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에서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한미일 3국 합참의장(Tri-CHOD) 회의가 열렸지만, 이날 발표한 3국 공동 보도문에는 작년과 달리 중국의 공격적 행동이나 대만 문제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 측이 중국이나 대만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뺀 것은 맞는다”면서도 “‘역내 평화와 안정’이란 표현 속에 그 문제들도 포함돼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중국의 위협에 공동 대응하려는 미·일과, 이 문제에 침묵하면서 남북 관계 복원 등에 집중하려는 한국의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미가 협의를 시작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논의도 이런 흐름을 가속할 수 있다.
댄 케인 미 합참의장은 11일 서울 용산 합참 청사에서 열린 한미일 3국 합참의장 회의에서 “현재 북한과 중국은 전례 없는 수준의 군사력 증강을 추진하고 있다”며 “우리는 우리의 결의를 보여주고, 파트너십을 더욱 창의적이고 적극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중 견제에 한국과 일본이 동참해야 한다는 요구로 해석됐다. 하지만 이날 회의 종료 이후 나온 3국 공동 보도문에는 예년과 달리 중국에 대한 직접적 언급이 없었다. 중국과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는 내용은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한 3국 간 협력을 심화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에 대해 집중 논의했다” 정도였다.
지난해 일본에서 열린 3국 합참의장 회의 공동 보도문에는 “남중국해 등 역내에서 불법적 해상 영유권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중국의 위험하고 공격적인 행동이 증가”한 것을 우려하며 “일방적인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에 반대한다”는 문구가 있었다. 3국이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북한에 대한 어조도 달라졌다. 지난해 공동 보도문에서 3국은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 강화를 규탄”했다. 그러나 올해는 “북한의 러시아에 대한 파병과 러시아에서 북한으로의 군사 기술 이전 가능성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만 했다. ‘규탄’ 대신 ‘논의’란 표현을 쓴 것이다. 군 관계자는 “현 정부의 중국, 러시아와 북한에 대한 입장이 반영돼 문구 변경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대만 문제 등에 대해서 이재명 정부는 미일과 일정 수준 선을 긋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였던 지난 5월 미국 타임지 인터뷰에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대만을 돕겠느냐’는 질문에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려 할 때 그 답을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다. 한 유세 현장에서는 “대만하고 중국하고 싸우든지 말든지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했다. 또 한미 동맹 발전, 한·미·일 협력과 함께 ‘중러 관계 개선 추진’을 공약했다.
이 대통령이 이런 인식을 갖고 있는 가운데 한미 정부가 진행 중인 전작권 전환 협의가 급속도로 진전되면 주한 미군의 규모나 역할 조정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미 국방부는 한국군에 전작권을 이양하면서 주한 미군 병력을 감축하거나 육군 대신 공군·해군 위주로 편성을 변경하는 문제도 검토하고 있다. 정부 소식통도 “주한 미군 감축이 현안으로 떠오를 수 있다”며 “앞으로 협의해 가겠다”고 말했다. 한국이 계속 대중 견제에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면, 미국은 주한 미군 병력과 자산 상당수를 대중 작전에 더 적극적인 주일 미군 기지나 인도·태평양 지역의 다른 기지로 배속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일본 자위대는 앞으로 주일미군사령부와 자위대가 공동 작전을 하게 되는 경우에 대비해 지난 3월 육상·해상·항공 자위대를 일괄 지휘하는 통합 작전사령부를 발족시켰다. 일본은 동아시아 지역을 단일 전구(戰區)로 묶어 연합 전력을 통합 운용한다는 ‘원 시어터’ 개념을 미국에 제안, 호주·필리핀의 호응도 이끌어냈다. 미국·일본·호주·필리핀은 4국 비공식 안보 협의체 ‘스쿼드’를 연내에 구체화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한 예비역 장성은 “일본은 미국과 연합해 작전하는 한국의 능력을 얻고자 하는데, 한국은 이미 가진 것을 버리려고 한다”고 했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한반도 전쟁 발발 시 군의 작전을 통제할 권한. 6·25 전쟁 이후 유엔군사령관이 갖고 있던 한반도 작전통제권은 1978년 한미연합군사령부 창설과 함께 한미연합군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이 겸임)에게 넘어갔다. 그중 평시(平時) 작전통제권은 1994년 우리 군 합참의장에게 환수됐지만, 전작권은 계속 미군이 갖고 있어 이것을 한국군에 언제 이양하는지가 한미 관계의 현안이 돼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