’ 설립 논란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전시관에 “한국인 차별 없었다”

2020년 6월 15일 일본 정부가 한국인 강제 노역으로 악명 높았던 군함도의 진실을 왜곡한 근대산업시설 전시관의 일반 공개를 시작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예산을 100% 지원하는 ‘산업유산국민회의’는 도쿄도(東京都) 신주쿠(新宿)구의 총무성 제2청사 별관에 ‘산업유산정보센터’를 만들었습니다.

센터는 공개 전날인 6월 14일 도쿄 주재 한국 특파원의 공동 취재단에 내부를 공개했습니다. 이곳은 메이지 시대의 산업 유산 23곳을 홍보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전체 면적이 1078㎡로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군함도 관련 전시는 ‘존(Zone) 3’에 있습니다. 65인치 스크린 7개를 붙여서 군함도의 역사와 의의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센터는 출입구 부근에 군함도 등재 당시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에 한 ‘약속’을 명기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전시물에선 그런 내용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가혹한 조건하에서의 강제 노역’을 부정하는 내용을 강조했습니다.

재일교포 2세로 어린 시절을 군함도에서 보낸 스즈키 후미오(鈴木文雄)씨의 증언이 대표적입니다. 그의 증언은 ‘하시마 탄광에서 일한 오장(伍長)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는 내용으로 전시돼 있습니다.

이 패널에는 스즈키씨가 “이지메 당한 적이 있느냐” “채찍으로 맞았나”라는 질문에 대해 “이지메 당한 적 없고 오히려 귀여움을 받았다” “채찍으로 때리는 게 가능하겠느냐”고 답한 게 기록돼 있습니다. “당시 조선인과 일본인은 모두 같은 일본이라서 차별이 없었다. 학대도 없었다”는 일본인 증언도 스크린에 흘러나왔습니다.

일본 정부는 2015년 군함도의 유네스코 등재 당시 ‘본인의 의사에 반(反)하는 한국인 강제 노역’을 인정하며 희생자를 기리는 내용이 포함된 인포메이션센터 설립을 국제사회에 약속했으나 이를 지키지 않고 오히려 전시물에서 “한국인 차별이 없었다”는 증언을 소개한 겁니다.

이 밖에도 군함도 등에서 생활한 10여 명과의 인터뷰 영상을 통해 과거를 미화했습니다. 산업유산국민회의 임원이기도 한 가토 고코(加藤康子) 산업유산정보센터장은 취재진에 “탄광 노동자 중에서 학대를 받은 사람은 없다”고 했습니다.

이곳은 한국인들에게 급여를 정확히 줬다는 것을 강조하듯 당시의 월급봉투를 전시해 놓기도 했습니다. 또 1940년대 징용령뿐만 아니라 한일청구권 협정 전문을 실어 놓았습니다.

일본 나가사키 인근의 하시마(端島.군함도) 전경. 한국인 징용자들이 이곳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100명 이상 사망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섬 전체가 멀리서 보면 군함을 닮았다고 해 군함도로 불린다./뉴시스

유네스코 약속 어긴 일본

일본은 일제시대 말기 군함도 외에도 나가사키 조선소, 야하타 제철소 등에 약 4만명의 한국인을 강제 동원했습니다. 이런 역사 때문에 박근혜 정부는 일본이 2013년 군함도를 포함한 메이지 시대의 산업혁명 유산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결정하자 반대했었습니다. 아베 내각이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어두운 역사로부터 눈을 돌리고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아베 내각은 박근혜 정부가 이의를 제기하며 유네스코에서 ‘표 대결’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보이자 자세를 낮췄습니다. 한국인 강제 노역을 인정, 이런 내용이 포함된 인포메이션센터 설립을 약속했습니다. 1940년대 본인 의사에 반해서 일본 땅을 밟은 후 가혹한 환경에서 일하기를 강요받은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이후 지속적으로 약속을 어겨왔습니다. 일본 정부는 201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첫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강제 노역’ 표현을 넣지 않았습니다. 2019년 제2차 보고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에 대해 유네스코는 일본의 약속 위반을 상기시키며 등재된 시설의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한 바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의 권고를 무시한 데 대해 일본에서도 비판이 나왔습니다. 교도통신은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 지배하고 있을 당시 군함도엔 많은 조선인 노동자가 무도한 대우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이번 움직임은) 과거의 사실을 덮는 역사 수정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부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아베 내각이 한국의 반발이 예상되는 전시를 강행, 양국 관계가 악화하는 것을 조장하거나 방치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외교부는 당시 주한일본대사관의 고위 관계자를 초치, 이 문제에 대해 항의하는 것은 물론 유네스코에도 이 사실을 알려 일본 정부가 전시 내용을 수정하도록 요구했습니다.

2020년 6월 14일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의 가토 고코 센터장이 도쿄 특파원 공동취재단과 대화하고 있다.

가토 센터장은 가토 가쓰노부 재무상의 처형

당시 저는 도쿄 특파원으로 이 사안을 취재했는데, 이에 대한 외무성의 영향력과 권한이 크지 않다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 외교관들은 국제사회의 동향을 잘 알기에 대체로 유네스코의 권고를 따라야 한다는 견해를 가졌지만, 아베 총리와 그 주변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것이 군함도의 진실을 왜곡한 산업유산정보센터장에 아베 총리와 2대(代)에 걸쳐 인연이 있는 측근이 임명된 겁니다.

당시 도쿄에서 군함도 문제를 취재하던 저는 아베 총리 관저 사정에 밝은 일본 측 소식통을 만났습니다. 그로부터 “아베 총리의 최측근으로 ‘포스트 아베’로도 거론되는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후생노동상(현 재무상)의 처형(妻兄)인 가토 고코가 산업유산정보센터의 개관 준비를 총괄한 후 센터장을 맡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소식통은 “그녀의 아버지는 아베 총리의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전 외무상과 절친했던 가토 무쓰키(加藤六月) 전 농림수산대신으로 지금도 가족 간에 왕래할 정도로 친한 사이”라고 했습니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가토 무쓰키는 1980년대 아베 신타로가 총리 후보로 거론될 당시 아베파 ‘사천왕(四天王)’ 중의 한 명으로 불릴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습니다. 가토 고코 센터장은 게이오대 졸업 후부터 일본 메이지 시대의 산업유산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왔습니다. 2013년에는 재단법인 산업유산 국민회의를 만들어 전무이사로 취임했는데, 여기에는 자신의 아버지는 물론 아베 총리와 관련된 인맥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2015년엔 아베 총리로부터 ‘내각관방참여(參與)’로 임명돼 군함도 탄광 등이 일본의 근대 산업 시설이 세계유산에 등록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다른 소식통으로부터도 “아베 총리 어머니와 가토 센터장의 어머니가 자매로 불릴 정도로 친한데 아베 총리가 가토 센터장을 여동생으로 여긴다는 얘기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이를 기사화했었습니다. 산업유산정보센터의 홈페이지(https://www.ihic.jp/l/ko-KR/about-us)에 따르면, 지금도 그가 센터장을 맡고 있습니다.

“외무성은 총력전으로 한국과 싸우지 않아”

고코 센터장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인물로 2015년 교도통신 인터뷰에서 “한국이 (군함도 같은) 세계유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일본이 허용하고 만 것은 안타깝고 분하다”고 해 논란이 됐습니다. 그는 “일본 외무성은 (한국에) 대항할 준비를 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적극적이었으나 외무성이 진짜 총력전으로 싸울 태세가 아니었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그의 생각엔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그는 2020년 도쿄 특파원 공동취재단에 일부 증언 영상을 토대로 “(일제 시대) 조선인과 일본인은 모두 같은 일본인이라서 차별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에서 했던 국제 약속과는 다르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앞으로 1년에 걸쳐 전시의 내용을 더욱 충실하게 할 예정”이라고 밝혔을 뿐 시정 약속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국수주의자(國粹主義者)자인 가토 센터장이 메이지 유신을 홍보하는 산업유산정보센터에 대해 전권을 갖고 있는 한, 앞으로도 전시 내용이 바뀌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는데,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2018년 대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이 한일 청구권 협정 위반이라며 “한국이 국제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유네스코에서 국제사회를 향해 한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젠 유네스코에서 이 문제를 다루지 말아 달라고 요구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일본 사회를 우측으로 몰아가던 아베 총리는 사망하고 없는데, 우경화의 관성은 계속되고 있는 듯합니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한일 관계를 위태롭게 하는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혜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군함도

일본 나가사키 인근의 섬으로 원명은 하시마(端島). 면적 0.063㎢에 불과한 작은 섬이지만 메이지 시대부터 1970년대까지 석탄 채취 때문에 한때 5000명이 거주하기도 했다. 한국인 징용자들이 이곳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100명 이상 사망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섬 전체가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있고 멀리서 보면 군함을 닮았다고 해 군함도로 불린다. 1974년 폐광돼 무인도가 됐고 2015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