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보를 대표하는 외교·안보 전문가 3명이 국회 미래연구원(원장 김기식)이 23일 주최한 국회외교안보포럼에서 이재명 정부의 외교 정책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대전환의 시대, 한국 외교의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엔 문정인 연세대 제임스 레이니 석좌교수(전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전 외교부 장관)이 참석했다. 문 교수는 노무현 정부에서 동북아시대위원장을 지내며 ‘자주파’로 분류된 반면, 윤 이사장은 자주파와 동맹파의 논쟁에 휘말려 외교부 장관에서 물러났다. 하 이사장은 동아시아연구원을 이끌며 주로 한미 동맹에 기반한 외교 정책을 만들어왔다.
이 대통령이 내세운 실용 외교에 대해 문 교수는 “이 대통령이 G7에는 가고 나토에는 가지 않는 것은 짝이 맞지 않는 불안정한 행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데, 앞으로 이런 빈도가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동북아의 전략적 불안정에 대응하는 새로운 외교적 포석이 필요한데, 아직 국민에게 와 닿는 것이 없다”고 했다. 윤 이사장은 “이 대통령이 국익에 기반한 실용 외교, 한·미·일 3국 협력 중시는 방향을 잘 잡았다”며 “트럼프처럼 변화무쌍한 사람이 주무르는 상황에서 실용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폭과 유연성을 넓힐 것”이라고 했다. 진보 성향의 문 교수는 실용 외교에 대해서 유보적인 입장을 밝힌 반면, 보수 성향의 윤 이사장은 지지 입장을 밝힌 것이다. 하 이사장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은 불가피하고, 4000명가량의 주한 미군 재배치가 이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미국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곧 낼 텐데 이에 대한 이재명 정부의 대응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와의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윤 이사장은 “트럼프는 개인적 관계를 국가 간의 관계로 등치시킨다”며 “트럼프와의 인간관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와의 관계가 잘 풀리면 다른 현안이 쉽게 풀린다”고 조언했다. 문 교수는 “거래적 협상을 하는 트럼프에게 먼저 주고 나중에 얻는 선공후득 정책으로 가야 유리하다”고 했다. 그는 “안보 무임승차는 안 하겠다며 한국군이 주력이 되고, 미군이 지원하는 큰 담론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이재명 정부가 취해야 할 대중 정책 관련, 하 이사장과 윤 이사장은 한미 동맹을 강조했다. 하 이사장은 “중국은 미국과는 전면적으로 부딪치지 않는 신형 대국 관계를 유지하지만, 아시아 국가들과의 신형 주변국 관계는 다르다”며 “베트남에서 대만, 한국에 걸쳐 군사력을 고려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한·미·일 협력의 실용적인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윤 이사장은 “중국은 남북한을 미국과의 경쟁 관계에서 다루는데, 북한은 미국을 막는 방파제로, 한국은 미국의 동맹 네트워크에서 떼어낼 대상으로 본다. 이를 직시하고 중국에 대해 의연한 외교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문 교수는 “김대중 대통령은 소가 논두렁을 지나갈 때 오른쪽 풀만 아니라 왼쪽의 풀도 먹어야 한다는 논두렁론을 펼쳤다”며 “미·중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느냐가 이재명 정부에는 큰 과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세 사람 모두 이재명 정부가 일본과의 협력 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에 대해선 높이 평가했다. 문 교수는 “미국이 주도한 세계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데, 한일 협력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했다. 윤 이사장은 “일본도 트럼프 정부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며 “동병상련의 위치에 있는 일본과 협력하면 글로벌 선진 외교를 펼쳐 나갈 동력이 된다”고 했다.
이재명 정부에서 남북 관계가 진전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모두 비관적이었다. 문 교수는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론은 수사가 아니라 실질적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며 “이재명 정부 5년 내 돌파구가 마련될지 비관적이지만, 작은 성공을 위해 점진적으로 신뢰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하 이사장은 “인태 지역에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강화될 때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북 억제 체제가 구체적으로 모색돼야 한다”며 “윤석열 정부의 확장 억제 체제를 2.0으로 업그레이드시켜 보완할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이사장은 “이 대통령이 국익 기반 실용주의를 언급했는데, 대북 정책도 그렇게 하면 된다. 이전 정부들은 실현되지도 않을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는데, 조용히 실용적으로 접근해 보라”고 했다.
북·미 대화 가능성에서는 입장이 엇갈렸다. 윤 이사장은 “이란 전쟁이 정리되면 조만간 미·북 대화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트럼프가 대북 요구 수준을 낮춰서 협상할 것으로 봤는데 이에 대해 문 교수는 정반대의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북한은 미국의 이란 공습을 주시하며 트럼프를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할 것”이라며 “북한은 2019년 이후 본질적·구조적 변화를 했다. 북한에게 이제 미·북 대화는 높은 순위가 아니다”라며 불발 가능성을 예측했다.
이날 좌담회를 마치면서 문 교수는 이 대통령에게 “우리나라처럼 외교 안보에 대해 민감성을 갖는 국민이 없을 것”이라며 “보수·진보의 양극화 현상을 극복해보라”고 제언했다. 하 이사장은 “핵을 가져야 하느냐 마느냐는 것은 추상적이고, 곳곳에서 전쟁이 진행 중인 지금의 현실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윤 이사장은 “한국은 국제 무대에서 선진국인데 이 대통령은 임기 내 ‘미국이냐 중국이냐’ ‘자주냐 동맹이냐’ ‘친일이냐 반일이냐’를 벗어나 외교를 업그레이드시켜 보라“며 ”인도와의 관계도 확대하고 G7에도 가입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