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인천 강화군 당산리 마을회관에서 마을 주민 유재희(79세), 채갑순(68)씨가 창문을 활짝 열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11일 오후 2시부로 우리 군이 전방 지역에서 진행하던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지하도록 지시했다"고 했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의 대남 소음 방송이 청취된 지역이 없다고 밝혔다. /장련성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지시한 지 하루 만인 12일 북한이 대남 소음 방송을 멈춘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이 9·19 남북 군사 합의 복원 등 남측의 추가 유화 조치를 이끌어내기 위해 호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이날 6·15 남북 정상회담 25주년 메시지를 통해 “소모적인 적대 행위를 중단하고 대화와 협력을 재개하겠다. 중단된 남북 대화 채널부터 빠르게 복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어제 늦은 밤에 서부 전선에서 마지막으로 대남 방송이 청취됐고 이후로는 없었다”고 밝혔다. 한국군은 북한과 사전 협의 없이 11일 오후 2시부터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면 중지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번 조치로 남북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다시 쌓아갈 수 있길 기대한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내려 했지만 뉴욕 주재 북한 외교관이 거절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11일(현지 시각) 브리핑에서 “대통령은 김정은과 서신을 교환하는 데 여전히 수용적(receptive)”이라며 “첫 임기 때 싱가포르에서 이뤄진 진전을 (다시) 보길 원할 것”이라고 했다.

2025년 6월 12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자유로에서 바라본 북한의 대남 확성기 모습. 이재명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11일 오후 2시부로 우리 군이 전방 지역에서 진행하던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지하도록 지시했다"고 했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의 대남 소음 방송이 청취된 지역이 없다고 밝혔다. /장련성 기자

◇서북 도서 실사격 훈련 취소·연기될 가능성도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북 전단과 오물 풍선, 대북·대남 방송을 상호 중단해 접경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겠다”면서 “9·19 군사 합의도 복원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대북 전단과 대북 방송을 중단한 다음 차례는 9·19 군사 합의 복원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지한 것처럼 9·19 군사 합의가 금지했던 남북 접경 지역 실사격 훈련 중지도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해병대는 이달 말 서북 도서에서 K9 자주포 등 실사격 훈련이 예정돼 있다. 국방부는 이날 기준 기존 훈련 계획에 변동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군 소식통은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일정 중 전방 상황 관리를 위해 실사격 훈련을 미루는 식으로 조치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세우며 오물 풍선 도발, 단거리 탄도미사일 무더기 발사, GPS 교란 공격 등 복합 도발을 계속하자 지난해 6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한국군 대비 태세 유지에 ‘족쇄’로 평가됐던 9·19 남북 군사 합의도 전면 효력 정지하고 해병대의 서북 도서 해상 사격 훈련도 5년 9개월 만에 실시했다.

하지만 정부가 바뀌고 대북 정책 기조가 변화하면서 이 같은 조치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이 대통령은 6·15 남북 정상회담 25주년 행사에서 우상호 정무수석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소모적인 적대 행위를 중단하고 대화와 협력을 재개하겠다”며 “우발적인 충돌을 방지하고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는 위기 관리 체계를 하루빨리 복원하겠다. 이를 위해 중단된 남북 대화 채널부터 빠르게 복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한 이후 한국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왔는데, 이번에 이례적으로 즉각 호응하는 모양새를 보인 것은 한국의 변화된 기류를 고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당장 한국이 9·19 군사 합의 무효화 이후 재개한 접경 지역 훈련을 다시 중단시키는 조치 등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현재까지 해병대의 서북 도서 실사격 훈련 계획에 변동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실사격 훈련 취소 내지는 무기한 연기가 이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9·19 군사 합의에 따른 제약으로 해병대를 포함한 우리 군 전방 포병 부대는 약 6년 동안 후방에서 사격 훈련을 해왔다. 해병대는 백령도와 연평도에 배치된 K-9 자주포 등을 화물선에 실어 수백㎞ 떨어진 육지로 운반해 사격 훈련을 했다. 실사격이 중단될 경우 해병대는 분기별로 다시 K9 자주포 등을 육상으로 옮겨 훈련을 해야 할 공산이 크다. 군 소식통은 “우리 측에서 선제적으로 9·19 합의 복원을 위해 접경 지역 훈련 및 실사격 중지에 나설 경우 대북 대비 태세에는 악영향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