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뉴욕의 유엔주재 한국 대표부 2층에 마련된 '반기문 홀' 개관식에서 조현 당시 유엔 대사 부부가 반기문 총장 부부와 함께 한 모습. 사진의 맨 위에 BAN KI-MOON HALL 이라고 쓴 명패가 보인다./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반기문재단

지난 23일 조현 전 외교부 1차관이 외교부 장관에 지명됐을 때, 민주당의 핵심 관계자가 대선 중에 제게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인 그는 조 후보자를 언급하며 “우리 당에 온 전직 외교관 중 로열티(loyalty)가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재명 후보가 당선될 경우 외교부 장관 후보군에 위성락 의원, 조 차관,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거론됐는데, 조 차관이 유력하다는 얘기였습니다.

민주당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여당이 됐지만, 외교관들을 크게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외교관에 대한 불신감이 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상황에서 조 후보자의 “충성심이 강하다”는 얘기를 듣고 그가 외교부 장관이 될 가능성에 주목해 왔습니다.

조 후보자는 주유엔 대사를 마치고 돌아와 2023년 민주당에 입당해 활동해 왔습니다. 어떤 모임에서 누가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자 그가 즉각 말을 끊으며 “가능성이 높은 게 아니라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게 확실하다”고 못을 박듯이 말한 것이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원혜영 의원과의 만남

조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에서 1, 2 차관, 주유엔대표부 대사를 거쳤는데, 그가 민주당과 가까워진 계기는 박근혜 정부에서 주인도대사를 할 때였습니다. 조 대사가 2015년 10월부터 뉴델리에서 주인도대사로 근무할 때 원혜영 당시 민주당 의원이 동료 여야 의원 6명과 함께 12월 말에 인도를 방문했습니다. 이때 원 의원은 인도와 국제 정세에 대해 브리핑 해 준 조 대사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에게 감명 받은 원 의원은 다른 의원들과는 별도로 시간을 내 조 대사를 면담했습니다.

원 의원은 귀국 후, “인도에 갔더니 훌륭한 대사가 있더라”며 민주당과 동료 의원들에게 조 대사를 추천했습니다. 민주당 안팎에서 신망이 있는 원 의원의 평가는 그가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 외교부 2차관으로 임명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원 의원은 24일 전화 통화에서 “인도 방문 당시 조현 대사를 처음 만났는데, 국제 관계에 대한 안목과 통찰력이 있는 외교관이라고 아주 좋게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조 대사를 따로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누며 우리 당이 집권하면 쓸 만한 인재라고 판단했다”고 했습니다.

원 의원은 2021년 20대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인재 영입을 총괄하는 국가인재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습니다. 원 의원은 이때도 조 대사를 이재명 후보에게 적극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23년 9월 6일 윤석열 정부에 맞서 단식투쟁 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조현 전 유엔 대사(맨 오른쪽)가 이종석 현 국정원장 등과 함께 격려 방문했다./ 뉴스핌 제공

아프리카 공관 잇달아 두 번 근무

조 후보자는 1979년 외무고시 13회 출신으로 직전의 조태열 전 장관과 동기입니다. 그는 50명을 뽑은 13회 동기 중에서 처음부터 주목받은 외교관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이력 중 눈에 띄는 대목은 외교관 시절 초반에 아프리카의 두 공관에서 잇달아 근무한 것입니다. 그가 벨기에 근무를 마치고 1987년 두 번째로 배치된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주재 한국 대사관이 2년 만에 폐쇄됐습니다. 그는 외교부 본부로 돌아갈 줄 알았지만, 세네갈로 옮겨서 1년가량 더 근무했습니다. 외교관 초기에 선진국 근무를 마치면 아프리카 등 오지에서 3년을 근무하는 관례에 따른 것이었지만, 공관이 폐쇄됐기에 귀국할 수도 있었습니다. 전주고-연세대 정외과 출신의 그는 자신이 당시 외교부 주류인 경기고나 서울대 출신이 아니어서 불이익을 받은 측면이 있다고 외교부 선후배들에게 가끔 얘기해왔습니다.

반기문 총장과 청와대 함께 근무

그가 외교관으로서 중용되기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 반기문 당시 외교 보좌관(훗날 유엔 사무총장)과의 인연에서 비롯됐습니다. 반기문 보좌관은 2004년 1월 장관으로 승진하자 당시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하던 인물들을 외교부 주요 보직에 기용했습니다. 조태용씨(훗날 주미 대사, 국정원장 역임)는 북핵외교기획단장에 이어 북미국장, 박노벽씨(훗날 주우크라이나, 주러시아 대사 역임)는 장관 보좌관에 이어 구주국장이 됐습니다. 조 후보자는 국제경제국장으로 발탁됐습니다.

조 후보자는 반기문 장관의 신임을 받아 2006년 2월 유엔 차석대사로 부임했습니다. 외교관이 된 후, 통상 분야가 전공이었는데, 유엔 차석대사로 정무를 담당하는 다자 무대로 진출한 겁니다.

조 후보자는 반 장관이 자신을 발탁해준 것을 늘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2019년 외교부 1차관을 마치고 주유엔대표부 대사로 부임했습니다. 이어서 2021년 10월 유엔 대표부 내 2층을 ‘반기문홀(BAN KI-MOON HALL)’로 명명하고, 반기문 총장 부부를 초청해 개관식을 가졌습니다. 유엔 대표부에서 외국 대사들을 초청해서 행사를 할 때는 장소를 ‘반기문 홀’로 명시하도록 지시했습니다.

반 총장은 24일 전화 통화에서 “유엔이 있는 뉴욕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곳에 내 이름을 새긴 공간을 조 대사가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반 총장은 조 후보자에 대해 “일을 정확하고 매끄럽게 처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며 “이 대통령이 외교부 장관을 잘 지명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조 후보자가 외교부 2차관에 이어 1차관으로 임명된 데는 강경화 장관의 역할이 컸습니다. 당시 청와대는 외교부 출신의 다른 인사를 1차관으로 임명하려 했으나 최종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청와대는 강 장관에게 “시간이 없으니 1차관을 직접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강 장관은 자신의 연세대 정외과 3년 후배인 조 후보자를 추천, 2차관에서 1차관으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이재명 후보 때 ‘반일 친중’ 안 된다고 조언

조 후보자는 이번 대선 때 이재명 캠프에서 ‘국익중심 실용외교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아 활동하면서 위성락 의원(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외교안보 문제로 ‘실점’하지 않도록 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특히 징용 및 위안부 문제 등 한일 갈등과 관련해, “과거 정부 간 합의 및 약속은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습니다. 이는 민주당의 ‘반일정서’와는 결을 달리한 것으로, 외교관의 오랜 관록이 반영된 것이었습니다.

특히, 이 후보가 ‘반일 친중(反日親中)’ 이미지를 벗지 않으면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조언했습니다. ‘일본은 한국인이 매년 1000만명 이상 찾는 우호 국가지만, 중국은 서해를 자국의 내해(內海)로 만들려는 위협적 존재’라는 일반 국민의 인식을 수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민주당 인사들이 하기 어려운 제언들이 수용되면서 대선 기간 중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안보 발언은 과거와 비교해 논쟁적이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조현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25일 서울 종로구 대우빌딩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뉴시스

“자주파 의식해 취임하면 미국부터 가야 한다는 건 고정관념 발언했나”

조 후보자는 민주당에 대한 충성심은 강하지만, 그렇다고 한 편에 치우치지는 않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비교적 합리적인 성향으로 외교부 안팎에서 그를 ‘비토’하는 세력은 거의 없습니다. 외교부에서 함께 근무했던 한 후배 외교관은 “조 후보자는 차관 시절 권력을 행사하기보다는 절제하는 쪽이었다”고 했습니다. 다른 외교관은 “함께 일했던 후배들의 인사를 잘 챙겨주지 않아 원성을 듣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조 후보자는 다양한 외교 현장을 두루 경험했지만, 북핵 문제나 한미동맹, 중국과의 갈등 등 이른바 ‘하드 이슈’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응한 경험은 많지 않습니다.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당시 협상을 이끌기도 했지만, 소위 ‘워싱턴 스쿨’의 일원으로 한미동맹을 다뤄본 적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향후 트럼프 정권과의 주한 미군 관련 협상이나 한중 관계 등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 후보자가 24일 “취임하면 미국부터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는 “자연스럽게 그렇게(미국부터 방문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사족을 달았지만, 트럼프 정부가 좋아할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 찍으러 미국 가지 않겠다”를 연상시킨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조 후보자와 같은 분야에서 오랫동안 함께 근무했던 그의 후배는 “조 후보자는 두뇌 회전이 빠른 사람”이라며 “자신을 기용해 준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의 자주파를 의식해서 한 말 아니겠느냐”고 했습니다. 그의 문제성 발언은 앞으로 이재명 정부의 자주파와 동맹파 사이에서 ‘줄타기’를 예고하는 것 같다는 관측도 나왔습니다.

외교부 차관에 김홍균 전 차관(외시 18회)과 11기 차이가 나는 박윤주 차관(외시 29회)이 임명돼 조직이 술렁거리는 상황에서 어떻게 외교부를 안정시킬지도 숙제입니다. 차관보를 박 차관보다 더 아래 기수로 정할 경우, 외시 30회 이하로 내려가게 돼 이들보다 경력이 많은 외교관들이 대거 퇴직하거나 해외로 나가야 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